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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받는 교회 돕기] 우간다 (6) 우간다 목자들의 외침

[고통받는 교회 돕기] 우간다 (6) 우간다 목자들의 외침

“지원 없으면 식량 배급·사제 양성·성당 건축 아무것도 안 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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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4 발행 [1451호]



뜻밖의 행운이다. 우간다 방문 취재 중 수도 캄팔라에서 주교회의 정기총회가 열려 우간다 교회 주교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가난한 교회의 목자들은 유머와 해학(諧謔)이 넘쳤다. 일상화된 빈곤을 얘기하는가 싶었는데, 정작 그것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풍요’였다. 가난을 불편하게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에 대해 자랑하고 기뻐했다. 가난한 사도들의 후계자들에게서 사도 바오로의 모습이 언뜻 비친다. 바오로는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몸속의 가시’가 하느님께서 자만하지 말라고 주신 것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2코린 12,9 참조)라고 고백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직자들을 만날 때 빼놓지 않는 얘기가 “예수님 일을 망치려 드는 악마가 있는데, 그 악마는 항상 주머니를 통해 들어온다”는 것이다. 돈 혹은 물질적 풍요를 경계하라는 당부다. 역설적이게도 악마는 우간다 교회의 주머니에 흥미를 느끼지 않을 것 같다. 가난이 축복이라는 뜻이 아니다. 악마도 시큰둥할 정도로 가난하다는 말이다. 가난이라는 십자가를 지고 걸으며 양 떼를 돌보는 목자들에게 한국 교회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부탁했다. ‘생생(生生) 마이크’처럼 가감 없이 옮긴다.

우간다=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사비노 오칸 오도키 주교(아루아교구)


본당을 방문하면 내 차는 ‘달리는 농장’이 된다. 신자들은 가난해서 땅에서 거둬들이는 것, 예를 들어 양ㆍ염소ㆍ닭ㆍ과일ㆍ채소를 예물로 봉헌한다. 나름 정성껏 준비해 봉헌한 예물이라 그냥 주고 올 수도 없다. 만일 그러면 무척 섭섭하게 생각할 것이다. 이 때문에 돌아올 때면 뒷좌석과 트렁크에서 염소와 닭이 울고불고 난리가 난다. 우리 교구를 방문하면 내 차에 태워 ‘달리는 농장’을 구경시켜주겠다.

교구청에서 그 녀석들을 다 키울 수도 없다. 그래서 오는 길에 수도원에 들러 나눠준다. 한 수도원에 몰아주는 게 아니라 두세 군데에 나눠준다. 수도원들은 몇 배 더 가난하다. 염소 한 마리만 줘도 좋다고 손뼉을 친다.

북부에 있는 우리 교구의 가장 큰 도전은 남수단에서 내려온 난민들을 위한 사목이다. 북부에 100만 명이 내려와 있다. 교구 내에 크고 작은 난민촌이 20개나 된다. 주 우간다 교황 대사와 한 달에 한 번꼴로 찾아가보지만,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목은 둘째치고, 가는 길에 생수와 비누라도 한가득 사서 주고 오고 싶다.

난민촌 주변 본당의 신부 15명을 보내고 있지만, 낮에 잠깐 방문하고 나오는 정도다. 신부들은 거기까지 갈 교통편도 없고, 잠잘 곳도 없다. 궁금해서 전화해보면 신부들은 중고 오토바이라도 한 대 사 달라고 볼멘소리를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교구 형편을 뻔히 아니까 차량을 지원해달라는 신부는 없다. 한국 교회와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에 중고 오토바이 지원을 요청하고 싶다.



존 바티스티 오다마 대주교(굴루대교구장)

‘신의 저항군’(LRA)에 끌려가 돌아오지 못한 교구 소신학생 11명을 포기하지 않았다.(LRA는 우간다와 콩고민주공화국 동북부의 반군 조직으로, 소신학생 41명을 끌고 가 30명만 풀어줬다. 지도자 조셉 코니는 소년병 징집과 여성 인신매매로 악명 높은 전쟁 범죄자다. 주교는 소신학생들 얘기를 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조셉 코니를 잘 안다. 내가 목숨을 걸고 4번이나 깊은 밀림으로 그를 찾아가서 눈물로 애원했다. “신부 되려는 아이들을 잡아다 소년병 만드는 게 말이 되느냐”며 사정했다. 덕분에 30명은 풀려났지만, 나머지는 딱딱한 응어리처럼 가슴에 얹혀 있다.

코니의 아버지는 우리 교구에서 교리교사를 했다. 코니는 제 아버지의 장례 미사를 내가 집전한 것과 내가 지금도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어디선가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를 다시 만나고 싶다. 멱살이라도 잡고 내 자식들 내놓으라고 소리치고, 인제 그만 투항하라고 설득하고 싶다. 하지만 내가 정부와 한통속이라고 생각하는지 아무런 기별이 없다. 최근 우간다 북부와 주변국의 정정 불안은 LRA 탓이다. 코니가 밀림에서 백기를 들고 나와야 평화가 가능하다.

소신학생 석방과 코니의 회개, 그리고 우간다의 평화를 위해 기도해 달라.(반군 조직에서 풀려난 한 소신학생도 2015년 우간다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 앞에서 동료들의 무사 귀환과 코니의 회개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미아노 줄리오 구제티 주교(모르토교구장)

1986년 우간다에 도착한 이탈리아 캄보니선교회 소속 선교사다. 모르토는 동북부에 위치한 변방 중의 변방으로, 신부가 11명밖에 없다.

소를 키우던 이 적막한 사바나 초원은 1979년 독재자 이디 아민 대통령 축출 이후 총기가 마구 유입되면서 무법천지가 됐다. 사제가 너무 부족해 우간다 주교 형제들에게 사제 파견을 요청하면 “신부들이 ‘그런 데서 사람이 어떻게 사느냐’며 가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할 정도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총기를 일제히 거둬들여 혼란이 진정됐다.

그런데 값비싼 광물이 발견되고, 외국 자본이 들어오면서 다시 시끄러워졌다. 대형 트럭 80여 대가 줄지어 항구 도시로 돌을 실어 나른다. 여성과 아이들 할 것 없이 주민 상당수가 광산에서 헐값 노동에 시달린다. 더욱이 광산회사가 몇 달 전까지 ‘워라기’라는 독한 술로 임금을 지급해 알코올 중독자가 넘쳐 난다. 허기를 잊게 할 정도로 강한 술인데, 임신 여성도 마구 마셔서 장차 ‘워라기 피해’ 세대가 나타날 것이다. 미국 개척 시대에도 유럽인들이 술로 임금을 지급해 그런 세대가 있었다.

주민들은 너무나 가난하다. 배가 고프다. 먹을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많다. 지난 4년간 강우량이 불규칙해 피해가 컸는데, 올해가 비가 너무 많이 내려 농작물이 썩어가고 있다. 이 때문에 주민들이 지금 울고 있다. 나도 함께 운다.

교구는 ACN 지원금이 도착하면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순으로 도움을 준다. 그동안 ACN 지원이 없었다면 식량 배급, 사제 양성, 성당 건축 등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요즘 100년이 넘어 붕괴 직전인 대성당을 헐고 다시 짓는다. 교구민 자력으로 짓는 최초의 성당이다. 물론 공사 속도는 ‘거북이걸음’보다 느리지만. 그래도 설레는 마음으로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가고 있다. 식량을 지원해 주고 성당 건축을 도와주길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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