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이광호 소장의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 (24) ‘히트 앤드 런(hit and run) 방지법’ 제정 청원과 국가의 책무
아이 낳고 도망친 친부에게 국가가 책임 물어야
2018. 05. 20발행 [14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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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이 임신하면 외면하는 남성들이 많은 현실에서 ‘히트 앤드 런 방지법’이 시행된다면 남성에게는 책임감을 심어주고 미혼 가족 발생 문제를 예방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픽=문채현



‘히트 앤드 런 방지법’이란?

일부 여성단체와 페미니스트들이 주도했던 낙태죄 폐지 청원과는 정반대인 “미혼모를 위한 히트 앤드 런 방지법을 만들어 주세요”라는 청원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이 청원에 한 달 만에 20만 명 넘는 사람이 동의했다. 낙태죄 폐지 청원은 언론의 대대적인 조명을 받았지만, 이 청원은 20만 명의 동의를 얻었음에도 주류 언론에서는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청원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국민이 많다.



“언제까지 무책임한 아이의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만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빈곤 안에서 고통스러워야 하는 걸까요? 저는 덴마크에서 실시하는 ‘히트 앤드 런 방지법’을 제시합니다. 덴마크에서는 미혼모에게 아이 아빠가 매달 약 60만 원 정도를 양육비로 보내야 합니다. 만약 보내지 않으면, 아이 엄마는 시에 신고하고, 시에서는 아이 엄마에게 양육비를 지급합니다. 그리고 돈을 아이 아빠의 소득에서 세금 원천징수를 합니다.

만약 아이 아빠가 외국으로 도망가더라도, 다시 덴마크로 돌아오면 환수 조치가 들어갑니다. 아이 아빠가 책임을 피하는 방법은 평생 덴마크 사회에 끼어들지 못하거나, 나라를 떠나거나 이 둘 뿐입니다. 아이 아빠가 내 아이가 아니라고 발뺌하더라도 DNA 검사를 통해 아이 생부의 여부를 밝힙니다. 그래서 덴마크에서는 여성보다 남성이 미혼부가 되지 않으려고 더욱 조심한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히트 앤드 런 방지법이 시행된다면, 남성들은 책임감을 느끼고 행동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미혼 가족 발생 문제를 예방하는 우리나라의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청원은 17세 여고생이 트위터를 통해 어쩔 수 없이 낙태해야 했던 여성의 사연을 알게 되면서 시작됐다. “어떤 분이 생리를 안 하니까 남자친구에게 연락했더니 헤어지자고 연락을 끊어버렸대요. 임신테스트기에 두 줄이 그어져 있는 사진이 올라왔어요. 그 모습을 보고 되게 마음이 아팠어요. 트위터에 홍보도 해보고 네이버 카페나 커뮤니티 사이트에도 올려봤어요. 팔로워 수가 많은 분께 리트윗해달라고 부탁드렸어요. 그렇게 퍼지게 된 것 같아요.”(국민일보 2018년 4월 10일자 인터뷰 기사 중에서)



양육비 책임법 제정 청원의 의미

이 청원에 깊게 공감하고 협력해준 사람들은 인터넷 대형 카페 회원들이었다. 주목할 점은 낙태죄 폐지에 큰 지지를 보냈던 여성카페 회원들이 ‘히트 앤드 런 방지법 제정’ 청원에도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는 사실이다. 임신만 시키고 도망치는 남자 때문에 낙태로 등 떠밀리는 여성을 위해서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프로초이스(prochoice, 여성의 선택을 중시한다는 뜻의 낙태 찬성)에 동의한 여성들이 남성에게 책임을 물어서 낙태의 사회 경제적 사유 자체를 없애고 생명을 살리자는 프로라이프(prolife, 생명을 중시한다는 뜻의 낙태반대 생명수호) 청원에 더 깊게 공감하고 지지한 것이다. 이는 국민들에게 낙태 문제를 사회 경제적으로 해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과 아기를 동시에 살리는 제도를 고민하게 할 때, 우리 국민 상당수가 프로초이스가 아니라 프로라이프의 입장에 선다는 뜻이다.

