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추기경 정진석] (75·끝) 희망을 안고 다시 하느님께
“추기경님, 사람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요?”
2017. 11. 26발행 [14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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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석 추기경은 2012년 6월 20일 정든 명동 주교관을 떠나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사제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사진은 혜화동본당 신자들과 혜화유치원생들이 피켓과 꽃다발을 들고 정 추기경을 환영하는 모습. 서울대교구 홍보국 제공

▲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사제관에 들어선 정진석 추기경이 선후배 사제들의 환영 속에 백민관 신부와 포옹하고 있다.





2012년 6월 20일. 정진석 추기경이 명동 주교관을 떠나 김수환 추기경이 머물렀던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 신학대학 내 사제관으로 거처를 옮기는 날이었다. 이날따라 하늘은 맑고 높아 보였다.

이날 아침도 여느 때와 다름이 없었다. 정 추기경은 교구청에서 교구청 사제들과 아침 미사를 지내고 아침 식사를 하고 숙소로 들어와 주교관을 떠날 채비를 마쳤다. 정 추기경은 오전 10시가 지나면서 정들었던 교구청 숙소를 나왔다. 교구청 마당에 교구청 사제들과 직원들이 늘어서서 마지막으로 명동을 떠나는 정 추기경을 배웅했다.

“추기경님, 건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정 추기경은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한 사람 한 사람 손을 잡으며 인사를 나눴다. 정 추기경과 오랫동안 정이 들었던 주교관 식당 직원들은 뒤돌아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정 추기경은 청주교구를 떠나던 때가 떠올랐다. 그 당시가 그의 일생에서 가장 힘든 때였다. 교구 한 해 예산의 10배나 되는 100억 원을 빌려 어렵게 병원 인수를 결정했는데, 얼마 후 덜컥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됐기 때문이다. 다른 곳으로 떠날 줄 알았으면 그런 큰일을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에게 대책을 세울 때까지 부임 일정을 늦춰달라고 요청까지 했지만 어렵다는 대답을 들었다. 결국 그는 그해 6월 서울로 올라와야 했다. 청주교구에 100억 원이라는 큰 빚을 남겨 몹시 미안하고 착잡한 마음이었다,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았던 그는 서울대교구청을 떠나는 이 순간에도 청주교구 사제들과 신자들에게 미안하고 또 감사한 마음 뿐이었다.

정 추기경은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 명동을 출발해 혜화동 대신학교로 향했다. 명동과 혜화동 사이를 그동안 수없이 오갔던 그였지만, 이날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듯 말없이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오전 11시경 대신학교에 도착한 정 추기경은 혜화동본당 신자들과 혜화유치원생들의 환영을 받았다.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피켓과 함께 꽃목걸이도 준비해 정 추기경의 목에 걸어주었다. “이 얼마나 좋은가~ 반가운 님 오신 이 날에~” 혜화유치원생들은 깜찍한 노래까지 준비해 정 추기경을 위해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숙소에 가까이 이르자 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 사제들과 같은 숙소에 거주하는 선후배 사제들이 마중 나와 정 추기경의 혜화동 전입을 환대했다. 신부들을 끌어안으며 정 추기경은 반가움을 표시했다. 마당 가득 넘치는 웃음소리에 싱그러운 녹음도 짙었다.

숙소는 사제관 2층의 작은 사무실이 달린 곳이었다. 김수환 추기경께서 거처하셨던 장소였다. 숙소는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정 추기경은 전임자인 김 추기경이 은퇴 직전 한 인터뷰가 떠올랐다.

김 추기경은 당시 가능하면 운전 면허증을 따서 전국의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지는 못했지만 짧은 순간이라도 자유롭고 싶었던 김 추기경의 속 이야기였다고 생각했다. 정 추기경은 창밖을 바라보며 이제 본인도 새로운 삶을 맞게 됐다고 생각했다.

