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사목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ㆍ가톨릭평화신문 공동 기획 (9) 우리 노동관계법ㆍ제도가 나아가야 할 길
노동법, 노동 발전의 도구인가 통제의 수단인가
2017. 12. 10발행 [14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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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우리 산업사회에서 주목되고 있는 노동법 관련 쟁점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동시간 단축 및 실휴식 시간 확보 등이다. 중대 산재사고에 대한 사용자 책임 강화도 법 개정 사항으로 최근 제시됐다. 반면 지난 정부ㆍ여당이 강력하게 추진하던 이른바 ‘노동관계 개혁입법’은 사실상 폐기된 것으로 보인다. 법ㆍ제도는 그대로인데, 이를 형성하고 집행하는 주체의 생각이 정반대로 바뀐 것이다.



노동법, 인간 공동체 발전 도모해야

노동법이란 노동 즉,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됨으로 인해 가장 존엄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인간이 행하는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동참하는 제반 활동”이 “가장 이상적인 상태(Sollen)로 실현되도록 하기 위하여 현실의 노동관계(Sein)를 규율하는 규범 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한편 노동정책은 노동법ㆍ제도의 형성과 그 집행을 향도(嚮導)하는 지표로 정의할 수 있다. 노동정책이란 “노동에 관한 법과 제도라는 규율 체계의 형성 및 운영을 뒷받침하는 통치자의 가치관 내지 이를 집약한 노동 관련 입법ㆍ행정의 정체성 내지 이념 지표”라고 정리된다(「법정책학-법제도 설계의 이론 및 기법」, 2006).

그렇다면 대단히 역동적인 변화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우리 노동관계법ㆍ제도의 강행성과 현실 정합성이라는 기본 요소의 충족 여부는 노동정책의 타당성과 합목적성에서 도출된다고 하겠다. 그러나 노동정책의 타당성ㆍ합목적성의 충족 여부를 판단하는 지표는 노동법의 본질적 이념과 무관할 수 없다. 그러므로 노동법의 이념은 “최저 수준의 노동조건을 보장함으로써 노동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동시에 노사 간 집단적 자치(collective laissez-faire)의 원리에 기초한 산업 민주주의의 실현을 통해 산업의 평화를 달성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인간 공동체의 발전을 도모”하는 노동관계법제 및 노동정책의 가장 본질적 평가 지표이다.



정치·경제 운용 수단으로 전락


우리 노동법은 60여 년의 시간적 흐름 속에서 많은 변화를 거쳐 왔다. 하지만 각 시대 상황이 처했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노동법제가 정치ㆍ경제의 운용 수단 또는 그 종속변수로 밖에는 인식되지 못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기능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노동법은 일제강점기에는 민족독립운동을 탄압하는 치안 유지 수단으로, 미 군정기에는 점령군의 통치를 위한 보조 수단으로 기능해왔다.

해방 조국에서는 비참한 현실을 가려 주는 선언적이고, 장식적인 법ㆍ제도로밖에는 존재할 수 없었으며, 경제ㆍ안보 제일주의가 관철되던 군부독재 시절에는 노동자들의 철저한 희생과 협력을 강요하는 도구가 되었다. 성장의 그늘에 가려진 분배에 대한 요구가 폭발적으로 분출하던 시기에는 총체적 불만을 달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하였고(‘통제’를 대신하는 ‘과보호 남발이 이뤄짐), IMF 외환 위기와 미국발 금융 위기 등 경기 위축기와 그 회복기에는 노동기본권이라는 당연한 천부인권의 행사조차 얼마든지 제한되거나 폐기될 수 있는 것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이처럼 지극히 가변적이고 역동적인 특성은 노동관계법이 사회 속에서 현실정합성 및 강행력이 상당히 높았다고 볼 수도 있는 아이러니를 제공하기도 한다.

문제는 법 규범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속성상 규율 내지 통제적 측면을 본질적으로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법적 규제를 완화하고 탈피하는 것은 규제를 받는 입장에서는 자유ㆍ자율을 제고하는 의미를 지니기도 하지만, 법이라는 규범 체계가 지향하는 정의와 형평의 가치를 축소하고 기피하려는 의지를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다. 이는 물론 법이 곧 정의를 지향하는 가치 체계 그 자체라는 전제하에서만 타당한 명제다. 하지만 법이 지향하는 규율ㆍ통제의 대상에 해당되는 자는 법적 규제를 기피하려는 욕구ㆍ의지를 품게 된다.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규제 완화’

우리 노동관계법은 두 차례의 심각한 경제 위기 상황을 겪으면서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규제 완화’라는 긴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진행된 산업구조 조정의 흐름이 가속화되는 동시에 무한경쟁을 요구하는 세계시장에서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모든 수단이 동원되었다. 기업의 자율성을 제고하면서 노동력 활용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의 법ㆍ제도 변화가 상시적이고도 지속적으로 추진되었다. 더구나 이 과정에서 정부든 국가권력을 장악한 집단이든 그 누구도 지칠 대로 지친 노동 대중에게 기업의 경쟁력이 얼마만큼 언제까지 더 제고돼야 하는지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소련의 붕괴와 냉전 시대 종식으로 인해 세계화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외환 위기와 IMF 구제금융을 지원받게 된 우리 사회에 급속하게 확대됐다. 노동정책 및 노동법제는 물론 노동 관련 판례 법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노동시장의 유연화 경향이 노동관계법제의 ‘규제 완화ㆍ탈규제화’, 더 나아가 노동보호법제의 ‘공동화(空洞化)ㆍ사각지대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공산주의 경제 실험이 실패였음이 확인된 후 인간 사회에 가장 적합한 경제체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장기 경기침체와 더불어 자꾸만 우향우(右向右)하고 있는 지구상 자본주의가 더 이상 인간의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면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존엄성이 얼마나 지켜질지 장담할 수 없다. 정부의 과도한 시장 규제와 왜곡, 재무 행정의 실패ㆍ비효율성도 비판받아야 하겠지만, 신자유주의 역시 빈부격차 확대와 국경을 넘나드는 거대자본의 시장독점 등 본질적 폐해를 내포하고 있다.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해야

노동법ㆍ제도와 노동정책의 주된 변수는 정치와 경제의 융합 즉, ‘권력과 야합한 돈(Mammon)’이 아니라 ‘노동하는 인간(Laborem Exercens)’이다. 노동법ㆍ제도와 노동정책은 노동자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데 기여해야 하며, 이것이 바로 ‘노동의 인간화’이다. 노동의 인간화는 반듯한 고용(decent work)과 인간다운 생활을 가능케 하는 수입이 주어져야 함을 뜻하며,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일터와 작업, 직장 조직으로부터의 소외를 지양하도록 요구하며, 환경친화적인 가운데서 일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은 사람을 통해서, 사람과 함께, 사람 안에서 이루어지는 창조적 작업이다. 노동에서 사람을 잊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손창희, 「노동강화(勞講話) 10장」, 2002). 우리 노동관계법ㆍ제도 역시 이런 관점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문무기 교수(아킬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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