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원로 사목자를 찾아서] (5) 정하권 몬시뇰(마산교구)
‘사제답게 살라’ 말과 행동으로 가르친 ‘사제들의 아버지’
2017. 12. 10발행 [14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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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하권 몬시뇰이 가톨릭 신앙의 핵심인 미사에 충실한 신앙생활을 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남정률 기자



정하권(91) 몬시뇰은 명실공히 사제들의 아버지다. 광주가톨릭대와 대구가톨릭대 학장을 모두 지낸 정 몬시뇰이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출해낸 사제만 700여 명에 이른다. 1951년 김수환 추기경과 사제품을 함께 받은 유일한 동기 사제로도 잘 알려져 있다.

서울에 첫눈이 흩날리던 11월 20일, 서울 양천구 신월동의 한 아파트에서 노후를 보내는 정 몬시뇰을 찾았다. 희로애락의 고비고비를 굽이쳐 돌아온 세월 덕분일까, 구순(九旬)을 넘긴 정 몬시뇰은 세상에서 조금은 비켜난 듯한 편안한 얼굴로 기자를 맞았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지나온 과거를 회상하는 데 흐릿한 순간이 많았다. 정 몬시뇰을 모시고 오랫동안 같이 지내온 조카딸이 정 몬시뇰의 희미한 기억을 채워 줬다.


▲ 정하권(앞줄 가운데 붉은 점선) 몬시뇰이 1978년 대건신학대학(현 광주가톨릭대) 신학생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정하권 몬시뇰이 1987년 몬시뇰에 임명된 후 서임 감사 미사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정하권(앞줄 가운데 붉은 점선) 몬시뇰이 1978년 대건신학대학(현 광주가톨릭대) 신학생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정하권(맨 왼쪽) 몬시뇰이 대구가톨릭대 교수 재직 시절 직원들과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정하권 몬시뇰 제공




▶건강은 어떠신지요,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구십 노인치고는 건강한 편입니다. 특별히 불편한 데는 없습니다. 황반변성과 백내장 때문에 시력이 좋지 않아 책은 거의 읽지 못합니다. 이 나이에 「성무일도」 말고는 딱히 읽을 책도 없고요. 새벽 5시 반쯤 일어나 밤 10시와 11시 사이에 잠자리에 듭니다. 저녁을 아주 적게 먹습니다. 건강한 비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외출은 동네 산책이나 병원, 일산에 사는 동생을 가끔 만나러 가는 정도입니다. 미사는 주일마다 직접 지냅니다. 제자인 유종필(도미니코수도회 원장) 신부님이 자주 집에 와서 미사를 같이 드리기도 합니다.”



정 몬시뇰은 지난 10월 뇌졸중으로 20여 일 병원 신세를 졌지만 다행히 별 탈 없이 퇴원했다. 10여 년 전에 이어 두 번째로 찾아온 뇌졸중을 다시금 딛고 오뚝이처럼 일어선 것이다. 건강은 타고난 듯했다.



▶사제 생활에서 가장 보람 있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훌륭한 사제를 많이 길러낸 일입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제자 신부들을 만날 때마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뿌듯함을 느낍니다. 제자들이 사제직에 충실하게 사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 더 보람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자 신부들이 정 몬시뇰을 공경하는 마음은 각별한 것으로 소문났다. 8월 예수의꽃동네유지재단이 강화도에 세운 ‘교황 프란치스코 센터’ 축복식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태국ㆍ캄보디아ㆍ미얀마 교황대사인 장인남 대주교가 정 몬시뇰에게 큰절을 올려 주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존경하는 스승을 오랜만에 만난 제자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었다. 정 몬시뇰의 조카딸은 “많은 제자 신부 중에서 특히 백남해(마산교구 사회복지국장) 신부가 몬시뇰을 지극하게 챙긴다”고 귀띔했다.

사실 정 몬시뇰은 신학생들에게 무척 엄격한 스승이었다. 다른 누구보다도 성직자 본연의 직무에 충실했던 이가 정 몬시뇰이다. ‘주교학교 교감’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주교가 된 제자 중에 학창 시절 정 몬시뇰의 꾸중을 듣지 않은 이가 드물었기 때문일 것이다. 제자들은 정 몬시뇰이 외유내강(內柔外剛)의 원칙주의자였다고 입을 모은다.



▶후배와 제자 사제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없으신지요.

“제가 마산교구에서 가장 엄한 사제였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사제답게 살고자 애썼던 것이 다른 이들에게는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입바른 소리도 자주 했습니다. 사제는 사제다워야 합니다. 사제에게 돈이 왜 필요합니까? 물질적인 데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사제다운 것인지를 모르는 사제는 아마 없을 겁니다. 아는 대로, 생각한 대로 실천하면 됩니다.”



정 몬시뇰이 사제답게 살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보여 주는 일화는 많다. 신학교 학장 시절 사적인 용도로는 절대로 관용차를 이용하지 않았으며, 외부 강연료 수입이 생기면 개인적으로 챙기지 않고 모두 학교에 내놓을 만큼 공사 구분이 철저했다. 본인은 싸구려 옷만 사 입을 정도로 검소했지만 어려운 이들을 돕는 데는 주저함이 없었고, 돈은 필요한 데 써야 한다며 학교 퇴직금도 교구에 기탁했다. 정 몬시뇰의 그런 면모는 신자들에게 참된 사제상을 심어 주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바람직한 신앙생활은 어떤 모습일까요.

“기본에 충실한 신앙입니다. 요즘 신자들은 신심단체 활동에 많은 비중을 두는 것 같습니다. 가톨릭 신앙생활의 기초는 미사입니다. 무엇보다 미사라는 신앙의 본질에 충실해야 합니다. 본질과 비본질적인 것을 구분하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신앙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에 맞춰 입맛대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은 내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내 뜻이 아닌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그리스도 신앙이라는 것을 잊지 맙시다.”



남정률 기자 njyul@cpbc.co.kr







정하권 몬시뇰 약력


- 1927년 : 경북 군위 출생

- 1951년 : 사제 수품

- 1951년~1957년 : 창녕본당 주임(대구대교구)

- 1957년~1959년 : 스위스 프리부르대학교 석사

- 1959년~1962년 : 프랑스 파리대학교 철학 연구

- 1962년~1966년 : 스위스 프리부르대학교 신학박사

- 1966년~1970년 : 남성동본당 주임(마산교구)

- 1970년~1975년 : 한국사목연구원장, 주교회의 사무차장, 가톨릭대 신학대 교수

- 1975년~1982년 : 대건신학대학(현 광주가톨릭대) 학장, 교수

- 1982년~1993년 : 대구가톨릭대 학장, 교수

- 1987년 : 몬시뇰 임명

- 1994년 :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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