정 추기경의 퇴임 후 생활도 사실 그전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평생 시간표에 맞춰 생활해 왔던 터라 어려운 것은 없었다. 정 추기경은 젊은 시절부터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유지해 왔다.

보통 새벽 5시쯤 일어나 간단한 체조로 운동을 하고 아침기도와 묵상 후 7시 반에 숙소에서 같이 지내는 신부들과 아침 미사를 드린다. 8시에는 함께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한다. 오전에는 숙소와 붙어 있는 집무실로 나와 예방 손님을 만나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12시 낮 기도와 점심 식사 후 오후 일과도 오전과 비슷하다. 오후에 빼놓지 않는 일정이 있다면 신학대학 구내를 한 시간가량 걷는 것이다. 매일 산책을 하는 것은 오래된 그의 습관이다. 비가 와서 바깥마당을 걷지 못할 때는 실내 조금 넓은 공간에서 어떻게든 걸으려고 노력한다.

저녁 기도와 식사 후에는 평소대로 묵주기도 20단을 바친다. 그리고 아무리 늦어도 9시 반 이전에는 잠자리에 든다. 텔레비전은 필요할 때 뉴스만 잠시 보는 정도다.

정 추기경은 젊은 시절부터 계속해서 책을 쓰고 있는데, 특히 새벽에 하느님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책을 쓰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이처럼 정 추기경과 평생을 함께해온 오랜 친구이자 취미는 집필이다. 전에는 주로 영성과 교리, 교회법에 관한 글을 썼는데, 2000년도 초부터는 주로 성경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

정 추기경은 어느 순간부터 성경에 맛 들이고 공부하는 데 큰 재미를 느끼게 됐다. 교구장 재임 중에는 꽉 막혔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성경에 매달렸다. 성경 속 인물에게서 가야 할 길을 찾았던 경험이 유독 많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주신 긍정적인 성격에 감사하면서 정 추기경은 오늘도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가려고 애쓰고 있다. 신학생 시절처럼 시간표대로 기도하고 공부하고 글을 쓰고 묵상을 하며 주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끊임없이 대화하려 노력하는 행복한 삶이다.

* *

“추기경님, 사람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사람의 행복이 바로 하느님의 뜻입니다.”

※그동안 ‘추기경 정진석’을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회고록을 마치며>


한 사람의 일생을, 특히 교회와 역사의 중요한 인물을 회고한다는 것이 저에게는 어쩌면 애초에 무리였습니다. 구술과 자료를 바탕으로 연재를 시작했지만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의 한 기자가 회고록 ‘추기경 정진석’을 읽는 소회를 정 추기경에게 질문했을 때, 정 추기경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합니다.

“나는 나 자신의 일대기를 읽으면서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을 준비합니다. 회고록을 읽다 보면 내 무덤 앞에 모인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다른 사람들 눈에 비친 제 모습이랄까요. 마치 죽은 다음의 나를 미리 보는 것 같습니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차분한 심정으로 일생을 돌아보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이상할 정도로 죽음이 두렵거나 아쉽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감정적 동요도 없습니다. 회고록은 제가 생을 정리하고 죽음을 잘 준비하도록 돕는 좋은 벗입니다.”

정 추기경의 말씀을 전해 들으니 저는 부끄럽고 조금은 위안이 됩니다. 사실 정 추기경의 일생은 고스란히 우리 교회가 겪은 가슴 아픈 역사이며 근대사입니다. 회고록을 집필하면서 나는 고단한 시대를 사셨던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의 삶을 조금이나마 체험하게 된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의 특성을 하나의 표현으로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도 제 개인 체험에서 정 추기경은 인간적이며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는 분입니다. 그는 고통스런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희망과 유머를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근거는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밴 신앙의 힘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매번 과거를 떠올리며 진솔하게 자신의 삶을 옛날이야기 들려주시듯 말씀해주셨던 정 추기경님에게 감사드립니다.

허영엽 신부 서울대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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