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이광호 소장의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 (27) 책임의 부성(父性), 성교육의 핵
사랑과 책임이 아버지를 만든다
2018. 06. 10발행 [14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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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성은 학습 능력이 있는 남성이 아버지로 살겠다는 의지가 있을 때 발생하는 인위적 가치다. 남성에게 부성 교육이 없다면 ‘성관계는 내 맘대로 하고 임신만 안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확산할 수밖에 없다.



가정, 인간 생명이 시작되는 소중한 공간

“수정이 되면 새로운 인간 존재가 시작된다. 임신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이 인간 존재가 지속되는 것은 철학적 문제가 아니라, 임상적 사실이다.” 다운증후군의 원인 유전자를 최초로 규명한 프랑스 유전학자 제롬 르준(1926~1994) 박사의 말이다. 고유하고 절대적 가치를 지닌 인간 생명은 그 시작인 수정 때부터 절대적 환영과 축복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새 생명이 그런 사랑을 받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는 누구일까? 생명을 품어줄 엄마와 그 생명과 엄마를 보호하고 책임져 줄 아빠다. 그리고 가정은 한 사람이 부모를 통해서 생명을 받고, 그 생명이 성장하는 거룩하고 소중한 공간이다.

“가정은 존재가 드러나는 장소다.” 프랑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1889~1973)의 말이다. 그는 “가족은 존재자들을 존재하게 하는 그 무엇이라는 점에서 존재의 바탕이자 진리라고도 할 만하다. 가족이라는 존재 진리에 근거하지 않는 존재자들은 상상할 수 없다. 이러한 범주를 통해 인간이 인간이기 위하여 가족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쉽게 설명하면, 인간은 가정에서 존재 자체로 환영받고 사랑받아야만 인간다워진다는 뜻이다. 아버지가 돈을 벌어 오지 못해도, 자녀가 공부를 못해도 그런 외적 이유로 핍박당해서는 안 되고, 가족 안에서는 존재 자체로 사랑받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가브리엘 마르셀은 존재를 존재일 수 있게 해주는 가정의 신비를 위해서는 ‘남자의 책임 의식’이 중요한 조건이라고 강조한다. 남자가 아버지가 되겠다는 간절한 염원을 가질 때 가정이 탄생할 수 있고, 그래야만 인간이 인간답게 될 수 있다고 대철학자가 말한 것이다.



아버지 되기의 어려움

여자가 어머니가 되는 것은 생물학적 본능의 연장선에 있기에 비교적 쉽다. 그러나 남자가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는 본능의 상당 부분을 절제해야 하기에 부성의 성취는 무척 어려운 과업이다. 이탈리아 정신분석가인 루이지 조야는 「아버지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왜 남자가 아버지 되기가 어려운지를 역사적 심리적 문화적 관점에서 심도 있게 설명했다.

“포유류를 살펴보면 동물학 범위 내에서 여성과 어머니는 같은 것이고 동일한 것이다. 암컷은 어떻게 어머니로 행동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반면 수컷은 거의 대개 단순한 수컷일 뿐 결코 아버지가 되지 않는다. 수백만 년의 동물 진화 역사 속에서 부성이라는 특성을 발견해낼 수 있는 것은 겨우 몇십만 년을 살아온 인간들뿐이다. 따라서 부성은 본능을 통해서 형성된 것이 아니다.”(「아버지란 무엇인가」 32쪽)

부성이 본능을 통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부성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부성은 교육과 문화를 통해서 인위적으로 남성의 의식과 무의식에 새겨넣어 세대를 거듭해 전수한 가치다. 그러므로 어느 시대든 교육과 문화가 훼손되어서 남성에게 건강한 책임감이 내면에 자리하고 있지 않으면, 남성은 아버지가 될 수 없고, 동물 수컷으로 살 가능성이 높아진다.

