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출판
[배우화가 김현정의 영화 & 명화] (14)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벚꽃 사이로 보이는 후지산
그림과 춤으로 녹여낸 ‘덧없는 세상’
2018. 03. 11발행 [14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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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일본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우리와 많이 다르다는 점에 놀란다.일본 문화에 빠진 서양인들은 자신들이 마치 동방에 대해 아는 것처럼 행동한다.그들 가운데 일본 문화가 깊숙이 자리한 것이다.동방 문화를 대표하는 단어 중 하나인‘선(禪)’은 영어로‘젠(Zen)’이다.이는 우리말도 중국어도 아닌 일본어이다.


▲ 후지산을 그린 일본의 다색 목판화 우끼요에.



2009년에 개봉한 유럽 영화‘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의 첫 장면은 후지산을 그린 일본의 다색 목판화 우끼요에이다.일본에 가는 것이 평생의 꿈인 아내 트루디와 무뚝뚝하고 시곗바늘처럼 정확한 남편 루디.모험을 사랑하는 아내는 안정이 최고인 남편에게 맞추느라 자신의 꿈을 포기한다.아내는 남편이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숨긴 채 베를린으로 자식들을 찾아간다.

▲ 영화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포스터.




자식들의 눈치에 불편한 노부부.아내 트루디의 젊은 시절 꿈인 부토 댄스 공연 관람을 끝으로 발트해로 여행을 간다.아내는 남편에게 정말 해보고 싶은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늘 그랬듯이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당신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게 가장 행복한 일이라고 대답한다.여행 중 돌연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홀로 남겨진 남자는 부토 무용수가 꿈이었던 아내의 유품을 만지며 깊은 슬픔에 빠진다.

남자는 자신 때문에 아내의 후지산 방문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재산을 정리하고 막내아들이 있는 도쿄로 가지만 그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막내아들 또한 부담을 느낀다. 아들은 어머니 생전에 왜 오지 않았냐고 묻는다.남자가 대답한다. “시간이 많은 줄 알았다고.”

외투 안에 아내의 옷을 껴입은 남자는 공원을 배회한다. 벚꽃이 한창인 공원에서 죽은 엄마를 상징하는 분홍색 유선전화 수화기를 들고 부토 춤을 추는 소녀 유를 만나 그와 친해진다. 남자는 유와 함께 도쿄에서 두 시간거리인 후지산으로 여행을 떠난다. 눈 덮인 후지산이 선명하게 얼굴을 내보이던 어느 날 아침, 그는 아내가 평소 즐겨 입던 일본식 가운을 입고 죽음의 춤을 춘다. 마치 자신의 내면에 자리한 아내의 혼을 불러내듯.

아내의 유품에 가츠시카 호쿠사이(1760-1849)의 ‘후지산 100경’이 있다. 우끼요에의 대가인 호쿠사이는 ‘자포니즘’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자포니즘은 유럽 예술세계에 영향을 준 일본풍 예술을 통칭한다. 빈센트 반 고흐, 에드가르 드가, 클로드 마네 등 인상파를 대표하는 화가들을 비롯해 음악가인 클로드 드뷔시가 호쿠사이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드뷔시는 가나가와 앞바다의 파도 치는 모습을 그린 우끼요에로부터 영감을 받아 ‘바다’를 작곡했다. 프랑스 문학비평가 에드몽 드 공쿠르도 1896년에 쓴 책 ‘호쿠사이’를 통해 일본 예술을 유럽에 알리는 데 힘썼다.

영화 속 부토 댄스 또한 무용계의 우끼요에라고 불릴 만큼 유럽 현대무용에 큰 영향을 주었다. 부토는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전통적인 춤사위로 표현할 수 없었던 극단의 허무와 죽음, 불안 등을 내면과 무의식의 흐름에 따라 표현한 춤이다. 1980년대 유럽 무대에 선보인 이후 세계 현대무용을 이끄는 한 축이 되었다. 자포니즘이 다시 한 번 일어난 것이다.

영화는 유럽인 노부부의 내면의 변화를 쫓는다.그들의 삶과 죽음에 우끼요에가 있고 부토가 있다. 여전히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유럽은 열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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