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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받는 교회 돕기] 우간다 (1) 변방으로 가라-남수단 난민촌

[고통받는 교회 돕기] 우간다 (1) 변방으로 가라-남수단 난민촌

“난민은 밀어닥치는데 돕고 싶어도 줄 것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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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1 발행 [1446호]
▲ 내전의 불길을 피해 우간다 북부 팔라벡 난민촌에 들어온 남수단 난민들. 학살의 광기를 피해 겨우 몸만 빠져나온 이들은 유엔이 나눠준 최소한의 생필품 외에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들은 너나없이 “여기는 살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아이들의 맨발과 해진 반바지가 궁핍한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스스로 선택한 복음적 가난과 달리 원치 않는 가난은 재앙이다. 가난은 단지 배고픔으로 그치지 않는다. 사회를 폭력과 범죄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현실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1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보내면서 “가난한 이들을 외면하는 것은 하느님께 등을 돌리는 것”이라며 “문 앞에 누워 있는 라자로들에게 ‘교회의 돋보기’를 갖다 대라”고 촉구했다. 또 “가난한 이들의 외침을 흘려듣지 말라”고 간곡히 당부했다.

가톨릭평화신문과 고통받는 교회돕기(ACN)는 공동 기획 ‘고통받는 교회를 도웁시다’의 마지막 주제로 가난을 선택해 우간다 교회의 외침을 전한다. 한국 교회에 연대를 청하는 메마른 손길이 그들의 외침 속에 있다. 우간다는 아프리카에서 최빈국에 속하는 나라다.



팔라벡(우간다)=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 굴루교구의 매튜 오동 몬시뇰(오른쪽)이 난민촌에서 ACN 국제본부 관계자와 지원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오동 몬시뇰은 “고통받는 이들 안에서 주님의 얼굴을 찾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이라고 말한 뒤 한숨을 내쉬었다.


▲ 라자르 아라수 신부가 야외 주일 미사 중에 유아에게 세례를 주고 있다. 이날 유아세례를 받은 105명 가운데 서너 살 된 아이도 많다. 엄마들은 전쟁 통에 성당이 폐쇄되고, 오랜 시간 떠돌이 생활을 한 터라 아이의 유아세례 시기를 놓쳤다.



▲ 가난한 과부의 주일 미사 헌금 바구니. 접힌 달러 지폐는 난민들이 봉헌한 게 아니다.



수도 캄팔라에서 최북단에 있는 팔라벡(palabek) 난민촌까지는 거리가 만만치 않다. 더구나 우기라서 두어 시간 폭우라도 퍼부으면 시뻘건 흙길은 진흙탕 수렁으로 변한다. 취재 일정에 없던 난민촌 행을 감행한 것은 순전히 프란치스코 교황 탓(?)이다. 교황은 기회 있을 때마다 “변방은 세상의 구석이지만, 교회에는 중심이 돼야 한다”며 변방으로 가라고 재촉한다.



3만 7000명 난민촌의 유일한 사목자

굴루까지 올라가 라자르 아라수(49, 살레시오회) 신부와 합류해 난민촌으로 달렸다. 인도 출신인 라자르 신부는 남수단에서 넘어온 난민 3만 7000명이 있는 팔라벡 난민촌의 유일한 사목자다. 그의 낡은 차에는 도시 본당에서 모아준 옷 보따리가 잔뜩 실려 있다. 그는 “난민들은 정부군과 반군의 무차별 학살에 비명을 지르며 도망쳐 나온 사람들”이라며 “옷은 말할 것도 없고 부족하지 않은 게 없다”고 말했다.

수단은 고 이태석 신부의 선교지로 국내에 익숙하다. 북부 이슬람 아랍계와 남부 그리스도교ㆍ토착 종교 흑인계로 구분되던 수단은 2011년 갈라섰다. 하지만 남수단은 신생 독립국의 포부를 펼쳐보이기도 전에 내전에 휩싸였다. 이 때문에 우간다 북부 곳곳에 거대한 난민촌이 들어서 있다. 우간다 북부로 100만 명, 옆 나라 콩고민주공화국과 케냐로 30만 명의 난민이 쏟아져 들어왔다.

아프리카에서 오랫동안 청소년 교육에 종사한 라자르 신부는 교황이 ‘귀에 못이 박이도록’ 얘기하는 변방을 찾아 6개월 전 난민촌에 들어왔다. “난민촌에 사목 공백이 크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 와본 날, 신부 방문에 환호하는 난민들에게 발목이 잡혔다”며 “이들은 떠돌이 생활을 하는 동안 미사 참례는커녕 신부 얼굴 한 번 못 봤다”고 말했다. 남수단은 인구의 40%가 가톨릭이다.



