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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회 신앙체험수기] 우수상 / 김점순 로사 (광주대교구 연향동본당)

[제 5회 신앙체험수기] 우수상 / 김점순 로사 (광주대교구 연향동본당)

하느님 사랑에 뿌리 내리고, 하느님 품에 닻을 내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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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1 발행 [1455호]



악! 외마디와 함께 거실 바닥에 철퍼덕 넘어졌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하고 저쪽으로 멀리 떨어져 나뒹구는 전화기에서 소리가 들려오는데 거실 바닥 물 위에 누운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숨이 막혀왔다. 정신이 아득해져 왔으며 세상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수영장에 가는 차를 신청하기 위해 전화를 하며 거실로 나오다 밤새 정수기에서 새어 나온 물이 흥건히 고인 거실 바닥에 미끄러져 누워버린 것이다. 핸드폰을 놓쳐 버린 채.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장애인 콜택시에 몸을 싣고 병원으로 가니 침대에 뉘어 이리저리 밀고 다니며 한참 동안 검사를 마치신 의사 선생님께서 등뼈 12번 골절이라고 하시며, 12주 동안 침상에 누워 움직이지 않는 게 치료의 최선이라고 하셨다. 말문이 막혀버리고 눈물이 주르르 양 볼을 타고 흘렀다.

초등학교 교사인 나는 20여 년 전 업무상 과로로 인해 뇌경색으로 쓰러져 침상만 지키던 장애인이었다. 그때의 충격과 후유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병원으로, 복지센터 체육관으로, 수영장으로 다니며 피나는 노력으로 이제 겨우 활발한 마음으로 걷기 시작했는데 청천 하늘의 날벼락이었다. 등의 통증으로 인해 일어나 앉을 수도 없었고, 걸을 수도 없었으며 누워서도 통증이 심했다.

17, 18년 동안의 냉담을 풀고 하느님 앞에 무릎 꿇고 눈물을 흘리는 내 손에 스텔라 선생님께서 꼭 쥐여주신 까만 팔찌 묵주를 쥔 채 비몽사몽 헤매며, 1주일 동안 지냈던 지하 응급 병동에서 만난 상타 수녀님은 잊을 수 없는 위로자셨다. 응급 병동에서 일반 병동으로 옮겨 침상에 누운 내게 갖가지 생각이 스쳤다.

‘왜 나는 이렇게 아프기만 한 걸까! 그동안 냉담해 온 내게 주님께서 벌을 내리신 걸까? 아니야, 예수님께서는 다시 돌아온 어린양에게 더욱 큰 사랑을 주신다고 했는데, 그럴 리 없어’ 하고….

움직이면 안 된다고 하신 의사 선생님 말씀에 따라 천정만 바라보고 누워 있으려니 모든 게 후회스러웠다. 반신마비에서 어느 정도 회복이 되자 너무 기쁜 나머지 운동한답시고 탁구장으로, 수영장으로 다녔던 일이나 낮은 산등성이를 헤맸던 일이…. 조금만 더 주의했더라면 이렇게 다치는 일이 없었을 텐데.

보조기를 착용하고 조금씩 움직여도 된다고 한 어느 날, 4층에 있는 성당엘 가게 되었다. 성당에 가서 예수님께 인사를 드리고 서 있는데 수녀님께서 오셨다. 난 “수녀님, 저는 죄를 너무 많이 지었나 봐요” 하고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수녀님께서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자매님을 더욱 사랑하십니다” 하시며 달래주셨다. 수녀님과 한참을 대화하고 기도를 바친 후 병실로 돌아와 누워있는데, 지난날 뇌졸중으로 쓰러져 반신마비로 인해 움직일 수가 없어 직장인 학교에 휴직계를 내고 밖에는 아예 나다니지 못하고 침상만 지키며 지내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자다가 깨어서 온 방을 기어 다니며 몸부림치다가 아무것도 달라짐이 없음을 깨닫기도 하고, 가족들 모두 잠든 틈을 타 깜깜한 거실에 나와 아파트 13층에서 뛰어내릴까를 생각하며 날밤을 새우던 일은 얼마나 많았던가! 그렇게 몸부림하다 거실 바닥에 어렴풋이 잠들었는데 한줄기 환한 빛에 싸인 성모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잠에서 깬 나는 생각했다. 아, 성모님께서 나를 살려 주시러 오셨다. 나는 곧 일어날 수 있을 거야. 문병 오셨던 자매님들 말이 맞아. “로사씨는 꼭 일어나실 거예요. 하느님께서는 로사씨를 꼭 낫게 해주실 거예요. 로사씨를 쓸데가 있을 거란 말이에요. 염려 말고 우리 기도드리고 운동하기로 해요”라고 하셨던 말이. ‘맞아, 이런 고통 하나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을 하는 것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못할 일이며, 내 영혼은 영원히 세상을 떠돌지 않겠는가? 다시 일어나 아직 초등학교 2학년, 4학년인 우리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야 한다. 하느님께 더는 죄를 짓지 말고, 학교에서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돌아가야 해’ 하며 자신에게 타일렀고 반성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교만에서 건져주시고 겸손한 삶을 살란 뜻으로 이렇게 쓰러뜨린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그동안의 교만의 삶을 버리리라 생각했고, 오직 나만을 위해 살아왔던 이기심에서 벗어나야겠다고 마음먹고 성실히 치료에 임했으며 운동도 열심히 하였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의사 선생님의 진단이 있어 학교로 돌아오니 제일 먼저 장애아동들이 눈에 띄었다. 지난날 무심코 보아 넘긴 그네들의 고통을 그제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 아이들을 위해 대학원을 다니며 특수교육을 공부했고, 오직 병원과 학교만 오가며 지냈다. 물론, 나를 위험에서 구해주셨으며 교만의 수렁에서 건져주시고 평화를 주시는 하느님께 기도드리고 주일 미사에도 다녔다. 신부님께서는 걷기 힘들어하는 내 앞으로 오셔서 성체를 영하게 해주셨다.

