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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교회의 맏딸 프랑스를 순례하다 - ④ 루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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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기적과 은총이 샘솟는 프랑스 대표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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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7 발행 [1466호]







▲ 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미사비엘 동굴과 그 위에 지어진 세 개의 성당 전경.





14살 소녀, 성녀 베르나데트


옛날이야기 한 조각. 1858년 프랑스 남쪽 피레네산맥 자락에 있는 한 가난한 마을에 베르나데트라는 14살 소녀가 살았다. 가난한 가정 형편에 천식을 달고 산 베르나데트는 첫영성체를 하는 게 꿈이었지만, 글을 익히지 못한 처지여서 언감생심이었다.

그해 2월 11일 베르나데트는 동생, 친구와 함께 나무를 하러 돼지 동굴이라 불리는 곳에 갔다가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게 된다. 더럽고 냄새나는 어두운 곳에는 어울리지 않는 여인이었다. 여인에게선 환한 빛이 났다. 그로부터 다섯 달 동안 베르나데트는 18번에 걸쳐 여인을 만났고 함께 기도를 바쳤다. 마을 사람들은 신비한 여인을 만났다는 베르나데트를 거짓말쟁이, 미치광이라 손가락질했다. 여인은 소녀에게 “사람들이 이곳 샘물을 찾아 마시고 몸을 씻도록 해주세요.” “작은 성당을 짓고 행렬을 지어 와 기도하도록 해주세요”라고 부탁했다. 베르나데트가 여인의 정체를 계속 궁금해하자 여인은 마침내 “나는 원죄 없이 잉태됐다”(Immaculata Counceptio)고 소개했다. 베르나데트가 만난 여인은 바로 성모 마리아였다.

그로부터 160년. 피레네산맥 작은 마을 ‘루르드’(Lourdes)는 치유와 은총의 땅이 됐다. 성녀 베르나데트(1844~1879)와 성모 마리아가 만났던 동굴의 샘물은 수많은 치유의 기적을 낳았고 오늘날 세계적인 성모 발현지로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의 대표 성지 ‘루르드’로 향했다. 봄기운이 한창이었지만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피레네산맥 지붕에는 여전히 흰 눈이 덮여 있다. 산이 점점 커 보일 때쯤 해발 400m 산골 루르드에 도착했다. 프랑스에서 파리 다음으로 호텔이 많은 곳답게 호텔과 기념품점이 늘어진 거리는 전 세계에서 온 순례객으로 붐볐다.

어둑한 저녁에 시작된 루르드 일정은 처음부터 압도적인 장면으로 이끌었다. 저녁 8시가 되자 ‘성지 광장’에는 무수한 불빛이 행렬을 이루었고 ‘아베 마리아’ 노랫소리가 온 마을에 번져나갔다. 묵주기도를 바치며 시작된 행렬은 성모 발현지인 마사비엘 동굴에서 출발해 광장을 한 바퀴 크게 돌아 대성당 앞에서 멈췄다. 휠체어를 탄 환자들은 앞에, 신자들은 그 뒤에 섰다. 광장과 대성당 계단을 가득 메운 세계 각국 신자들은 각자의 언어로 묵주기도를 바치며 마무리하는 예식을 거행했다. 밤하늘에서 쏟아지는 별, 땅에서 타오르는 촛불이 장관을 이뤘다. 루르드의 거리는 자정이 되도록 빛났다.

짧은 밤이 끝나고 루르드의 아침은 일찍부터 시작됐다. 마사비엘 동굴 앞에서 봉헌되는 새벽 6시 미사에 가기 위해 일찌감치 길을 나섰다. 밝은 광장에 서니 루르드의 모습이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피레네 산맥에서 흘러온 가브강이 크게 휘감아 흐르는 광장에는 전날 밤 촛불로 덮여 있던 대성당이 우뚝 서 있었다. 얼핏 보기에 하나의 큰 성당 같지만 3개의 다른 성당이 합쳐져 있다. 1864년 동굴 바위 위에 처음 지어진 성당이자 베르나데트 성녀의 유해가 모셔진 ‘동굴성당’, 조선 선교사들의 안위를 청하는 성모송이 봉헌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모후 기념 대성당’, 황금빛 천상 모후 왕관과 십자가가 올려진 ‘묵주의 기념 대성당’이 연간 수백만 순례객을 맞이하고 있다.

