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 (9) 기다림이 사라진 세상에서

[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 (9) 기다림이 사라진 세상에서

Home > 사목영성 > 김용은 수녀의 살다 보면
2018.04.08 발행 [1459호]


“수녀님, 왜 전화 안 받아요?” 평소 가까이 지내던 동료 수녀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순간 당황한 내가 “아~ 무음으로 해놓아서…” 하며 말끝을 흐리는데, “예의 없는 것 아닌가요?” 하며 불평한다. 순간 머리가 띵해지면서 ‘뭔 예의? 긴급 상황이었나? 이 수녀가 왜 이러지?’ 하는 생각에 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알고 보니 그저 무언가 물어보려고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전화 안 받는 것이 그렇게 화날 일인가?’ 하는 생각에 은근히 괘씸하다는 마음마저 들었다. 게다가 ‘예의’까지 운운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뭐라도 한마디 하려고 하는데 그렇게 말한 자신도 놀랐는지 뭐라고 얼버무리며 잽싸게 도망치듯 나가버렸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다. 나는 집중해서 일하거나 회의를 할 때 전화를 무음으로 해놓는다. 원하는 시간에 전화받는 자유마저 잃은 세상에 내가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허탈감이 밀려왔다. 어디 있든 언제든지 벨이 울리면 나는 무조건 응답해야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시간마저 ‘공동의 소유’가 되어버린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아무에게나 접속을 강요받고 있는 시대다. 전화를 받지 않거나 보낸 문자나 카톡에 답글이 즉시 돌아오지 않으면 조바심을 낸다. 기다릴 수가 없다. 기다리더라도 왜 기다려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회의 중입니다’ ‘나중에 연락하겠습니다’ ‘조금 늦겠습니다’라는 댓글이라도 올라와야 한다. 즉각적인 댓글이 올라오지 않으면 ‘나를 무시했어’ 하면서 성급한 판단을 한다.

이제 우리는 더는 기다릴 수 없고 기다리지 않는다. 우리는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대부분 다 이런 현실에 익숙해지고 있다. 막연한 기다림이란 있을 수 없다. 막차가 끊겨서, 차를 잘 못 타서, 몸이 아파서 약속 장소에 가지 못한다 해도 즉시 손가락 몇 개만 움직이면 되니까. 전철이나 버스가 지연되어도 얼마나 늦는지 확인해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수십 번씩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언젠가 나는 버스정보시스템(BIS)이 고장 난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린 적이 있다. 그런데 어쩌면 시간이 그리 더디 가고 무료한지 갑갑할 지경이었다. 그런 나 자신이 참으로 한심하고 실망스러웠다. 사실 급한 일도 없는데 말이다. “앱 까세요. 실시간 버스 위치 정보 볼 수 있어요.” 누군가 나의 이런 느낌에 건넨 조언이다. 그런데 실시간 정보를 확인한다고 해서 기다리는 시간이 단축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마음이 더 즐겁고 편안한가? 안내판 대신 버스위치 정보만 조급한 마음으로 열심히 뚫어져라 볼 뿐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 삶의 과정이 가속화되면서 조급증이 만연하다. 기다릴 줄 모르고 쉽게 화를 내고 요구가 많아진다. 산만해서 남의 이야기를 잘 듣지 못하고 성급하게 판단한다. 과정을 음미하지 못하고 성과로 이어지는 결과에 집착한다. 무엇보다 행복한 감정도 당장 느끼고 싶어 한다. 땀을 흘리고 애써서 얻는 만족감보다는 커피 한 잔, 담배 한 개비, 술 한 잔, 게임 한 판으로 즐거운 감정을 누리고 싶다. 그래서 쉽게 중독에 노출된다. 중독은 즉각적인 쾌감에 따른 유혹을 이기지 못해서이기도 하다. 지루하고 심심하고 우울하고 슬픈 이 부정적인 이 감정을 단번에 바꾸어주는 이 ‘인스턴트 재미’는 누구에게나 유혹이 된다.

사실상 조급한 마음은 바빠서 생기는 것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 충분히 머물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이 현실을 건너뛰고 싶다. 그래서 기도할 수도 없다. 기도는 ‘지금’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이다. 깊은 침묵 속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서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주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고, 두 손을 모으고 마음을 비우고 마냥 기다려야 한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기다림은 누군가의 만남이나 원하는 결과를 위한 과정이 아니다. 기다리는 순간부터 나는 이미 만나고 있고 결과에 대한 기쁨은 희망으로 가득하다.

“내 영혼아, 오직 하느님을 향해 말없이 기다려라, 그분에게서 나의 희망이 오느니!”(시편 62,6)





성찰하기



7 신호등 앞에서, 은행창구에서, 전철이나 버스정거장에서, 병원에서. 조급해지는 마음을 내려놓아요. 지금이 바로 ‘조급증’을 치유하는 소중한 순간임을 기억하면서.

8 기다리는 지금 이 순간을 즐겨요. 즐기는 ‘나’에게 또 집중해요.

9 평소에 직접 손이나 몸으로 하는 일을 해요. 일기 쓰기, 운동하기, 그림 그리기, 독서하기, 성경 필사 등으로 손과 몸의 속도와 친해져요.

결과보다는 ‘과정’을 찬찬히 음미하는 연습을 해요. 그러면 ‘지금’에 집중하는 힘이 생겨요, 바로 그 지점에서 하느님 체험이 시작되니까요.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



ⓒ 가톨릭평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보기
첨부파일
발행일자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