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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교회의 맏딸 프랑스를 순례하다 - ①알랑송(Alencon)

- 가톨릭교회의 맏딸 프랑스를 순례하다 - ①알랑송(Alencon)

가족 손 잡고 성당 가던 ‘소화 데레사’ 일상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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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9 발행 [1462호]

봄기운이 짙어지는 4월, 프랑스로 성지순례를 떠났다. 긴긴 가톨릭 역사 안에 켜켜이 쌓인 신앙 유산을 따라, 성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알랑송, 리지외, 투르, 루르드, 파레 르 모니알 등의 도시를 찾았다.

프랑스는 ‘가톨릭교회의 맏딸’이라는 별명을 가진 곳답게 발길 닿는 곳마다 크고 작은 성당이 낯선 이를 맞이한다. 성당을 중심으로 뻗어 있는 아담한 광장과 시장, 마을…. 그 어딘가에 서 있으면 종탑소리가 들려온다. 종소리는 성당으로 오라고, 함께 기도하자고 초대한다. 일상 속 소란을 잠시 뒤로하고 순례를 떠나보자. 먹고, 자고, 걷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이 전부인 시간이다. 프랑스 성지순례기를 5회에 걸쳐 싣는다.글·사진=유은재 기자 you@cpbc.co.kr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차를 타고 3시간을 달려가면 낯선 이름의 소도시 ‘알랑송’에 도착한다.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에 있는 알랑송은 인구 3만 5000명의 작은 도시로 아직 한국 순례객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는 곳이지만 그 존재감은 결코 작지 않다. 세 명의 성인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의 큰 사랑을 받는 성녀 아기 예수의 데레사와 그의 부모인 성 루이 마르탱, 성녀 젤리 게랑 마르탱 이야기의 시작점이 바로 알랑송이다. 마르탱 부부는 1858년 알랑송에서 만나 인연을 맺었고 막내딸 데레사를 포함한 다섯 명의 딸을 길렀다. 자녀들은 모두 수도자의 길을 걸었고 데레사는 1925년, 마르탱 부부는 2015년 시성됐다.

▲ 성녀 소화 데레사가 태어난 집 뒷뜰. 성녀의 행복하고 따스한 유년 기억이 담긴 곳으로 가족은 1871년부터 1877년까지 이 곳에 살았다.

도시 중심부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에서부터 구석구석을 걸었다. 상점 간판을 제외하고는 거의 19세기 모습 그대로라는 마을을 오른쪽, 왼쪽, 또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곳곳에서 마르탱 가족을 만나게 된다. 마르탱 부부가 처음 만나 사랑을 시작한 사르트 다리, 혼인을 올린 노트르담 대성당, 다섯 자녀를 길러낸 집, 봉사를 다니던 병원 등이 모습을 드러낸다.

‘빠른 걸음이면 집에서 5분이면 성당에 갈 수 있었겠네, 데레사 성녀는 언니들을 쫄쫄 따라갔겠지?’ 재밌는 상상에 빠져든다.

세 명의 가족 성인이 탄생한 알랑송은 가족, 연인들이 함께 찾는 곳으로 유명한 순례지다. 특히 마르탱 가족이 데레사가 태어나기 전인 1871년부터 리지외로 떠나기 전 1877년까지 살았던 연붉은 이층집에는 순례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작은 전시관을 더해 꾸며진 집은 부부의 서재, 가족이 함께 식사했던 주방, 침실 등 평범한 19세기 중상층 가정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집 옆에는 데레사 성녀 시성 후 1925년 지어진 작은 경당이 있다. 경당에 들어가면 유리 벽 너머로 데레사     의 탄생과 어머니 젤리의 죽음을 간직한 방이 보인다. ‘가장 먼저 하느님께 봉사, 그리고 정의와 자선(dieu premier servi amour et confiance justice et charite)’이라는 문구가 바닥에 새겨진 게 인상적이다. 성인 가족이 삶의 지향점을 어디에 두고 살았는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이 집의 특별함은 ‘특별한 게 없다’는 데 있다. 평범한 생활 속 작은 사랑을 통해 성화를 이뤄낸 성인들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을 관리하는 아나스타샤 수녀는 “평범한 집에서 평범한 생활을 한 가족이 비범하게 된 것이 이들 성가정에서 배울 수 있는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마르탱 가족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느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고 따르며 희망과 사랑을 잃지 않았고 고통과 슬픔에 무너지지 않았어요. 오늘날 그 가치를 배우기 위해 종교를 뛰어넘어 다양한 방문객이 찾고 있습니다.”

▲ 성녀 소화 데레사 생가에 있는 경당에서 기도하는 신자. 유리 벽 너머로 마르탱 부부의 방, 데레사가 태어나고 젤리가 죽은 방이 보인다.