한국의 프로라이프 운동이 선진국처럼 ‘양육비 책임법’이라는 구체적 대안을 제시할 경우, 낙태반대 생명수호가 윤리적 강압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선(善)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상식을 가진 사람들은 이를 지지한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또, 주류 언론이 거의 조명해주지 않았음에도, 한 사람이 여러 계정을 동원해서 청원 수를 올리는 조작의 방식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청원 취지에 깊게 공감한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SNS에서 홍보하며 얻어낸 20만 명의 동의이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깊다.



청와대의 답변과 국가의 책임

이 청원에 대해 4월 24일 청와대가 공식 답변을 내놓았다. 엄규숙 여성가족비서관이 ‘양육비 이행지원 제도 실효성 확보 방안’의 연구용역을 시작했고, 11월 결과가 나오면 외국의 대지급제와 우리나라 양육비 지원 제도를 종합분석해서 실효성 있는 구체적 방안을 마련할 계획임을 밝혔다. 답변의 요지는 단독 양육모에게 국가가 지급하는 양육비를 올리겠다는 것이었다. 남성이 자신의 성행동에 대해 깊은 책임감을 가지게 하는 법을 만들어 달라고 한 청원에 지원금을 늘리겠다고 하는 대답은 동문서답이다. 청원에 동의한 국민 20만 명의 의도를 모를 리 없는 청와대 참모들이 엉뚱한 답을 하는 배경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기만 하다.

국가가 선지급하고 생부에게 구상권을 발동하여 월급을 압류하고, 이행하지 않을 시에는 운전면허 정지, 여권 사용 정지, 재산압류, 관허사업의 면허 제한, 벌금, 구속 등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제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지원금을 상향하겠다는 답변은 청와대 참모들이 양육비 책임을 남성들에게 생명과 책임의 중요성을 학습시키는 정의(正義)의 문제가 아니라, 시혜적 복지의 문제로 오인하고 있음을 뜻한다.

양육비 대지급 제도가 17대 국회부터 논의되었지만 실행되지 못한 이유는 예산 부족이었다. 그러나 책임을 회피하는 남성에게 벌칙을 부과하는 정의 실현에는 추가 예산이 필요하지 않다. 예산이 없어서 대지급이 어렵다면, 강력한 처벌로 아버지 역할을 하게 하는 본질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것이 국가의 책임이다. “진정 여성의 적은 여성인가? 여성가족부 소속인지 아니면 청와대의 여성가족비서관인지 정확히 모르겠으나 청원자의 의도를 왜곡하고 엉뚱한 답변을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드는 답변입니다.” 청와대 답변에 달린 댓글이다. 여성과 관련된 생명 정책 입안자들이 반드시 참고해야 한다.



여성가족부와 모든 여성단체가 해야 할 일

여성가족부와 모든 여성단체가 대동단결해서 최우선으로 추진해야 할 일은 양육비 책임법 제정이다.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성폭력의 핵 중 핵이 무엇일까? ‘히트 앤드 런’(hit and run, 치고 달리기)이다. 여성에게 가장 깊은 배신의 상처를 주고, 그 고통을 자녀에게까지 전달하는 가장 잔인한 폭력이자 모든 성폭력의 뿌리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다른 성폭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사회가 남성에게 자신의 아이를 밴 여성과 그 어린 생명을 존중하고 책임지겠다는 마음을 학습시키지 못하고, 또 그 범죄를 저지른 남성을 처벌하지 않는다면, 남성이 저지르는 다른 성폭력도 결코 근절할 수 없을 것이다. 미투(#Me Too)보다 더 우선순위에 있는 사안이 히트 앤드 런 방지다. 낙태라는 살인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권력 관계 안에서 자행되는 성폭력은 폭로와 고소ㆍ고발로 해결하겠다는 태도는 세상에 생명과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

놀라운 점은 낙태죄 폐지에 적극적이었던 여성단체들과 정당들이 히트 앤드 런 방지법 청원에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사회경제적 사유로 낙태가 강요된 상황에서 낙태죄 폐지로 그 길만 열어주는 것은 낙태하라고 등 떠미는 것일 뿐, 자기결정권 행사가 아니다. 진정한 자기결정권을 여성에게 주고 싶다면 여성가족부와 여성단체들은 히트 앤드 런 방지법 제정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사랑과 책임 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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