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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2018 복음의 기쁨으로] - 특별 기획을 시작하며 -

[1988-2018 복음의 기쁨으로] - 특별 기획을 시작하며 -

복음의 기쁨으로 맞서도록… 신앙인이여 응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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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3 발행 [1464호]


영화 ‘1987’에 비친 명동대성당은 펄펄 끓었다.

시민들은 교회 품에서 민주화와 사회 정의의 열망을 분출했다. 교회는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정의와 공정’(시편 33,5)으로 변혁의 길을 열었다. 또 사회적 약자의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나름의 책무를 다했다. 이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와 신뢰가 한국 천주교의 비약적인 교세 성장을 견인했다.

▲ 교세 통계상의 각종 수치는 신앙 공동체의 내실을 다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보여준다. 지난 2월 서울대교구 면목동본당이 마련한 ‘신자 재복음화를 위한 함께하는 여정’ 첫째 날 참가자들이 게임을 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눈 밝은 신앙인은 영화 속에서 질문을 하나 찾아냈다. 1987년 이후 교회는?

혹자는 말한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은 이제 교회에 찾아가 고통을 호소하지 않는다고. 대신 굴뚝에 올라가거나 광장으로 간다고. 종교가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는 시대가 저물고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다는 아니지만, 일정 부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30년 세월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많은 것이 변했다. 이 순간에도 속도에 발맞추기 버거울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시대가 변한만큼 교회 내부 상황과 종교를 둘러싼 지형도 바뀌었다.

내부적으로 보면, 활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신자 증감률이 교회 활력을 가늠하는 척도는 아니지만, 교세 통계만 놓고 보면 침체가 뚜렷하다. 30여 년 전 매해 5~7%씩 치솟던 신자 증가율은 1%대까지 주저앉았다. 지난해 증가율은 1.3%다. 2010년부터 1%대 저성장 시대가 됐다. 미사 참여율, 판공 성사율, 주일학생 수 등 사목ㆍ성사 지표 가운데 성장세를 감지할 만한 항목은 거의 없다. 유일하게 사제 증가율만 상향 곡선이다.

▲ 2017년 주민등록 인구와 천주교 신자의 연령대별 비율. 전체 인구 연령대와 비교하면 한국 가톨릭은 0~19세 청소년이 적고, 60세 이상 고령자가 많은 ‘초고령 교회’다.

▲ 연도별 신자 증가율과 인구 대비 신자 비율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청소년 감소와 고령자 증가 추세가 심각하다. 개인주의와 세속화로 인한 젊은이들의 탈(脫)교회 현상도 무시할 수 없다. 모두 빠르게 늙어가는 교회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징후다. 한국 가톨릭의 자랑이던 평신도 열성도 예전 같지 않다. 교회는 올해를 ‘평신도 희년’으로 선포했지만, 희년의 기쁨은 찾아보기 어렵다.

제도와 전통의 울타리에 안주하려는 성직자들의 소극적 자세, 돈 혹은 성(性) 관련 추문으로 인한 사회 신뢰도 하락은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밖으로 나가는 교회’를 외치고 있다. “자기 안위만을 신경 쓰고 폐쇄적이며 건강하지 못한 교회보다는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받고 더럽혀진 교회를 더 좋아한다”(「복음의 기쁨」 49항)며 거리로 나가 가난한 이들, 멸시받는 이들과 함께 있으라고 재촉한다. 성직자와 수도자들을 만날 때면 “악마는 호주머니로 들어온다”며 물질로 인한 타락을 경계하라고 당부한다. 한국 교회가 이런 당부에 얼마나 호응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우리 사회도 그새 더 살벌한 전쟁터가 됐다. 각자도생이 경쟁 사회의 생존 전략이다. 연대와 공동체성은 날이 갈수록 비현실적인 구호가 돼가고 있다. 경제는 몰라보게 성장했으나 대문 앞에 누워 하느님 자비를 구하는 라자로(루카 16,19-31) 행렬은 오히려 길어졌다. ‘1987’보다 복음의 기쁨이 더 필요해 보인다. 따라서 교회로서는 기회다. 이 정글 같은 사회에서 사랑과 연대, 자비와 나눔 같은 보편 가치를 누가 가장 큰 목소리로 외치면서 사람들 의식에 스며들게 할 수 있을까. 교회가 나서야 한다.

하지만 교회는 복음과 그 안에 담긴 기쁨을 세상으로 활발하게 실어나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교회로까지 넘어온 세속화와 다원주의의 파도에 흔들리는 지경이다. 그 파도가 교회 곳곳에서 영적 세속화를 부추기고 있다. 영적 세속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오히려 사회가 교회를 걱정한다”는 조롱 섞인 핀잔을 가톨릭교회라고 피해갈 수 없다.

‘1987’은 예외적 상황의 특수(特需)였다고 자위하면 안 된다. 그러면 시대의 징표를 읽지 못한다. 승리주의는 더더욱 경계해야 한다. 거기에 도취하면 도전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된다.

밀려오는 도전들을 보고 위기라고까지 단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징후임은 분명하다. 위기는 번개처럼 내리치지 않는다. 사전에 여러 지표 아래에서 꿈틀대면서 몇 차례 징후를 드러낸다. 그러다가 인과 관계가 딱 맞물리는 어느 순간에 화산처럼 폭발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런 도전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용기를 북돋는다.

“교회는 시대마다 숱한 도전에 부딪혀왔다. 도전은 우리를 성장시켜 준다. 그것은 살아있는 신앙의 표지이다. 오히려 도전 없는 신앙을 두려워해야 한다.”(2017년 3월 25일 이탈리아 밀라노 연설 중에서)

교황은 이날 인상적인 조언을 덧붙였다. “이러한 도전에는 황소를 붙잡을 때 뿔을 잡듯이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황소 뿔을 잡으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교회의 근육은 성찰과 쇄신으로 강해진다. 교회 역사가 이를 증언한다.

가톨릭평화신문이 창간 30주년을 맞아 ‘1988~2018, 복음의 기쁨으로’라는 특별 기획을 시작하는 이유다. 우리 앞에 놓인 도전들을 식별하고, 그것들과 맞설 힘을 기르기 위한 취지다. 교회 각 분야를 들여다보고 쇄신의 길을 찾을 것이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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