2년 후, 본당 신부님께서 다른 곳으로 가시게 되었고 움직이지 않은 한쪽 팔다리로 인한 부끄러움과 펴지지 않은 왼손이 나를 성당에 잘 나가지 않게 하였다. 냉담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나를 고아로 놔두지 않으실 거라는 믿음은 가슴 깊숙이 새기고 있었다.

학교에서 장애아동들과 지내며 병원으로, 수영장으로 그리고 스포츠센터를 다니며 재활치료를 하였으며, 쓰러지기 전에 공부했던 붓글씨며 문인화 그리기를, 비록 한 손이었지만 열심히 하며 기쁘고 행복한 순간을 맞이했다. 수영장에서 만난 마리안느 자매님 덕분에 냉담을 풀고 성당에 나가게 되어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즐겁고 평화로운 날을 보낼 수 있게 되었는데 또다시 이렇게 사고가 나니 내 몸을 어찌할 수 없어 답답하고 힘들었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냈으며, 또다시 일어서려고 노력했다.



지루함과 따분한 병원 생활이 점차 희망으로 변해갔다. 아침에 일어나면 또 그대로의 아침이었고, 저녁이 되어도 더디 가는 시간과 얼른 완쾌되지 않아 답답하던 생활이 아침 해가 밝아오면, 산책길에 성모님과의 만남을 생각하며 미소 짓게 되었고, 성당으로 향하는 가벼운 발걸음이 즐거움을 주었다. 저녁 식사 후 묵주기도를 바치며 스르르 잠드는 안식의 밤이 되었으며, 오늘 잠속에는 예수님께서 오시려나, 성모님은 또 어떤 모습이실까? 설렘으로 변해갔다

본당에서 수녀님과 자매님들이 오셔서 위로해 주셨고, 기도해 주셨으며 하루는 이웃 성당 자매님들께서 환자를 위한 기도를 해주시러 오셨다. 난 그분들에게 절망의 눈빛은 건네지 않으려고 애썼다. 비록 온전치 못한 몸이지만 참을 만하다고 말씀드렸고 오래전 쓰러져 한쪽 팔다리를 움직이지 못했을 그때에는 언제 나을지, 나을 수나 있을지 모든 게 불투명해서 절망스러운 날이었지만, 지금은 12주만 지나면 벌떡 일어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를 얘기했다. 그리고 “우리 예수님께서는 저를 이토록 사랑하신답니다” 하며 웃었더니 자매님 한 분이 “환우의 얼굴에서 이렇게 환한 웃음을 볼 수 있다니요. 예수님께서는 진정 자매님과 함께하시는군요” 하시면서 함빡 웃으시며 기도해 주셨다. 아나니아 원목 수녀님께서도 매일 병실을 방문하셨으며, 혹 내가 속상한 일이 있어 울고 있을 때는 내 곁에 앉아 등을 가만히 쓸어주시며 함께 눈물을 흘려주시고 기도해주셨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거듭 기도를 받는 동안 아픈 등은 점점 나아갔으며 내 마음은 기쁨으로 채워져 갔다.