‘성당을 짓고 행렬을 지어와 기도해달라’는 성모님의 뜻대로 루르드는 기도로 충만한 땅이 되었다. 마사비엘 동굴 앞을 비롯한 크고 작은 경당에는 매시간 다양한 언어로 미사가 봉헌되고 있었다. 대성당 뒤편 동산에 마련된 십자가의 길, 광장 지하의 비오 10세 대성당에서 매일 저녁 열리는 성체강복 예식 등을 따라가는 순례객의 하루는 기도로 가득 채워졌다.

루르드 순례에서 빠질 수 없는 일정은 샘물을 찾아 마시고 씻는 일이다. 루르드 샘물을 통해 병이 나았다고 보고된 기적적 치유 사례는 7000건이 넘는다. 이 가운데 교회가 공식 인정한 것은 70건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환자들을 위한 숙소와 병원이 지어질 만큼 전 세계 아픈 이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동굴 벽이 비단결처럼 반질반질 윤이 나는 걸 보니 얼마나 많은 이들이 벽을 잡고 기도하며 염원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동굴 옆 침수대, 강변에 있는 식수대에는 물을 받으려는 이들의 발길이 온종일 이어졌다.


▲ 이른 아침 미사가 봉헌되고 있는 미사비엘 동굴 앞.




치유와 사랑의 기적 낳은 루르드 샘물


루르드의 샘물은 치유의 기적과 더불어 사랑의 기적도 낳았다. 루르드 광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수많은 휠체어 부대와 함께 이들을 동반하는 자원봉사자들을 만나게 된다. 병들고 늙고 아픈 이들을 위해 건강한 젊은 봉사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몰려와 기꺼이 힘을 보탠다. 복음 말씀이 그대로 실현되는 곳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성녀 베르나데트가 살았던 마을을 둘러보는 일정은 순례객을 깊은 묵상으로 초대한다. 성녀는 생전에 “성모님께서 나를 선택하신 것은 내가 가장 가난하고 무지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성모님은 140㎝의 작은 키에 비고르지방 사투리를 쓰던 촌스러운 아이를 선택하면서 세상에 무엇을 알리려고 하셨을까 성녀가 태어난 허름한 물레방앗간, 갈 곳 잃은 여섯 가족이 세 들어 살던 냄새 나는 감방(Cachot) 등을 보며 생각해볼 수 있다.

마사비엘 동굴은 ‘오래된 바위’라는 뜻을 담고 있다. 애초에 없었던 물이 새롭게 솟아난 것이 아니라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을 성모님이 발견하게 해주셨다. 동굴을 청소하고 닦으니 맑은 물이 나오고 기적이 일어났다. 물을 마시고, 씻고, 닦아내며 ‘기도’하면서 성령을 새로이 샘솟도록 하는 곳, 루르드다.






베일 쓴 가이드

루르드에는 성지를 누비는 한국인 수녀들이 있다. 마이크를 들고 한국인 순례객들을 이끌며 능숙하게 성지 구석구석을 소개하는 이들은 바로 ‘예수성심시녀회’에서 파견한 탁 미리암 수녀, 백 밀리안 수녀, 김 마리로사 수녀다. 이들은 언덕배기에 있는 수녀원에서 함께 생활하며 한국인 순례객들을 돕는다.

대구에 총원을 둔 예수성심시녀회의는 1996년 루르드 사도직을 시작했다. 당시 루르드를 방문한 이문희(전 대구대교구장) 대주교가 한국 신자들이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고 안타깝게 생각해 수녀회와 프랑스 루르드-타르브 교구에 수도자 파견을 요청한 것이 계기가 됐다. 수녀들은 2~3년 동안 선교사로 파견돼 이곳에서 생활한다.

가이드 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고되다. 새벽 6시 동굴 미사에 가는 날엔 5시에 숙소에서 나와야 하고 촛불 행렬을 마치면 밤 10시를 훌쩍 넘는다. 단체 순례객의 요청에 따라 성당 미사를 예약하고 이메일로 도움을 청하는 개인 순례자들에게도 일일이 답변을 보낸다. 최근에는 스페인 산티아고로 향하는 첫걸음으로 루르드를 찾는 이들이 많아져 하루하루가 더 바쁘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같은 설명을 거듭하면서도 수녀들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백 밀리안 수녀는 “매일 같은 곳에 가서 같은 말을 반복해야 하니까 지루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은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늘 새로운 것이 보이고 새로운 힘을 얻는다”고 했다. 문의 : srlourdes@hanmail.net

유은재 기자 you@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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