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 (11) 십자고상 (중) 6~8세기
십자가 예수님의 부르짖음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2018. 03. 11발행 [14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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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아 에데사 교회 라불라 주교의 복음서 필사본 중 일부, 6세기, 이탈리아 피렌체, 라우렌시아나도서관.



로마 카피톨리노 언덕과 팔라티노 언덕 사이에는 고대 로마 제국의 정치 경제 사회의 중심지였던 포룸 로마눔(Forum Romarum)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5세기 때 지은 옛 성모 마리아 성당이 있습니다. 이름 그대로 ‘바실리카 디 산타 마리아 안티콰’(Basilica di Santa Maria Antiqua)라 부르는 이 성당에는 로마로 유입된 초기 시리아풍의 십자고상 프레스코화(주님 수난화)가 남아 있습니다. 6세기부터 8세기 사이에 그려진 이 프레스코화는 지난번 소개했던 6세기 필사본 「라불라 복음서」의 채색삽화와 흡사합니다.<본지 1453호 2018년 2월 25일 자 참조>

▲ 로마 바실리카 디 산타 마리아 안티콰의 십자고상 프레스코화.






이 프레스코화의 주님은 양팔과 양발에 못이 박힌 채 십자가에 매달려 계십니다. 하지만 주님은 전혀 고통을 느끼지 못하시는 듯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어머니를 바라보시며 살짝 미소를 짓고 있는 듯합니다. 이 시기까지만 해도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고통받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수난보다는 죄와 죽음을 이기신 승리의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싶어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 상에서 숨을 거두시기 전에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루카 23,34)라고 장엄하게 기도하셨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 말씀을 ‘대사제의 기도’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기도하실 때 그분은 모든 것을 보시고, 내다보실 수 있으셨습니다. 당신은 모든 원수를 보셨고, 그들 가운데 많은 이가 당신의 친구가 되리라는 것을 내다보셨습니다. 그분께서 그들 모두를 위해 대신 기도하신 까닭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이 화가 나서 욕을 퍼부었지만, 그분은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그들은 빌라도에게 ‘그자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하고 외쳐 댔지만, 그분은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으셨습니다. 그분은 단단한 쇠못으로 십자가에 박히셨지만 온유함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은 그토록 무자비하게 다루는 자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셨습니다.”(아우구스티노 「설교집」에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씀처럼 고대와 중세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고상을 통해 모든 이의 용서를 비는 대사제의 모습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 상의 주님 머리 뒤로는 황금빛 후광이 빛나고 있습니다. 황금빛은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예수님의 후광 안에만 ‘십자가’를 그려 넣습니다. 그리고 비잔틴 교회에서는 십자가 위와 양 날개 사이로 ‘Ο ΩΝ’ 또는 ‘Ο ωΝ’(오 온)을 새깁니다. 이 글은 야훼 하느님께서 당신 신원을 드러내실 때 하신 말씀으로 “나는 있는 나다.”(탈출 3,14. 라틴말로는 Ego sum qui sum-에고 숨 퀴 숨)를 헬라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는 ‘하느님만이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며 십자가의 죽음으로도 결코 멈출 수 없는 생명의 원천’이심을 뜻합니다. 아울러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존재하시는 하느님이시며 천지 창조 이전부터 하느님이셨고 그분의 십자가를 통해 모든 사람을 하느님께로 들어올리시는 분’이심을 나타냅니다.(묵시 1,8 참조) 한마디로 ‘주님의 신성’을 표현한 것입니다.

주님의 머리 위에는 ‘유다인의 임금 나자렛 예수’(라틴말-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 예수스 나자레누스 렉스 유대오룸, 헬라어- Ιησουs ο Ναζωραιοs ο Βασιλευs των Ιουδαιων/ 예수스 오 나조라이오스 오 바실레우스 톤 유대온)라고 적힌 명패가 달려 있습니다. 네 복음서가 알려주고 있는 이 명패 말고 간혹 헬라어로 ‘Ο ΒΛΣ ΤΣ ΔΞΣ’라고 적힌 성화를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Ο Βασιλευs Τηs Δοξηs’(오 바실레우스 테스 독세스)의 약자로 ‘영광의 임금’을 뜻합니다. 이 영광의 임금은 세상 종말 때 심판자로 오실 분이십니다. 이분은 수난과 죽음을 당하시고 부활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께로부터 영광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경은 아울러 하느님께서도 예수님을 통해 영광을 받으신다고 합니다.(1베드 4,11) 그리고 그리스도인들도 주님의 수난과 부활에 동참함으로써 그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고 합니다.

주님은 십자가 상에서 양팔을 펼치시고 계십니다. 교부 아타나시우스 성인은 “주님께서 한쪽 팔을 펼쳐 유다인을, 다른 팔로는 모든 민족을 모아 그 둘을 당산 자신 안에서 그리고 교회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셨다”(아타나시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에 대해」 중에서)라고 강조했습니다. 따라서 펼쳐진 주님의 양팔은 주님께서 당신 십자가를 통해 만백성을 하나로 모으시고자 하는 ‘의지’를 상징합니다.

주님은 짙은 청색의 긴 옷을 입고 계십니다. 주님의 후광이 ‘신성’을 상징했다면, 입고 있는 파란색 옷은 ‘주님의 인성’을 보여줍니다. 옷은 주님께서 죄에 물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이 되셨음을 고백하는 표지입니다.

이 도상에서 눈여겨볼 것이 또 있습니다. 바로 성모 마리아와 요한 사도가 주님을 중심으로 양편에 자리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전까지 십자고상을 주제로 한 성미술 작품에는 주로 성모님과 요한 사도가 함께 있는 모습으로 표현했습니다. 바실리카 디 산타 마리아 안티콰의 십자고상 프레스코화가 그려진 6~8세기부터 십자고상 성화에서 성모 마리아는 십자가상의 주님 오른편에, 요한 사도는 그 반대쪽인 왼편에 자리합니다. 이러한 대칭 구도는 정형화되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와 요한 사도 역시 수난당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면서도 전혀 슬픈 기색이 없습니다. 성모님은 십자가에 못 박힌 당신의 외아들과 눈을 맞추면서 웃고 계십니다. 주님의 사랑하는 제자인 요한 사도도 복음서를 들고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요한 21,31)라고 당당하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성모님, 요한 사도 사이에 있는 두 사람은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른 로마군 백인대장 론지누스와 예수님께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 가지에 꽃아 들이댔던 군사가 서 있습니다. 성모님 옆에 서 있는 론지누스는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태 27,54)라고 말해 ‘참신앙 고백’의 상징으로 표현됩니다. 또 우슬초 가지를 든 병사는 주님의 ‘순종’, ‘죄의 용서’ ‘우리의 정화’를 상징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시편 51,9은 ‘우슬초로 제 죄를 없애주소서. 제가 깨끗해지리이다’라고 노래합니다. 우리가 깨끗해지는 것은 그리스도의 겸손 덕분입니다. 그분께서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필리 2,8)하지 않으셨더라면, 죄의 용서 곧 우리의 정화를 위해 그분께서 피를 쏟으시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아우구스티노 「요한복음 강해」에서)

바실리카 디 산타 마리아 안티콰의 십자고상 프레스코화는 참 하느님이시며 참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백성(모든 이)을 구원으로 이끄시기 위해 십자가 상에서 죽음을 이기신 사랑의 구세주이심을 고백하는 명작이라 하겠습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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