직장에 나가야 했기 때문에 그리고 마음이 부족한 탓으로 그동안 다니지 못했던 매일 미사를 다니며 온전히 낫게 해주시라고 예수님께 매달렸다. 병문안 오셔서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분들께 “염려 마세요. 저는 곧 나을 거예요. 병원에 온 일이 너무 좋아요. 병원에 와서 예수님과 더욱 가까워졌답니다” 하며 미소를 보였더니 그분들도 걱정을 거두고 함께 웃으셨다.



그러면서도 금세 나을 거라는 기쁨과 염려스러운 마음이 교차한 하루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뼈가 제대로 붙지 않으면 어쩌나, 등뼈는 다른 부위와 달리 그대로 붙는 게 아니고, 깡통 찌그러진 것처럼 눌러져서 완쾌되어도 원래대로 펴지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12주 지나서 완쾌되어도 그 후유증으로 장애가 되면 어떻게 할까, 지금의 뇌 병변 지체 장애에 또 등뼈 압박골절 후유증이라니 이 얼마나 한심스러운 일인가! 생각하며. 그럴 때마다 ‘예수님, 예수님만을 오롯이 믿는다고 하면서도 염려하는 이 마음을 벌하소서!’ 하며 눈물로써 기도드렸다. 또다시 모든 걸 예수님께 맡기고 또 성모님께 매달렸다. ‘성모님 함께 기도해 주세요’ 하면서 어린아이처럼 성모 마리아님, 어머니, 엄마! 하고 애타게 불렀다. 그리고 언제나 묵주는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러면서 내가 지금까지 냉담하고 있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했다. 다치기 몇 주일 전부터 성당에 나가기 시작해 얼마나 다행인지, 내 모든 걸 오롯이 예수님께 맡기고 성모님께 매달리는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 순간인가를 생각하며 그동안 냉담 중이었던 나를 성당으로 이끌어주신, 장애인 콜택시 실바노 기사님과 마리안느 자매님께 감사드렸다.

성당에서 그리고 병상에서 예수님을 만나며 생활하는 가운데 아픔은 점점 사라지고 평화의 시간이 흘러가는데, 하루는 꿈속에서 성모님이신지 돌아가신 친정엄마인지 모를 새하얀 옷차림의 여인이 내 등 뒤에 앉아 등을 어루만져 주시는 게 아닌가! 그때의 따스함과 포근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황홀함이었다. 엑스레이 촬영하러 가자시는 간호사님 말씀에 잠에서 일어나서 영상의학과에 다녀온 나는 ‘성모님께서 오셨는데, 성모님께서 내 등을 어루만져주셨는데 무엇이 두려우랴!’를 되뇌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오후 회진 시간에 담당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기쁜 소식을 들었다. 등뼈 촬영 결과는 좋은 상태라고, 염려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나도 모르게 ‘아, 예수님, 성모님!’ 하며 두 손을 모았다. 더욱 열심히 매일 미사에 다녔으며, 묵주기도를 바쳤다. 성당에 앉아서, 산책길에서, 빨래 걷으러 옥상에 오가면서….

그동안 온전치 못한 다리로 절름거리며 제대 앞에 걸어나가는 일이 몹시 부끄러웠고, 왼손가락이 잘 펴지지 않아 성체 영할 때 신부님 앞에 나서서 손 내밀기가 어려워 성당에 나가지 못하고, 내 마음 아픔만을 내세워 냉담했었는데 이제는 기쁜 마음으로 환자복 위에 보조기까지 착용하고, 교우들 앞에 나가 독서를 하는데도 부끄럽지 않았으며, 신부님 앞에서 마음 편히 조막손을 내밀 수 있었다. 성당에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고, 근심 걱정은 사라져갔으며 기쁨으로 충만했다.

입원한 지 12주가 지나서 퇴원하고 직장인 학교에 1개월 휴직신청서를 내고 집에서 쉬게 되었다. 어서 빨리 학교에 가서 귀여운 우리 아이들을 만나서 뒹굴고 싶었고 일하고 싶었지만, 아직 보조기를 착용해야 했으며 요양이 필요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등뼈골절에는 눕는 게 최선이라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따라 엄마는 방에서도 거실에서도 기회만 되면 누우시라고 딸아이가 거실에 푹신한 이불을 깔아주었다.

잠깐잠깐 보조기도 벗고 싱크대 앞에 서서 식사준비도 하고, 주일에는 본당에 미사 참례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병원에 가야 하는 날엔 예약 시간보다 이르게 나가서 의사 선생님을 뵙기 전에 병원 성당 매일 미사에 참례하였다. 가끔 친구들 모임에도 나가며 즐거운 나날을 보낸 지 한 달이 지나서 학교에 나갔다. 눈망울 초롱초롱한 우리 아이들과 동료 선생님들을 만났다.

