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이광호 소장의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 (11) 생명을 살리는 정치의 시작 ‘양육비 책임법’
‘양육비 책임법’ 법제화 위해 그리스도인 힘 모아야
2018. 02. 11발행 [14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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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박한 여성을 돕기 위해서라면 낙태죄 폐지보다 책임법과 복지로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법적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 또한, 양육비 책임법 제정을 통한 생명의 정치를 위한 신자들의 참여가 절실히 요구된다. 그래픽=문채현



한국에만 없는 ‘양육비 책임법’

‘양육비 책임법’은 대다수 OECD 선진국에서 강력하게 실행되고 있지만, 한국에는 없다. 부모 중 한 명이 양육 책임을 회피하고 잠적할 경우, 국가가 양육비를 강제로 받아내는 제도인데, 임신 후 도망쳐버리는 남자들이 이 법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미혼부 책임법’이라고도 불린다.

성관계가 대체로 혼인 안에 있었던 시절에는 이 법의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문화가 바뀌면서 성관계는 놀이화되었지만, 성관계가 생명으로 이어진다는 자연법은 절대 바뀌지 않기 때문에 무책임의 문제가 수없이 발생하는 것이다. 2000년 이후 한국에서 미혼부 책임법 논의가 몇 차례 있었지만, 미혼모 단체의 힘이 약했기 때문에 흐지부지 사라졌다.

관심과 주목을 받지 못했던 ‘양육비 책임법’ 입법에 불을 붙인 것은 정치권이었다.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공약에 “양육비 지급 이행 효율화를 위해 ‘이행강제기관’ 설치 및 법률 서비스 제공”이 명시된 것이다.(정책 공약집 「세상을 바꾸는 약속」 78쪽) 박 후보는 양육비강제기관을 신설하여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여성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주겠다는 약속을 했고, 대선 직후 민현주 의원이 ‘양육비 이행 확보 지원기관 설치에 관한 법률안’(2013년)을 대표 발의했다.



대선 공약 ‘양육비 책임법’의 놀라운 내용

놀랍게도 이 법안에는 미국, 캐나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 시행되는 ‘미혼부 책임법’의 강제 조항이 상당 부분 포함돼 있었다. 이행관리원이 양육비 회피자의 소득과 재산을 조사하여 재산과 세금환급예정액을 압류ㆍ추심할 수 있고, 출국 금지를 요청할 수 있는 것이다. 운전면허 정지, 소재지 파악, 지명수배, 벌금, 체포, 구속 등의 조항은 없지만, 입법 청원도 전혀 없었는데 집권당 의원 15명이 대통령 취임식도 하기 전에 법안을 발의했기 때문에 여성 표만 얻겠다는 빈 약속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고맙기까지 했다.

이 법은 임신과 양육에 대한 남성과 국가의 책임이 전무했던 한국의 법제를 보완해줄 뿐 아니라, 책임의 성교육을 실체화해주는 제도적 기반이 된다. 이 법이 있어야만 청소년에게 콘돔만 나눠주면 성 문제의 상당 부분이 해결된다는 망상에 가까운 주장이 힘을 잃게 된다. 양육비 책임법이 없는 한국에서 날이 갈수록 번창하는 장사와 득세하는 목소리는 피임산업과 낙태죄 폐지이기 때문에 이 법안의 발의는 필자에게 “나의 백성에게 물을 마시게 하려고 광야에는 샘을 내고 사막에는 강을 낸다”(이사 43,20)는 말씀처럼 다가왔다.



심사 결과는 ‘대안 반영의 폐기’

그러나 이 법안은 폐기 판정(2014년)을 받았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은 만들어졌는데, 강제 조항은 모두 삭제된 것이다. ‘출국 금지 요청 권한’의 삭제 이유는 “단순 채무불이행자에 불과한 양육비 미지급자를 「출입국관리법」 제4조 제1항 제5호의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 또는 경제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는 사람’으로 해석하기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양육비 회피자는 단순 채무불이행자가 아니라, 한 가정을 파괴한 심각한 범죄자다.

압류ㆍ추심 권한의 삭제 이유는 “법무부는 사법부가 아닌 행정부 소속의 위원회가 압류 명령 또는 추심 명령의 효력을 가지는 의결을 하는 것은 현행 삼권분립의 취지 및 민사집행체계에 반함. 법원이 기각 결정을 하였음에도 이행관리원장이 위원회의 의결로 직접 압류를 행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이는 사법권에 대한 침해 여지가 있음”이다. 미국 연방보건복지부 산하의 ‘자녀양육비이행국’은 부모의 소득과 재산을 조사·압류할 수 있는데, 사법권 침해 없이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지 궁금하기만 한다.

