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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 (10) 말은 곧 나의 인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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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5 발행 [1460호]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소피아씨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레지나 자매 말이에요. 그 자매가 하는 말 듣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니까요.” 레지나 자매라면 다소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말투로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 사람이 뭐라는 줄 아세요? 자기가 바른말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불편해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자신은 하느님 앞에서 당당하다는 거예요. 이 사람 저 사람 상처 주는 말이 바른말입니까?”

또 다른 자매의 말을 듣던 소피아씨도 “그러게요. 나도 그 말을 듣는데 기가 막혀서”라며 한숨을 쉬었다.

가만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평소 원칙을 중요하게 여기는 선희씨가 생각이 났다. 언젠가 선희씨는 행사 진행에 따라 행렬을 하기 위해 맨 앞에 서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이제 움직여요!” 하며 앞으로 가라고 손짓했다. 선희씨는 순간 짜증을 내면서 “그 말은 당신이 아니라 저 사람이 해야 하는 겁니다” 하면서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행사를 지휘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왜 구경하는 당신이 움직이라 말라 하냐는 것이다.

상황이 어찌 되었든 그 순간에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 사람은 군중 속에서 ‘이래라저래라’ 한 사람이 아니라, 원칙을 따지며 바른말을 한 선희씨였다. 물론 어떤 중요한 행사에 책임자가 아닌 주변의 사람들이 이런저런 잔소리를 하면 혼란스럽다. 하지만 꼭 그 순간에 화를 내면서 그 말을 해야 했는지 참으로 안타까웠다. 평소 선희씨는 열심히 일을 잘하다가도 말 때문에 손해를 많이 본다. 하지만 자신은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나의 이런 점을 싫어하는 거 알아요. 그렇다고 서운하지 않아요. 이게 나라는 것을 잘 아니까요.”

신영복 선생은 「담론」에서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인 귀곡자의 말을 빌려 ‘설(說)이 열(悅)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말은 듣는 상대가 기뻐해야 한다’는 의미다. 말은 전달하기 위한 것인데,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쾌하면 의미도 전달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도 어긋난다. 나의 의도를 잘 전하고 싶으면 듣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 같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 나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했지만, 혈기 왕성한 청춘 시기에는 의무와 책임감에 떠밀려 말을 했던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지금은 듣는 사람이 기분 좋은 말을 하고 싶다. 좋은 말만 해도 부족한 인생 아닌가. 하지만 어떤 책임을 가지고 일을 추진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사람에 대한 배려보다 ‘일’ 그 자체에 빠져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곤 ‘나는 원칙 중심이고 사고적이니’ 하면서 ‘그래서 나의 말투가 이래’라고 한다. 하지만 이 말은 다시 말하면 ‘나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나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야!’라는 말은 ‘나의 말로 인해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관심이 없어’라는 말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어떤 방송에서 뇌과학자가 한 말이 생각난다. “인간의 뇌는 분석적 사고와 공감하는 사고를 동시에 못한다.” 이유는 분석적으로 생각하다 보면 공감적 능력이 떨어지고 공감을 하다 보면 논리적인 생각을 못 한다는 것이다. 분석적인 사람이 ‘말’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이유인 것 같다. 그렇다면 분석과 공감의 뇌가 동시에 일을 못 하니 순차적으로 오가는 유연함이 더욱 필요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마음의 여백을 만드는 ‘성찰’의 힘이 필요하다. 말하는 순간마다 깨어 스스로의 말을 의식하고 관찰하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 우선 잠들기 전만이라도 내가 하루 쏟아낸 말들을 떠올려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편안한 자세로 앉아 분석의 뇌 전원을 잠시 끄고 오로지 공감의 뇌가 일하도록 마음을 활짝 열어주자.

“네가 한 말에 따라 너는 의롭다고 선고받기도 하고, 네가 한 말에 따라 너는 단죄받기도 할 것이다.”(마태 12,37)



성찰하기



7 잠자기 전 나의 말로 누군가에게 기분 상하게 했는지 성찰해요. 그리고 그 말을 다시 나에게 돌려서 해봐요.

8 살레시오 성인은 “아픈 부위에 자꾸 손이 가듯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자꾸 말한다”고 해요. 그러니까 내가 한 말은 단순히 실수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요.

9 최고의 성찰은 말하는 그 순간 깨어 나의 말을 듣는 거지요. 노래 잘하는 사람이 노래하면서 자기 목소리를 잘 듣잖아요. 말도 노래와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해 하는 것이니까요.

매일 하루를 시작하기 전 ‘나의 말이 듣는 사람에게 기쁨’이 되도록 진심으로 기도해요.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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