순진무구한 우리 아이들을 만나 함께 지낼 수 있게 해주신 예수님께 감사드리며 즐거운 나날을 보내던 중 거실에 깔아놓은 이불이 화근이 되었다. 판공성사를 보고 돌아온 기분 좋았던 날 밤, 지체 장애로 인해 왼쪽 다리가 힘이 없었고, 조그만 장애물에도 걸려 걷기 힘들었던 다리가 삼 개월을 누워 지내며 운동을 못 했던 탓인지 이불자락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서 있는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퍽! 넘어지니 어떻게 방어할 수 없어 그대로 거실 바닥에 거꾸러지고 말았다. 얼굴이 바닥에 박히고 움직이지 못하는 왼쪽 팔이 구부러진 채 바닥에 내쳐졌다. 어찌나 통증이 심한지 죽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나도 모르게 엎드려서 ‘예수님 살려주세요, 저 좀 살려주세요, 예수님’ 하고 부르짖었다.

앞이마는 밤송이보다 더 크게 부풀어 올랐으며 왼쪽 팔이 덜렁거렸고, 통증은 말할 수 없이 심했다. 가족들은 직장 관계로 서울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혼자서 감당할 수 없어서 아파트 이웃 동에 사시는 구역장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달려와 주셔서 응급실에 함께 가 주셨다. 엑스레이 촬영결과 다행히 골절은 아니라고 해서 진통 주사만 맞고 집으로 돌아왔다. 골절이 아니어서 집으로 왔지만, 진통 주사에도 끄떡없는 통증을 참아내기가 힘들었다. 겨우 잠들어 다음날 병원에 가서 통증을 호소하니 CT와 초음파 예약을 해주셨다. 진통 주사와 진통제로 겨우 하루를 버티고 참을 수 없는 통증으로 인해 다음날인 일요일에 다시 응급실로 가서 CT와 초음파 촬영을 해서 실금이 있는지, 인대 상태는 어떠한지 살폈는데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심한 타박상으로 인해 왼쪽 팔이 온통 피멍으로 범벅이 되었다. 예수님께서 날 안아 주셔서 이렇게 심하게 다쳤는데 골절도 실금도 가지 않았고 인대도 무사한 거로 생각하고 묵주를 찾아들고 눈물을 흘리며 감사기도를 드렸다. 하지만 톱날로 썰어 낸듯한 통증은 참아내기 힘들었다. 병원에서 강한 진통제를 처방받아 왔지만, 통증은 막아낼 수 없었다. 아팠지만,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학교에 나갔다. 3개월 동안 기간제 선생님께 맡겼던 우리 아이들에게 더는 죄지을 수 없어 쉴 수가 없었다.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에서 예수님을 느끼며 통증을 이겨냈다. 미리 계획했던 대로 눈썰매장 체험장에 데리고 가서 신 나는 하루를 보내는 아이들을 보며 위로를 받았다.

하루는 꿈속에서 까만 수단 차림의 보좌 신부님께서 나의 아픈 팔을 잡고 이끄시고 저쪽에서는 하얀 제의를 입으신 주임 신부님께서 우리를 향해 인자한 미소를 보내시며 손짓을 하고 계셨다. 스텔라 선생님께서 전화하시자 말씀드렸더니 ‘아!’ 낮은 탄성과 함께 그분들이 예수님이신데 하고 혼잣말을 하신 후 말씀하셨다. “그것 봐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로사씨 곁에 오시지? 예수님께서는 로사씨를 특별히 사랑하고 계시네, 자 우리 다시 힘내요. 우린 주님으로부터 힘을 얻고 긍정에너지를 주시는 주님께 감사기도 드립시다. 주님은 두 팔로 로사를 꼭 안아 주실 거예요” 라며….

성탄 전야! 넘어지면서 골절되었던 등뼈에 무리가 갔는지 등이 다시 아파서 보조기를 착용한 후 지팡이에 의지하고 성당에 나갔다. 오랜만에 성당에 나가게 된 내 손을 꼬옥 잡아 주신 수녀님과 맨 앞자리를 양보해주시고, 이것저것 챙겨주신 자매님 사랑 속에 성탄전야 축하 잔치도 구경하고 미사에 참례하였다. 초등학교 어린이 재롱과 청년 연극도 즐거웠지만, ME(매리지 엔카운터) 부부들의 ‘앗싸 예수님!’ 율동이 퍽 인상적이었다. 나도 모르게 몸이 그분들을 따라 움직였으며 앞으로 뛰어 나가 함께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마음만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내년 성탄절에는 내가 교우님들을 즐겁게 해드릴 수 있는 어떤 일이 있을지 기분 좋은 상상도 해보았다.



