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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화가 김현정의 영화 & 명화] (28) 설리 : 허드슨 강의 기적 & 종규

[배우화가 김현정의 영화 & 명화] (28) 설리 : 허드슨 강의 기적 & 종규

영웅은 과연 멀리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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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7 발행 [1469호]
▲ 임백년 작 ‘종규’.

▲ 영화 ‘설리 : 허드슨 강의 기적’ 포스터.



지난 4월 ‘우리 시대 진정한 영웅이 누구인가’를 다시 생각해 봤다.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었던 위기 상황에서 임무를 다해, 미국의 국민적 영웅이 된 여성 조종사 ‘태미 조 슐츠’가 떠올랐다. 슐츠가 조종하던 비행기의 좌측엔진이 약 10㎞ 상공에서 폭발한다. 이륙한 지 20분 만의 일이다. 하지만 그의 탁월한 능력과 침착한 대응으로 탑승객 148명은 목숨을 건진다. 엔진 폭발로 사망한 탑승객은 1명이었다. 비상 착륙 후, 조종석에서 기내로 나와 승객의 안전을 일일이 챙기는 슐츠의 모습은 방송과 SNS에 전해지면서 영화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의 주인공 설리 기장에 비유됐다.

2016년 개봉한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은 유명 배우이자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메가폰을 잡은 영화다. 2009년 1월 15일 뉴욕 허드슨 강에서 일어난 여객기 불시착 사고를 재구성했다. 여객기는 이륙 후 충분한 고도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날아든 새떼에 좌우 양쪽 엔진을 잃고 추락한다. 절체절명의 순간 설리 기장은 3분 28초 동안 위험을 무릅쓰고 850m 상공에서 허드슨 강으로 비상착륙을 시도해 탑승객 155명 전원의 생명을 구한다.

설리는 온 힘을 다했고 찬사를 받아 마땅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성급하게 판단해 과잉 대처했다고 비난받은 것이다. 사고 이후 사고 트라우마와 불면증에 시달리며 부기장과 함께 연방교통안전위원회(이하 위원회) 감사도 받는다. 여객기의 기장과 부기장, 두 조종사는 비상 상황에서 선택한 자신들의 판단과 행동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되는 위원회의 압박에 설리는 잠시나마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다.

설리는 그간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한 슈퍼히어로와 다르다. 초인간적 힘이 아닌 인간의 유한한 힘으로 위기를 극복했기 때문이다. 관객의 눈으로 보면 조종사들에 대한 위원회의 평가는 지나칠 만큼 냉정하다. 위원회가 근거로 내세운 컴퓨터 시뮬레이션의 판단과 인간의 대처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분명 당시 설리의 판단은 최선이었다.

설리와 슐츠. 두 사람 모두 최악의 상황에서 맡은 바 임무를 다해 기적을 만들었다. 이는 하느님이 사랑하는 모습임이 분명하다. 이들의 충직한 성품은 중국의 민간설화로 전해오는 ‘종규’를 떠오르게 한다. 종규는 허망함을 깨트리고 사악함을 부수는 수호신이다. 종규는 당나라 현종 황제의 꿈에 나타나 요괴를 퇴치하고 황제의 병을 낫게 한다. 흔히 검은 의관과 부릅뜬 눈, 긴 수염으로 묘사된 종규의 모습은 현종 황제가 꿈에서 본 모습을 근거로 그려졌다.

따라서 중국에서는 집안의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악운을 피한다는 의미로, 새해나 단오에 종규 그림을 대문에 붙인다.

19세기 중국 상해 화파(海上 畵派)를 이끈 화가 임백년(1840~1895)의 종규는 좀 더 친근한 모습이다. 전통적으로 그려지던 수호신 종규의 모습에 근거하지 않고, 화가 주변의 실존 인물을 모델로 그렸기 때문이다. 임백년의 종규 그림은 악마를 순식간에 없애려는 듯한 역동적인 모습이 특징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임백년은 번잡한 도시 생활 속에서 지나치기 쉬운 인간의 숭고한 일면을 각각 스크린과 그림에 담아냈다. 그들이 말하는 메시지는 같다. 영웅은 멀리 있지 않다고. 부조리한 세상을 극복하는 방법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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