다 잃어도 주님 사랑은 잃지 않았다

“난민들 속에 있으면 행복하다. ‘다 잃었지만 주님의 사랑은 잃지 않았다’는 신앙 고백을 수없이 듣는다. 다 버리고 애들만 둘러업고 나온 사람들이다. 반군이 들이닥쳤을 때 자기 자식을 찾지 못해 울고 있던 옆집 애를 데리고 도망 나와 키우는 부인도 있다. 한 인간으로서, 사제로서 이들에게 많은 것을 배운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국경에 버스를 대기해놓고 난민들을 실어나른다. 지난달 초에도 수백 명을 실어왔다. 유엔은 난민들이 도착하면 지붕을 덮는 방수포와 담요, 밀가루, 프라이팬, 물통, 태양광 전등 같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도구를 지급한다. 하지만 식량 배급이 중단될지 모른다는 흉흉한 소문이 난민촌에 돌고 있다. 유엔은 기금 모금액이 크게 미달해 국제사회에 긴급히 호소하고 있지만, 아직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다. 라자르 신부도 “유엔이 북부에 있는 난민 100만 명에게 언제까지 식량을 배급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난민 마르셀라 아찬(65)씨는 “정부군은 반군 가담자를, 반군은 정부군 가담자를 색출한다면서 주민들에게 총질을 했다”며 “손자들과 숲 속에 숨어 벌벌 떨다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젊은 여성 로즈마리 존(27)씨는 “땔감과 갈대 지붕부터 비누와 생리용품까지 모든 게 다 부족하다”며 “젊은 애들은 온종일 할 일이 없으니까 성관계나 하면서 무턱대고 임신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우간다 교회는 난민 문제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그들에게 달려가 먹을 것을 주고, 옷을 벗어줘야 하지만 가난하기는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난민촌은 서북쪽 아루아 교구 일대에 가장 많다. 그중에서 가장 큰 난민촌이 35만 명이 내려와 있는 비디비디(Bidi Bidi) 지역이다.



부족한 것은 많은데, 교구가 너무 가난해서…

캄팔라에서 만난 아루아 교구장 사비노 오도키 주교는 “교구 관할 구역에 난민촌만 20개”라며 “신부 15명을 난민촌에 보냈지만, 교구가 가난해 지원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물과 식량, 생필품이 너무나 부족하다. 신부들은 나무 그늘에서 미사만 집전하고 나오는 상황이다. 교통수단이 없어 이것저것 얻어타고 난민촌에 들어가는 신부들은 중고 오토바이라도 한 대 사달라고 매일 요청한다. 국제 수도ㆍ선교회 신부들은 본부에서 그나마 지원을 받지만, 우간다 신부들은 기댈 곳이 없다.”

오도키 주교는 “배가 너무 고프면 복음이 잘 들리지 않는다. 교구에 돈이 있다면 신부들 편에 식량과 물을 사서 보내고, 신부들에게 미사 예물을 주고 싶다”며 한국 교회와 고통받는 교회돕기(ACN)에 지원을 호소했다.

라자르 신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의 눈에는 식량 다음으로 급한 것이 유치원과 학교인 것 같아 ACN에 지원 요청서를 보냈다. 난민촌의 86%가 아이들과 젊은 여성이다. 학교라고 해봐야 임대한 땅에 나무 기둥을 박아 그 위에 방수포 씌우고, 칠판과 의자만 갖다 놓으면 된다. 교사 월급과 운영비도 생각해야 한다.



난민촌은 사목적 ‘비상사태’

“교회는 국제 구호기구들이 하는 일을 따라 할 필요가 없다. 당장 급한 물고기는 유엔이 주기 때문에 난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다. 젊은 여성들은 가족의 죽음과 폭력, 강간 피해로 내면의 상처가 너무나 깊다. 죄인들의 회개와 평화를 위해 기도하자고 하면 다 운다. 그래서 요즘은 그런 기도하자는 말을 안 한다. 난민촌은 ‘사목적 비상사태’ 상황이다.”

그는 “젊은이들은 ‘거대한 감옥’ 같은 이곳에서 할 일이 없는 것을 배고픔보다 더 견디기 힘들어한다”며 “그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교육 사업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아프리카는 왜 가난과 전쟁에서 벗어나지 못하나




지도를 펴놓고 자로 재서 그어놓은 아프리카의 국경선을 보면 서글프다. 국경은 오랜 세월에 걸쳐 지리적ㆍ종족적ㆍ문화적 특성에 따라 형성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19세기 아프리카 쟁탈전에 뛰어든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열강은 그런 특성을 무시한 채 멋대로 국경선을 긋고 식민 통치에 들어갔다. 유럽 정상들이 모여 ‘파이를 나누듯’ 국경선을 정한 베를린 회의(1884년)가 야만적 역사의 한 단면이다.

아프리카는 1960년대에 대부분 독립했지만, 유럽의 분할통치 정책과 착취 후유증으로 부족 간 내전에 휩싸였다. 통치 편의를 위해 특정 소수 부족에게 특혜를 주면서 부족 간 화합을 막은 것이다.

켜켜이 쌓인 식민통치의 모순이 폭발한 대표적 사건이 80만 명이 희생된 르완다 내전(1994년)이다. 1960년대 독립과 희망의 시대는 정치 지도자들의 어설픈 사회주의 경제 정책으로 실패했다. 국민의 불만이 높아질수록 독재자들의 탄압은 심해졌다. 정치 지도자와 엘리트들은 유럽 책임론을 주장하면서 부패와 독재를 일삼았다.

아프리카의 비극은 100년 식민통치, 그에 앞서 15세기 유럽인들이 서해 상으로 진출하면서부터 시작된 착취 500년의 산물이다. 그렇다고 유럽 식민 종주국 탓만 할 수 없다. 요즘은 정치 지도자들의 무능과 부패, 탐욕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더 높다.


김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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