통증은 여전했지만 행복했다. 냉담 중이었던 수많은 날, 그때는 주일만 되면 내가 신앙적으로 미아가 된 기분으로 무척 허전하고 쓸쓸했었는데, 성탄절과 부활절에는 그 쓸쓸함과 외로움은 더욱 심했는데, 비록 갑옷처럼 딱딱한 보조기가 몹시 불편했지만, 팔의 통증은 여전히 심했지만 또한 구유에 누워계시는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리러 나가서 넘어질 듯 비틀거렸지만 부끄럽지 않았으며 기쁘고 행복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너무 기쁘고 행복해서 가슴 설렙니다. 이 마음 영원하도록 지켜주세요’ 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드렸다. 기도하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성탄절의 기쁨을 전해 드리려고 두 분 원목 수녀님께 문자를 드렸다. 아기 예수님 탄생의 기쁨을 말씀드리고, 좀 다쳐서 그동안 병원성당에 갈 수 없었다고, 이만큼만 다치게 해주신 예수님께 감사드린다고…. ‘저런 많이 다치셨나요? 아기 예수님의 탄생 기쁨 가득하시길, 주님 안에서 행복한 나날 되시길 기도합니다. 그렇게 다치셨어도 감사하는 로사 선생님 존경스럽습니다’ 하고 수녀님께서 금세 답을 주셨다. 성당 구유 사진과 함께. 예수님께서 날 안아주시지 않으셨으면 더 크게 다쳤을 거라고, 감사기도 드린다고 말씀드리고 방학하면 수녀님 뵈러 가겠다는 말도 덧붙여 다시 문자를 드리며, 잠시 통증을 잊을 수 있었다.

팔과 이마의 심한 통증으로 인해 시간마다 잠에서 깨어서 의자에 앉아 뜬눈으로 밤을 보내게 되자 수면제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는데, 넘어진 지 2주일이 지날 즈음 그동안 복용해오던 수면제도 듣지 않았다. 수면제 복용 후에 여전히 한두 시간 만에 잠에서 깨어나게 되었다. 다행히 그때는 멍이 아래로 내려오면서 손목과 손에 통증이 왔지만 예리한 통증에서 다소 벗어날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출근길 차 안에서도, 잠자리에 들면서도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성모님을 통해 예수님께 바치는 묵주기도가 나의 기쁨이자, 행복이 되었다.

이제 나는 아픔에서 점점 벗어나게 될 것이고, 흐르는 세월과 함께 예전의 건강을 되찾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대로 살아갈 것이다. 성실히 주일 미사에 참례하고 예수님께 내 모든 걸 맡기고 의지하며, 성모님께 매달려 살아가려 한다. 미사에 나가 20년 동안 하지 못했던 독서도 하고 싶고, 구역 반 모임에 참여해서 자매님들과 수다도 떨며 일상을 즐길 것이다. 학교에 나가 선생님만 바라보는 우리 아이들을 사랑으로 감싸며, 우리 좋으신 예수님 닮기를 노력하리라. 더욱 중요한 것은 지금 이 마음 영원토록 간직하게 해주시라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드려야겠다.

병원에서의 일과 중 가장 기억에 남은 일은 매일 미사에 참례하며 예수님 만났던 일과, 주일 미사를 드린 후 병상에 돌아와 주보와 가톨릭평화신문 읽는 재미였다. 그동안 신부님께서 읽어주신 부분만 함께 보고 버렸던 주보에 커다란 즐거움이 녹아있다는 걸 그때야 발견했다. 어느 신부님께서 하셨던 귀한 말씀을 메모해 두었던 일이 생각났다.

삶에서 많은 사건이 너무도 쉽게 우리를 사방으로 끌어당겨 우리의 영혼을 잃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가 한결같이 하느님 품에 닻을 내리고 하느님 사랑에 뿌리내릴 때, 우리는 죽음까지 포함하여 그 무엇도 두려워할 것이 없으며 기쁨을 주는 모든 것과 고통을 주는 모든 것은 우리에게 예수님 나라를 선포하는 기회를 준다.

신부님의 말씀을 가만히 음미해 보며,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도록 하느님 사랑에 뿌리를 내려야겠으며, 하느님 품에 닻을 내려 예수님 나라를 선포하는 기회를 가지는 영광을 누리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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