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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복음] 주님 승천 대축일 (마르 16,15-20ㄴ)

[생활 속의 복음] 주님 승천 대축일 (마르 16,15-20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행동을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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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3 발행 [1464호]
조명연 신부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일하는 한 청소부는 매일 아침 누구보다 일찍 출근해 건물 바닥을 열심히 닦는 등 남다른 열정을 보였습니다. 이를 유심히 본 한 직원이 “왜 그렇게 청소를 열심히 합니까?”라고 물었지요. 그러자 이 청소부는 “나는 단순히 바닥 청소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국제우주정거장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합류해 일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답니다. 이 이야기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사실 많은 분이 일로 인해서 피곤하다고 말씀하시지요. 그러나 실제로는 일 자체 때문에 피곤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보다는 그 일을 왜 하는지 잊어버렸기 때문에 피곤한 것입니다. 어떤 연구 발표 결과를 보니, 월요일 아침 9시에 사망하는 사람들이 특별히 많다고 하더군요. 왜 그럴까요? 일하러 가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즉, 생각한 대로 실제로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생각은 매우 중요합니다. 자기 생각대로 실제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생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가요? 아니면 부정적이고 절망적인가요? 생각의 방향에 따라서 지금 내 모습이 결정되는 것은 물론이고 먼 미래의 내 모습을 예측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주님 승천 대축일입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승천하시어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마르 16,19 참조) 그러나 인간적인 측면만 보고 판단하면서 이렇게 생각하실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왜 주님께서 우리를 떠나셨을까? 부활하신 후, 왜 우리 곁에 쭉 계시지 않았을까?’

이는 세상의 관점으로 주님께서 이 세상을 버리고 하늘로 올라가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 역시 아쉬워서 그냥 하늘만 바라보고 있지 않았습니까?(사도 1,10 참조) 그러나 주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다는 것은 단순히 우리 곁을 떠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보다는 이제 인간의 나약한 육체의 모습을 띤 채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이 아닌, 전지전능한 영적인 존재로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이 더 우리에게 이롭다고 자주 말씀하셨던 것이지요.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승천하신 것이 감사할 수도 있고, 또 어떻게 생각하면 아쉬움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새긴다면 언제나 감사와 기쁨 안에서 희망의 삶을 살 수 있으며, 세상의 뜻을 먼저 생각한다면 항상 아쉬움과 미련 안에서 절망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런 희망의 삶을 사는 사람은 주님의 뜻을 세상에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주님의 승천 이후에 곳곳에 복음을 선포합니다.(마르 16,20 참조) 희망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 역시 주님의 뜻을 세상에 실천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세계적인 엘리베이터 제조 기업인 오티스는 엘리베이터 속도가 예전보다 느리다는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기존보다 훨씬 강력한 모터와 윤활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느리다는 엘리베이터 속도에 대한 불만은 좀처럼 해결되지 않았지요. 이때 한 직원이 엘리베이터에 거울을 설치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는데, 뜬금없어 보이는 이 아이디어는 고객들의 불만을 크게 개선했습니다. 사람들이 거울을 보며 용모를 가다듬느라 엘리베이터의 느린 속도가 주는 지루함을 신경 쓰지 않게 된 것입니다. 문제의 원인은 분명히 엘리베이터의 속도입니다. 그런데 문제 해결 방법은 속도 조절이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그저 내 할 일만 다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나요? 스스로 할 만큼 했다고 말하면서 주님께 불평불만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알고 이를 행할 때, 비로소 주님 안에서 커다란 위로와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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