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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아내 일으킨 것은 오직 사랑 사랑 사랑

부활에 만난 사람 - 뇌출혈로 쓰러졌다 남편의 지극 정성으로 새 삶 사는 부부 서규석·신향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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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8 발행 [1459호]
▲ 뇌출혈로 인한 의식불명으로 가장 나약한 환자가 된 아내 신향철씨를 지극 정성으로 간호해 새 삶을 얻도록 힘쓴 서규석씨가 카메라 앞에서 다정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정훈 기자

▲ 서규석씨와 신향철씨가 병원에서 재활하며 함께 찍은 사진. 서규석씨 제공



아내는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남편을 바라봤다. 아내 손을 꼭 잡은 남편의 손에는 사랑의 기운이 가득 배어 있다. 남편은 여전히 아내의 고통을 걱정했고, 아내는 “괜찮다”며 오히려 남편의 마음을 헤아렸다. 그리고 부부는 주저 없이 서로에게 말했다. “여보, 사랑해요.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생사를 오가는 고통도 부부의 사랑을 갈라놓을 순 없었다. 사랑의 기적으로 ‘부활의 삶’을 살고 있는 서규석(베드로, 76, 원주교구 구곡본당)ㆍ신향철(마리나, 61)씨 이야기다.

2013년 아내가 쓰러졌다. 건강하던 아내에게 갑작스레 뇌출혈이 찾아왔다. 3일 동안 큰 수술이 이어졌다. 수술실을 나온 의사의 입에서 청천벽력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아내분이 깨어날 가능성은 20% 미만입니다. 평생 의식 없이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일주일 후 남편 서씨의 하늘은 다시 한 번 무너졌다. 슈퍼박테리아 감염으로 아내에게 2차 뇌출혈이 발생했다. 늘 밝기만 했던 아내는 병상에서 입을 벌린 채 한마디 말이 없는 사람이 돼 있었다. 급기야 의사는 “장례를 준비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하루하루를 눈물로 지새웠어요. 긴 수술 동안 저는 묵주기도로 함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매우 위험했지만, 다시 수술하면 아내가 살아날 확률은 0.1%였습니다. 절대 아내를 잃을 순 없었어요. 고심 끝에 수술을 부탁했죠. 모든 일은 제가 책임지겠다고요.”

남편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프랑스 기업의 한국대표를 지내고 2005년 은퇴한 남편 서씨는 이후 모든 일을 접고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다. 남편은 ‘내가 무너지면 아내도 희망을 잃게 될 것’이라 여겼고, 지친 내색 없이 아내에게 “오늘도 참 예쁘다”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일과를 빠짐없이 이야기해줬다. 프랑스에 있는 세 자녀와 손주들 이야기, 친척과 친구 소식부터 성경 말씀과 성탄 시기 예수 탄생의 기쁨까지도. 같은 시기에 남편도 심장 수술을 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믿음,그리고 사랑의 기적

하느님도 남편의 사랑에 감동한 것일까. 0.1%의 확률을 뚫고 아내는 깨어났다. 풀렸던 동공에 생기가 돌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 같았던 아내의 의식은 기적처럼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뜨거운 눈물로 남편의 말에 처음 반응하기까지 40일이 넘게 걸렸다. 아내는 이후 음식을 삼키고, 말하고 움직이는 법부터 삶을 새롭게 다시 시작했다. 40개월 동안 수술만 10차례. 이후 아내는 재활에 들어갔다. 출구가 없을 것 같았던 죽음의 길 끝에 생(生)으로 가는 문이 열렸다.

“의식이 없더라도 살아 있는 동안 ‘가장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듣고 말할 수 없어도 수없이 사랑한다고 했고, 저의 진심과 소통이 의식을 깨우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사랑만큼 환자에게 좋은 것은 없다고 여기고 평소처럼 대화했죠. 병원이 하는 의학적 치료 외에 저는 마음의 치유를 위해 아내에게 ‘사랑 주기 작업’을 끝까지 했습니다.”(남편)

의식이 없는 중에도 ‘사랑의 소통’이 사람을 살릴 수 있음을 부부는 체험했다. 신씨의 치유는 의학적으로도 극히 드문 사례. 아내는 여전히 재활 중이지만 사랑과 신앙은 더 깊어졌다. 부부는 매일 미사에 참여하고, 산책도 다니고 운동도 하면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아내 신씨는 “의식이 불분명한 중에도 인간의 가장 큰 고통은 외로움이라는 걸 느꼈다. 환자를 일으키는 것은 ‘사랑’임을 몸소 느꼈다”면서 “남편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지금 이렇게 아름다운 삶을 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비슷한 사연의 프랑스 부부 책 번역

남편 서씨는 이후, 의식을 잃었다가 기적적으로 치유된 프랑스인 부부 이야기를 담은 「눈물 한 방울」(바오로딸)을 번역해 최근 펴냈다. 서씨가 희망을 잃지 않았던 것도 혼수상태에 있었던 책의 저자(앙젤 리에비)가 사랑과 감동을 느끼고 깨어난 경험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씨 부부의 사연은 지난해 대한뇌졸중학회 수기에도 최우수작으로 실렸다.

“제가 병환 중에 남편이 ‘하느님을 알아볼 지성만이라도 주십시오’하고 기도했대요. 이제 하느님만 바라보며 사는 부부가 되려고요.”(아내)

“어쩌면 아내를 잃을 뻔했지만, 하느님이 주신 생명으로 새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저희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일에 충실하며 살려고요. 같은 병으로 고통 중에 있는 부부와 가족이 저희처럼 하느님이 주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남편)

부부는 인터뷰가 끝나고 다시 서로를 바라봤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랑한다. 고맙다”고 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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