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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형수… “날 어여삐 여기소서”
20년 전 마지막 사형 집행 종교 예식에 참여했던 김정수 신부(살레시오회)
2018. 01. 07발행 [14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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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수 신부가 사형수가 밥알을 뭉쳐서 만든 십자고상을 들고 이야기하고 있다.



1997년 12월 30일은 우리나라에서 마지막 사형 집행이 이뤄진 날이다. 이후 대한민국은 사형 집행 정지 20년을 맞았다. 20년 전 서울구치소에서 마지막 사형 집행 종교 예식에 참여했던 김정수(살레시오회) 신부를 만났다.



1997년 12월 29일 밤 10시. 서울 신월동 살레시오회 만남의 집에 머물고 있던 김정수 신부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서울구치소 교무과 직원이었다. “내일 아침에 집행됩니다. 정 미카엘(27)입니다. 아침 7시까지 오세요.” 서울대교구 교정사목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지 1년여 만에 처음 받은 사형장 입회 전화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더욱이 구치소에서 세례를 받고 누구보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미카엘이 형장에 서다니…. 가슴이 시리고 착잡해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동료 신부와 포도주 한 병을 나눠 마시며 사형수 이야기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인 12월 30일, 미사를 봉헌하고 서울구치소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사형장은 수형자들이 머무는 건물 바로 옆이었다. 당시 정씨는 성탄 전 두 달 동안 구치소에서 제일 바쁜 수형자였다. 밤을 지새며 교도관 등 100명이 넘는 지인에게 성탄 카드를 보냈다. 정씨는 구치소에서 모범적이고 특별한 신자였다. 사형수지만 세례를 받은 뒤 새 사람으로 사랑을 노래한 주님의 사람이었다고 김 신부는 회고했다.

그날 서울구치소에서는 5명의 사형수에 대해 사형이 집행됐다. 전국적으로는 23명이었다. 김 신부가 오전 9시 30분쯤 사형장에 들어서니 목사도 있었다. ‘교육 실시’라는 지시가 떨어지자 교도관 손에 이끌려 사형수가 한 명씩 형장에 들어왔다. 사형수의 이름과 범죄 내용, 사형 선고 사실 등을 묻는 인정 신문이 진행됐고 이어 최후 진술(유언)의 기회가 주어졌다. 모두가 평온한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며 성가와 찬송가를 열성을 다해 불렀다.

3명의 사형이 집행된 뒤 정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김 신부는 자리를 박차고 뛰어 나가 정씨를 뜨겁게 안았다. 정씨는 “신부님 울지 마세요”라며 오히려 김 신부를 달랬다. 교도관의 제재로 김 신부는 자리로 돌아왔고 이어 신분 확인과 마지막 유언의 기회가 주어졌다. 정씨는 앞서 집행된 다른 사형수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안구와 장기 그리고 시신까지 모두 기증하겠다고 말했다.

사형이 집행되기 전 마지막 순서는 종교 의식이다. 인정 신문과 유언이 끝나자 정씨는 “성가를 독창하겠습니다”라며 가톨릭 성가 28번을 불렀다. 김 신부도 따라 불렀다. “불의가 세상을 덮쳐도 불신이 만연해도 우리는 주님만을 믿고서 살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들 가는가, 어둠에 싸인 세상을 천주여 비추소서.”

참회 전례가 이어졌다. 김 신부는 요한복음 19장 17절부터 30절까지를 읽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숨을 거두신 내용이었다. 김 신부는 정씨에게 “바로 오늘 여기가 골고타 언덕의 예수님과 함께 형제가 죽음을 맞으며 순교자처럼 서 있노라”고 일러주었다. 기도와 말씀을 나누고 성체를 같이 모셨다.

“신부님 차 조심, 건강 조심하세요.” 포옹하며 건넨 정씨의 마지막 인사였다. 묵주를 꼭 쥐고 성경을 안고 있는 정씨 모습이 커튼 뒤로 사라졌다. 정씨는 가톨릭 성가 44번을 큰 소리로 부르기 시작했다. “날 어여삐 여기소서, 참 생명을 주시는 주, 나 주님을 믿사오며 주님께 나아가리. 평~화, 평….”

쿵~ 소리와 함께 성가가 멈췄다. 정씨가 애지중지하던 성경과 성가책은 김 신부에게 맡겨졌다. 다음 날 아침 김 신부는 다시 서울구치소에 갔다. 안구가 적출된 정씨의 시신을 확인하고 가족들과 함께 장례 미사를 거행했다. 김 신부는 자신의 일기에 ‘그날’을 이렇게 적었다.

“1997년 12월 30일은 정 미카엘과 다른 형제들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는 슬픔과 고통의 날이었지만 그들이 신앙 안에서 맞는 죽음은 ‘아름다운 증거’로 우리에게 새로운 해를 맞는 각오를 준비시켜 주었다. 주님께서 주신 신앙과 사랑이 언제나 어디서나 감사와 기쁨을 가질 수 있음을 말해주었다.”



서종빈 기자 binseo@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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