더 크고 좋은 집에 살 수 있었지만, 성당 곁에 있고 싶어 이곳에 살았다는 마르탱 가족의 뜻처럼 조금만 걸어가면 노트르담 대성당에 닿는다. 마르탱 부부는 이 성당에서 소박한 결혼식을 올렸고 데레사 성녀는 세례를 받았다. 성당은 마르탱 부부가 복자품에 오른 후 2009년 대성당으로 승격됐다. 성당에 가면 시계를 만들었던 아버지 루이와 레이스를 만들었던 어머니 젤리의 삶을 상징하는 손뼈 유해가 모셔져 있다. 데레사 성녀가 세례를 받을 때 입었던 옷 등도 있다.

시내를 걷다 보면 마르탱 부부가 처음 만났던 사르트 다리도 만나게 된다. 라틴어 실력이 부족해 수도원에 들어가지 못한 루이와 역시 수도자를 꿈꿨으나 몸이 약해 포기한 젤리는 첫눈에 운명을 느낀다. 매년 7월 둘째 주 마르탱 부부의 결혼기념일이 되면 이곳에서는 연인들을 위한 축제가 열리는데 특히 올해는 성인 부부의 혼인 160주년을 맞아 더욱 특별한 시간으로 꾸려질 예정이다.

알랑송을 방문했다면 마르탱 가족 발자취 외에 꼭 들러봐야 할 곳이 있다. 레이스 박물관이다. 2010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재로 등록된 ‘알랑송 레이스’는 정교한 프랑스 장인 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최소 7년 이상 전문 교육을 받아야 열 단계의 작업을 거치는 정교한 레이스를 만들 수 있다. 우표 크기만 한 레이스를 만들려면 50시간 이상 걸린다. 가격은 60만 원을 호가한다. 16세기 알랑송에는 레이스 직공 8000여 명이 있을 만큼 산업이 흥했고 젊은 시절 젤리 역시 레이스 직공으로 일했다. 지금도 장인을 양성하는 국립 아틀리에로 레이스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조금 더 여유 시간이 된다면 데레사 성녀가 갓난아기 때 살았던 유모 로즈의 집도 가 볼 만하다. 시내에서 살짝 벗어나면 노르망디 특유의 한적한 풀밭이 펼쳐지는데 7㎞를 달리면 마르탱 가족의 집과는 사뭇 다른 모습의 전형적인 시골 소작농의 집이 있다. 데레사 성녀는 한 살 무렵 어머니의 암 투병이 심해지면서 유모에게 맡겨져 이곳에서 1년가량 생활했다. 알랑송 문화해설사가 전하는 흥미로운 사실은 마르탱 가족이 유모 가족과 친밀하게 교류했으며 계층을 뛰어넘어 겸손한 우정을 나눴다는 점이다.

알랑송은 이처럼 데레사 성녀 가족의 삶을 생생히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성인들의 삶의 현장에서 순례객들은 현재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희로애락이 굽이치는 가정생활, 자녀 양육 문제, 경제 활동에 대한 고민, 갑작스레 다가오는 육체적ㆍ정신적 아픔, 신앙 문제…. 마르탱 부부와 데레사 성녀가 고민하며 지냈던 문제들은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서도 마주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낸 이들이 성인이 됐다. 평범한 일상의 거룩함과 특별함을 알려주는 곳, 알랑송이다.

프랑스 관광청(kr.france.fr), 에어프랑스(airfrance.co.kr) 공동 기획



리지외의 데레사(1873~1897)

아기 예수의 데레사, 예수의 작은 꽃이라는 뜻으로 소화 데레사라고도 불린다. 열다섯 살에 리지외의 가르멜 여자 수도원에 입회해 9년 반 동안 수도생활을 하다 스물네 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매우 단순하고 알려지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세상을 떠난 뒤 성녀가 남긴 글이 책을 통해 알려지면서 하느님을 향한 절대적인 사랑, 순수함, 겸손에 많은 이들이 감동했다. 1925년 시성됐다.

 

루이 마르탱(1823~1894)과 마리아 젤리 마르탱(1831~1877) 부부=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 부모로 2015년 가톨릭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부부가 동시에 시성됐다. ‘부부와 가정 영성, 신앙의 놀라운 증거자’로 칭해지는 마르탱 부부는 기적이나 순교가 아닌 신앙 못자리인 가정의 성화를 통해 성인 반열에 올랐다.




 

▲ 마르탱 부부가 혼인을 한 노트르담 대성당에는 부부의 손 유해가 모셔져 있다. 시계를 만들었던 루이와 레이스를 만들었던 젤리의 삶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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