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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교회의 맏딸 프랑스를 순례하다 - ③ 투르

- 가톨릭교회의 맏딸 프랑스를 순례하다 - ③ 투르

프랑스의 수호성인 ‘마르티노’가 잠든 도시, 신앙의 중심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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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0 발행 [1465호]

프랑스 관광청(kr.france.fr), 에어프랑스(airfrance.co.kr) 공동 기획






 옛날이야기 한 조각. 어느 추운 겨울날 한 소년이 거리에서 초라한 걸인을 만났다. 측은한 마음이 들어 무엇이라도 주고 싶었지만, 소년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 절반을 잘라 걸인에게 건넸고 그날 밤 꿈속에서 걸인을 다시 만났다. 반쪽짜리 외투를 걸친 걸인은 자신을 예수라고 했다. 그 길로 소년은 그리스도 신앙을 받아들여 사제가 되었고 훗날 주교, 성인이 됐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프랑스의 수호성인 ‘투르의 성 마르티노(316~397, St. Martin of Tours)’다. 마르티노 성인은 가톨릭이 깊게 뿌리내리지 않았던 당시 프랑스 땅에서 이도교를 물리치며 복음화를 꽃피웠다.

마르티노 성인을 만나기 위해 프랑스 중서부에 있는 ‘투르’(Tours)로 향했다. 투르는 ‘가톨릭교회의 맏딸’이라 불리는 프랑스 안에서도 가장 맏이로 꼽히는 곳으로 5세기부터 순례객이 몰려든 프랑스 최초의 순례지다. 순례의 역사로 보면 세계 3대 성지인 이스라엘 예루살렘, 이탈리아 로마보다는 뒤에, 스페인 산티아고보다는 앞에 놓인다.

▲ 샤를마뉴 타워에서 내려다본 투르 시내 풍경. 맞은편 성 마르티노 대성당 돔 꼭대기에 서 있는 성인의 동상이 가까이 보인다.

투르에 첫 인사를 건네기 위해 샤를마뉴 탑(Tour Charlemagne)에 올랐다. 광장에 홀로 우뚝 서 있는 탑은 지금은 사라진 옛 성 마르티노 대성당의 일부로 도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숨이 가빠올 때쯤 아파트 4층 높이의 탑 꼭대기에 도착했다. 왼편 성 마르티노 대성당( Basilique Saint-Martin) 돔 위에 서 있는 성인의 동상과 눈높이가 같아졌다.

▲ 마르무티에의 전성기 모습을 그린 조형도. 대성당과 수도원, 밭 등이 대규모로 펼쳐져 있다.

수천 년 역사 안에서 많은 것이 사라진 도시를 바라보며 문화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상상 여행을 떠났다.

“397년 마르티노 성인이 이곳에 묻혔습니다. 무덤 위로 작은 경당이 지어졌고 9~11세기에는 그 위로 웅장한 대성당이 새로 지어졌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건 우리가 서 있는 서편 탑과 저 멀리 보이는 동편 탑이 전부입니다. 모두 다 18세기 프랑스 대혁명 때 부서졌죠. 저 아래 카페 옆 보석가게는 예전에 경당이 있던 곳이고 건물 벽면 색이 다른 곳이 있는데 그곳이 성당과 외부 경계이고….”

거의 모든 것이 사라진 곳에서 과거 대성당을 그려본 뒤 탑에서 내려왔다. 몇 발자국 걸으니 20세기에 새로 지은 성 마르티노 대성당이 나왔다. 반쪽짜리 외투를 휘날리는 성인의 동상이 마당에서 순례객을 맞이했다. 지하성당에 잠든 4세기 성인을 만나기 위한 순례객의 발길이 오늘날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투르는 타임머신을 탄 듯 걸음마다 바뀌는 풍경이 인상적인 곳이다. 대성당에서 나와 루아르 강 언저리를 따라 2.5㎞를 걸었다. 마르티노가 투르의 주교로 부임하던 날 기적의 꽃이 피어났다는 강을 끼고 걸으며 성인과 그를 따르던 중세 순례자들을 생각했다. 중세거리를 고스란히 옮긴 듯한 광장을 지나 샹젤리제를 작게 옮긴듯한 세련된 쇼핑가를 마주했다. 파리-스페인 산티아고를 잇는 도로와 도심 트램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과거와 현재가 왔다 갔다 했다. 조금 더 걸어가면 스테인드글라스로 유명한 성 가티앵 대성당(Cathedrale Saint-Gatien)이 서 있었다.

투르는 오랜 시간 동안 쌓인 역사를 한 풀씩 벗기며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하는 도시다. 이 상상력은 마르무티에 수도원(Abbey de Marmoutier)에서 절정에 달한다. 수도원 ‘터’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듯한 이곳은 마르티노 성인이 372년 지은 곳으로 9세기 약탈로 망가졌다가 13세기에 세를 확장했고 16세기 종교전쟁 때 또 한 번 망가졌다가 복구됐지만 프랑스 대혁명 때 완전히 사라졌다. 지금은 발굴을 위해 헤집어놓은 드넓은 땅에 옛 성당 시계탑과 옛 순례객 숙소 건물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첫인상은 쓸쓸하지만, 프랑스 가톨릭의 흥망성쇠 역사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순례자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그러고 보니 교회의 시작과 번영, 쇠퇴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모두 마주했다. 크고 화려하고 사랑받는 교회뿐만 아니라 부서지고 망가진 외면받은 교회까지 모두 만날 수 있는 곳, 투르다.



투르의 성 마르티노(316~397, St. Martin of Tours )


마르티노는 이교도인 헝가리의 군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5살에 억지로 군에 입대해 로마에 간 마르티노는 평범한 군인으로 지내다 그리스도를 알게 되면서 예비신자가 된다. 마르티노는 어느 날 걸인에게 망토를 건네는 선행을 베풀었고 꿈속에 예수가 그 걸인으로 나타난 것을 계기로 신앙을 온전히 받아들여 사제의 길을 걷게 된다. 제대 후 사제품을 받고 고향으로 와 가족과 주위 사람들에게 신앙을 전하는 데 헌신했다. 당시는 아리아파와 같은 이단이 팽배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복음 선포가 쉽지 않았지만 마르티노는 포기하지 않았다.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그는 이교도의 탄압이 커질 때면 산속에 들어가 기도생활을 했고 이는 수도 공동체로 발전했다. 마르티노의 명성을 들은 사람들은 주교가 돼주길 요청했고 투르 지방의 첫 주교가 됐다. 투르에서는 매년 11월 11일 축일이 되면 성 마르티노의 선행을 기억하며 성탄을 준비한다.

 

루아르 계곡 고성(古城)

▲ 루아르 강을 가로지르는 윌슨 다리에 서서 본 투르 구시가지의 모습. 성 가티앵 대성당이 보인다.
 

투르에 왔다면 루아르 강을 중심으로 흩어져 있는 아름다운 고성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루아르 강변에 있는 19개 고성은 건축미와 예술성을 자랑한다. 프랑스에서도 가장 비옥하고 풍요로운 땅으로 꼽히는 이곳 자연을 배경으로 중세 고성들을 만나보자. 그중에서도 ‘여인들의 성’이라 불리는 쉬농소(chenonceau)성은 아름다운 정원과 빼어난 경관으로 전 세계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유은재 기자 you@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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