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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화가 김현정의 영화&명화](26) 원스 & 현악 4중주

[배우화가 김현정의 영화&명화](26) 원스 & 현악 4중주

눈물과 땀으로 새로운 길 걷는 예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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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3 발행 [1467호]
▲ 영화 ‘원스’ 포스터.



삶이 거칠수록 예술은 감미롭다. 영화가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 속에 깊이 빠져든다. 생활의 무게에 어깨가 짓눌릴 때, 친구와 함께 본 영화 한 편에서 크게 위로받고 다시 희망을 품는다.

2007년 개봉한 영화 ‘원스’는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을 배경으로 하는 음악영화다. 아버지와 함께 가전제품 수리점에서 일하는 글렌은 밤마다 거리에서 노래를 부른다. 들어주는 이 없는 한적한 거리에 어느 날 한 여자가 나타난다.

밤거리에서 꽃을 팔다 노랫소리에 발길을 멈춘 마르케타. 전 남편과 이혼한 그는 일자리를 찾아 체코에서 더블린으로 왔다. 그 또한 피아노 연주를 무척 좋아하지만 그럴 형편이 아니다. 어머니와 아기를 홀로 부양해야만 하는 처지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옛 애인을 잊지 못한 글렌. 그는 이루지 못한 사랑과 꿈을 기타 연주와 함께 노랫말에 담아 길거리를 채운다. 누구나 한 번쯤은 느꼈을 감정이다. 마르케타와 음악을 통한 사랑의 교감이 시작된다.

글렌은 마르케타의 도움으로 데모 테이프를 만들었다. 어머니와 사별한 후 더 무뚝뚝해진 아버지. 아버지는 글렌의 음악을 칭찬하며 런던으로 떠나는 길을 축복한다. 글렌은 마르케타에게 꿈을 이루기 위해 함께 런던으로 가자고 한다. 그러나 둘은 서로 사랑하지만, 각자의 길을 선택하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주연을 맡은 글렌과 마르케타는 2008년 제80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제가상을 받은 ‘폴링 슬로울리(Falling Slowly)’는 물론 영화 속 모든 곡을 실제로 만들고 불렀다. 영화는 당시 13만 유로, 한화 1억 4000만 원으로 찍은 저예산 독립영화이지만, 입소문으로 개봉관을 확대하며 세계적인 성공을 이뤘다.

▲ 천이페이 작 ‘현악 4중주’.


영화 ‘원스’의 잔잔한 여운은 중국 현대화 거장 천이페이(1946~2005)를 떠올리게 한다. 1980년 그는 달랑 38달러만 가지고 유학길을 나선다. 뉴욕대학에서 작품 복원 아르바이트를 하며 서구의 대가 작품들을 직접 보는 기회를 얻고,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유럽 대가들의 작품을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그는 훗날 숙박비를 아끼려고 노숙자처럼 기차나 길거리에서 생활했던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말한다.

천이페이는 결혼 전 가톨릭 수녀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성당을 통해 자연스럽게 서양문물을 접했다. 러시아 사실주의의 영향을 받은 그의 그림은 ‘낭만적 사실주의화’라고 평가된다.

천이페이는 음악을 그림으로 그려내는 대표적인 서양화가다. 클래식 연주를 그린 작품 ‘현악 4중주’는 사실주의 화법으로 연주자와 악기, 곡 사이의 호응관계를 검은 여백으로 그려냈다. 기존 관념을 깨는 놀라운 시도다.

3년 전 겨울, 베이징의 한 미술품 경매에서 이 작품을 직접볼 기회가 있었다. 그림의 검정 여백은 따뜻한 색을 레이어로 깔고 그 위에 부드럽게 검은색을 반복해서 칠한 것이다. 천이페이 작품 속 검은색이 주는 따뜻한 느낌은 무척이나 남다르고 신선하다.

천이페이는 서양화 속에 검은 여백, 그 여백 안에서 들리는 클래식 음악을 상상하며 자신만의 감성으로 작품을 남겼다. 영화 ‘원스’의 존 카니 감독은 뻔한 멜로영화를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을 통해 새롭게 보여줬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눈물과 땀으로 길이 나지 않은 길을 용기 있게 걸어가 우리가 잊고 있었던 고귀한 것들을 낯설게 각인시킨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하지만, 예술이 늘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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