수컷의 유일한 역할은 무엇일까? 정자 보관소다.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 수컷은 씨를 뿌리고 다니는 것 이외에는 하는 일이 없다. 자연에서는 암컷이 번식과 돌봄의 모든 역할을 하므로 아무 문제가 없지만, 문화 안에서 사는 인간 남녀의 삶은 동물과는 완전히 다르다. 가정에서 자행되는 근친 강간, 자녀 살해 등의 수많은 범죄는 모두 수컷으로 퇴행해버린 아버지들이 저지르는 행동이며, 여성을 임신만 시켜놓고 도망쳐 버리는 ‘히트 앤드 런’은 전형적인 동물 수컷의 행동이다. 문화적 역행이 소비주의가 성을 상품화해버린 ‘섹스=게임’의 시대에 광범위하게 나타나서 인간 삶을 파괴하는 것이다.



남성을 아버지로 성숙시키려면?

이런 시대적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남성들에게 남성의 취약성을 분명히 알려주고, 책임의 가치를 교육해야만 한다.

“자식들에게 생명과 양식을 제공해주는 어머니와는 달리, 남자는 출산에 대한 책임을 인식하고 아버지가 되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일정한 논리 능력을 습득해야만 했다. 아버지의 출현은 문화의 탄생에도 기여했으며, 동물적인 수준과 원시적인 상태로부터 인류를 결정적으로 이끌어냈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하나의 문화적 구성물이고 고안물이라고 할 수 있다. 부성은 정신적인 의지와 의도의 세계에 속해 있으며, 아버지라는 신분은 자신이 스스로 부과한 것이다. 부성은 자연 발생이 아니라 인위적인 창조물이라는 점에서 약점이 있다.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훨씬 더 불안정한 조건들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오직 역사만이 남자에게 부성을 부여해 왔기 때문에 역사는 이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부성은 자연에서 습득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배워야 하는 어떤 것이기 때문에 인생의 행로에서 남자는 부성을 망각할 위험성을 언제나 지니고 있다. 그래서 망각의 가능성은 역사 속에서 모든 남자가 대면해야 하는 것이다.”(「아버지란 무엇인가」 31~32쪽)

학습 능력이 있는 남성이 아버지로 살겠다는 의지가 있어야만 발생하는 인위적인 가치가 부성임을 확인하면, 왜 모성을 잃은 어머니보다 부성을 갖추지 못한 아버지가 압도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는지, 왜 남성에게 부성 교육이 반드시 필요한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아버지는 성관계와 임신을 통해서 자동으로 만들어지는 생물학적 존재가 아니라, 사랑과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통해서만 탄생하는 문화적 존재다. 아버지는 남자가 명확한 지향성을 품고 교육과 수련을 거쳐서 달성해야만 하는 고귀한 목표이다. ‘성관계는 내 맘대로 하고 임신만 안 하면 그만이다’라는 피임 마인드만 지배하는 소비사회의 남성이 아버지가 되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부성을 회복시키라는 문화적 표징

이처럼 부성이 망각되는 시대에 그 회복을 촉구하는 표징이 나타났는데, 그것이 영화 ‘인터스텔라’다. 어린 아들과 딸을 구하기 위해 다른 은하계로 떠나고 블랙홀에까지 스스로 뛰어들어서 온 인류를 구한 후,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킨 책임을 다하는 아빠의 사랑이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다. “인터스텔라는 ‘인간은 누구이고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와 같은 다양한 문제를 다루는 영화다. 하지만 나에게는 무엇보다 아버지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루는 영화였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말이다.

아버지는 어린 딸과 이별을 할 때도 또 우주 여행 후 아버지보다 더 늙어버린 딸에게 돌아왔을 때도 왼손 약지에 결혼반지를 끼고 있고, 감독은 그 반지를 반복해서 보여준다. 아내는 이미 죽고 없지만, 혼인을 통해서 맺어진 인간관계인 아내와 자녀에게 무한 책임을 다하는 남자가 아빠라는 메시지를 묵시적으로 전해주는 장면이다. 아버지는 책임이라는 가치의 육화(肉化)다. 이를 체험하고자 하는 분은 QR코드를 꼭 참고하시기 바란다.

<사랑과 책임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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