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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집, 아름다운 성당을 찾아서] (25) 전주교구 천호 부활성당

[아버지의 집, 아름다운 성당을 찾아서] (25) 전주교구 천호 부활성당

천호 天呼 하느님을 부르며 기도하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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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9 발행 [1462호]
▲ 제단과 양측 벽의 창은 하느님과 인간을 잇는 십자가를 형상화했다.

▲ 천호 부활성당은 삼각형을 기반으로 한 다면체 구조로,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 성당 입구 너른 잔디밭에 있는 성모상.



순교자 무덤에 조성된 성지

그리스도인이라면 꼭 걷고 싶어 하는 세계 3대 순례길이 있다. 바로 예루살렘과 로마,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이다. 이 순례 길의 종착지에는 각각 성당이 있고, 그 성당 제대 아래에는 무덤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 베드로 사도, 야고보 사도의 무덤이다.

한국 교회에서도 순교자의 무덤에 조성된 성지들이 여러 곳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성지가 바로 전주교구 천호성지다. 천호성지는 박해를 피해 온 교우들이 글자 그대로 ‘하느님을 부르며(天呼)’ 함께 모여 살던 교우촌이다. 전북 완주군 익산의 천호산(天壺山) 자락에 자리한 이곳은 1866년과 1868년 순교한 이들의 무덤이 있다. 1866년 12월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이명서(베드로), 손선지(베드로), 정문호(바르톨로메오), 한재권(요셉) 등 4명의 성인과 충청도 공주에서 순교한 김영오(아우구스티노), 그리고 1868년 여산에서 순교한 10명의 무명 순교자들이다.

주님과 함께 부활의 삶을 누리고 있는 순교자의 무덤은 하느님 나라로 가는 이정표이다. 그리스도를 본받고 따르는 길이 ‘하느님의 부르심에 순명하는 것’임을 천호성지 순교자 무덤은 가르쳐주고 있다. 주님 부르심에 순명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웅변하듯 천호성지 가는 길은 굽이굽이 산길이다. 호리병같이 좁은 입구를 지나자 너른 터가 나왔다. 잘 정돈된 잔디밭에 소나무와 편백나무 숲이 울창하다. 숲 속 순례길 양편으로 핀 이름 모를 들꽃들이 순례자의 지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천호 부활성당은 순교자들의 무덤 아래 너른 잔디밭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마치 주님께서 묻히셨다가 부활하신 예루살렘 골고타 언덕의 돌무덤을 연상시키듯 천호 부활성당은 회색 노출 콘크리트로 지어졌다. 입구는 4m, 제단 외벽은 13m로 경사져 있다. 성지에 묻힌 순교자들이 주님과 함께 부활한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제단 벽면이 하늘로 솟구쳐 있다. 또 삼각형을 기반으로 한 다면체 구조로 지어,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띤다. 성당과 분리돼 있는 종탑에는 전주교구 설정 50주년 기념 종이 설치돼 있다.



성당은 돌로 만든 기도서

성당 설계자는 서울대 건축학과 김광현(안드레아) 명예교수다. 그는 “성당은 돌로 만든 기도서”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했다. 그리고 “성당은 내세와 이 세상의 관계를 저쪽과 이쪽이라는 장소로 구분해 저쪽은 앞으로 올 세상과 하늘나라를, 이쪽은 이 세상을 나타낸다”고 했다. 무엇보다 건축물이 사람과 사람을 잇고, 사물과 사물을 잇는 공간임을 중시한 그는 성당이 하느님과 인간을 잇고, 하느님 나라와 세상을 연결하는 다리이자 경계임을 분명히 했다. 그 중심이 바로 제대다.

성당 내부는 마치 무덤 같다. 어둠과 침묵만이 가득하다. 양쪽 벽 아래 가로로 뚫린 여러 창을 투과한 빛이 이 세상에 속한 회중석을 수평으로 가로지르고 있다. 또 제단 한쪽 벽면에 수직으로 꿰뚫은 색유리 창을 통해 제대를 비추는 빛이 하느님의 현존과 저쪽 하늘나라에 속한 순교자들을 드러낸다. 수직과 수평의 창을 투과한 빛은 하느님과 인간을 잇는 십자가를 상징한다. 천호 부활성당의 내부는 제대를 비추는 이 십자가의 빛만으로 충만하다.

성당 내부 역시 서로 크기가 다른 삼각형으로 꾸며져 있다. 벽과 천장 모두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나타내며 가장 완벽한 구도인 삼각 모양으로 조합돼 있다. 마감은 각목으로 돼 있다. 전주 숲정이와 여산 숲정이에서 순교한 후 천호에 묻혔던 순교자들을 기리기 위해 성당 내부를 소나무로 우거진 숲정이로 만들었다.

천호 부활성당은 ‘침묵’을 배우게 한다. 무덤 속 고요함에서 순교자들을 통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다. 어둠 속의 빛은 드러나지 않는 하느님을 우리 삶의 자리에서 체험하게끔 신비로운 경험으로 이끈다. 이 이끄심은 그리스도의 희망과 평화의 복음을 선포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게 한다. 150년 전 병인박해 순교자들이 소리 높여 기도하던 하느님의 이름이 울려 퍼지는 집, 천호 부활성당이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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