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출판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맛’으로 함축하면 ‘뻥튀기 맛’
유안진 시인, 신앙고백 산문집 「처음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2018. 01. 14발행 [14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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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처음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유안진 지음 / 가톨릭출판사 / 1만 2000원




“이때껏 나로 시를 쓰게 해주신 하느님을 묵상한다. 성체를 바라보면서 하느님, 하느님! 당신은 나에게 누구이십니까? 무엇입니까? 어떤 존재이십니까?”(본문 183쪽)

시인은 고백한다. 시로, 글로 50년 넘는 세월을 사람들과 친교를 맺도록 해주신 분은 하느님이라고.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 유안진(클라라, 77) 시인이 최근 산문집 「처음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를 냈다. 1965년 등단 이후 평생 수많은 작품으로 자연과 사람과 사물을 예찬해온 유 시인이 등단 이후 처음 공개하는 신앙고백이 수록된 수필집이기도 하다.

“모든 색이 다 모이면 검정색이 되듯, 우리의 모든 잘못들이 모이면 흰 치마도 검정색이 되지. … 신부님과 수녀님의 수도복이 검정색인 까닭도 고해하는 교우들의 모든 때 얼룩을 다 받아준다는 상징이 아닐까?”(59쪽)

유 시인이 그만의 시각으로 선사하는 반세기만의 신앙고백은 독자들에게는 신선한 만남과 같다. 자신은 결코 훌륭한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고 겸손함을 드러내지만, 그가 경험해온 크고 작은 일상과 소소한 깨달음은 하느님 진리를 깨닫는 과정이 된 것이다. 성체를 바라보며 하느님 존재성을 끊임없이 질문하던 시인은 끝내 작은 깨우침을 얻는다. “그래, 지금 여기서도 나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으로 탄생해주신 분이다.”

글과 함께 실린 짧은 시들은 묵상 거리를 던져준다. “시인이야말로 최고의 악기인데 / 주님은 내가 행복해지기보다는 / 숭고(崇高)해지기를 / 악기다운 악기 되기를 더 바라시는지.”(161쪽)

유안진 시인은 오랫동안 여성 특유의 감수성으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유 시인은 일찍이 “저는 만들어진 시인이 아니라, 시가 좋아 시를 썼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시인이 됐다”고 한 바 있다. 책은 그가 시를 쓰게 된 또 다른 이유도 공개하고 있다.

그의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늘 “고마 져주그라, 져야 이긴데이”라며 ‘지는 게 이기는 법칙’을 가르쳤다. 그리고 이 법칙은 딸을 모든 것을 품어안을 줄 아는 모성, 보편성을 지닌 ‘용서’와 ‘지는’ 마음을 가진 시인으로 만들었다. “시인은 평생 지며 살아와야만, 시로써 이길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 때는, 나의 시력이 30년도 넘었을 때였다. … 시는 잘난 이들이 쓰는 게 아닌, 스스로 못났음을 인정하는 이들이 선택한 자화상이자 자기 고발의 글이 아닌가.”(57~58쪽)

유 시인은 좀체 누구를 추천한 적 없던 박목월 시인의 추천을 받고 등단했다.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비롯한 수많은 작품이 교과서에 실리면서 지금까지 많은 이의 사랑을 받고 있다.

유 시인은 책에서 베드로가 주님을 몰랐다고 한 것은 배신이 아니라 굳은 믿음에서 비롯된 태도였다고 새롭게 바라보며 자신의 신앙을 성찰하기에 이른다. 그간 ‘온갖 기적을 이루신 하느님의 아드님이 어찌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하는 철저한 믿음에서 비롯된 행동이란 것이다. 예수님을 따라다닌 3년을 통째로 부정하고 싶었을 만큼 베드로 또한 아팠던 것이라고 말이다.

유 시인은 문득 주님과 함께하는 삶이란 아무 맛이 없는 뻥튀기와 같다는 데 도달한다. 모든 일상의 무사함과 평범함의 가치를 지닌 ‘맛없음의 참맛’을 선사하는 뻥튀기 맛 같은 삶이 곧 믿음의 삶이라고.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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