이렇기 때문에 ‘양육비이행관리원’은 부모가 양육비 지급을 고의로 거부해도 강제로 받아낼 수단이 전혀 없다. 또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주소나 근무지, 소득과 재산을 조사할 수도 없다. 이 기관이 할 수 있는 일은 지급 권고뿐이다. 장기에서 차포(車包)에 마상(馬象)까지도 떼고, 졸(卒)로만 겨뤄서는 절대 승리할 수 없다. 2015년에는 6496건 중 844건(13%)만 이행되었는데(동아일보 2016년 3월 21자 기사 참조), 강제권이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지급률은 더 떨어질 것이다. 대선 정책 공약집 「세상을 바꾸는 약속」이 결국 ‘약속을 바꾸는 세상’을 만들었지만, 선한 사회는 결코 저절로 만들어질 수 없다는 진리를 체험했다.



여성들이 우선 보장받아야 할 권리는 ‘양육권’

책임의 성교육에 깊게 공감하는 지인이 다음 메시지를 보냈다.

“선생님 사실 저는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미혼모입니다. 대학원 시절 알았던 남자는 헤어진 후 임신 사실을 알았고 책임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십 년 후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은 이제 중2가 되었습니다. 요즘 저는 두 아이에게 너무 큰 굴레가 된 이 땅을 떠나고 싶습니다. 그런데 돈도 없고 경력도 없어 힘드네요. 혹시 현행법상 25년이 지난 지금 생부로부터 보육료를 받을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있을까요? 당연한 질문을 왜 이리 장황하게 하는지 모르겠네요. 지난 세월 단 한 푼도 도움받은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희망 없는 미혼모들을 돕고 힘이 돼주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저는 너무 갇혀 있어 길을 알아내기가 힘드네요. 혹시 루트를 아신다면 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수고에 늘 감사드립니다.”



“양육비이행관리원에 연락해보세요”라고 즉답을 했지만 한숨만 나왔다. 답이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헤어진 후 임신 사실을 알거나, 임신 후 남자가 책임을 회피하는 문제를 모두 낙태로 해결해야 할까?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현 법제에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완전히 빠져 있다”고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지적하면서도 낙태죄 폐지를 용인하는 언급을 했다.



“첫째, 교제한 남성과 최종적으로 헤어진 후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어떻게 하나. 둘째, 별거 또는 이혼 소송 상태에서 법적인 남편의 아이를 임신했음을 발견했을 때 어떻게 하나. 셋째, 실직이나 투병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으로 아이 양육이 완전히 불가능한 상태에서 임신을 발견했을 때 어떻게 하나. 이 세 가지 경우 현재 임신중절하게 되면 그건 범죄다.”



세 경우 모두 책임 소재가 명백하기 때문에 남성에게 책임을 묻고, 국가가 복지제도로 여성을 돕는다면 여성이 굳이 낙태를 택할 필요가 없다. 거의 모든 OECD 국가에 이런 제도가 완비돼 있다. 선진국 중 이 제도 없이 낙태만 합법화된 나라는 없고, 낙태죄 폐지보다 책임법과 복지가 훨씬 더 먼저 마련돼 있었다. 그런데 어느 언론도 이 사실을 보도하지 않는다. 뉴욕타임즈는 올해 초 보도에서 “한국은 낙태금지법이 있는 몇 안 되는 부자 국가 중 하나”라고만 강조할 뿐이었다. 다른 부자 국가에 있는 책임법과 복지가 한국에만 없다는 사실은 감췄다. 절박한 여성을 돕기 위해서라면, 낙태죄 폐지가 먼저일까? 책임법과 복지가 먼저일까? 낙태 비범죄화를 대선 공약으로 제시하고, 그 법적 처리를 시도하는 천주교 신자 여성 국회의원 두 분이 상식을 회복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생명을 위한 정치 참여는 신자의 의무

“그리스도인에게 정치 참여는 의무입니다. 우리는 빌라도와 같은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손을 씻으며 뒤로 물러나는 짓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정치에 참여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정치란 공동선을 찾는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정치 행동을 해야만 합니다. 오늘의 정치는 많이 타락했습니다. 왜 그리스도인이 복음 정신으로 정치가 타락하지 않도록 하지 않습니까? 모든 탓을 정치인에게 돌리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나는 무엇을 했습니까?”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하신 말씀이다. 생명의 정치를 위한 신자의 정치 참여가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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