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추기경 정진석] (74) 마지막 숙제
무거운 십자가 내려놓던 날 목자도 울고 양도 울었다
2017. 11. 19발행 [14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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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추기경은 은퇴를 앞두고 한 가지 숙제를 남겨 두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명동대성당 재조성에 관한 것이었다. 사실 서울대교구는 이미 1982년 명동성당발전위원회 발족을 기점으로 명동성당 종합계획을 시작했다. 지난 30여 년간 명동대성당 주변을 새롭게 단장하는 사업을 준비해 온 셈이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회의와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명동대성당 개발은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계획과 숙고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정 추기경은 누군가는 마침표를 찍어야 하고 그래서 명동 개발이 시작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큰 사업을 하면 후임자에게 또 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정을 미뤄도 후임자에게 역시 부담을 안겨 주는 셈이었다.

이제 어떤 방향이든 정 추기경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한 번에 다 이룰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래서 그는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명동성당 종합계획 4단계 계획을 승인했다. 그중 1단계는 2014년까지 완공을 목표로 하며 2∼4단계는 짧게는 20년, 길게는 4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진행하는 계획이었다. 2단계 이후에도 사정에 따라 얼마든지 변경할 수 있는 계획을 지시했다. 그리고 교구 사제평의회를 열어 명동성당 종합계획 1단계 사업을 시작하는 것을 결정했다.

교구 설정 180주년을 기념하며 명동성당 종합계획 1단계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11년 9월 16일은 성 김대건 신부의 순교일이었다. 서울대교구는 이날 명동 가톨릭회관 성모상 앞에서 명동성당 종합계획 1단계 기공식을 갖고, 한국 교회 300년을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정진석 추기경은 기공식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오늘은 교구 설정 180년 만에 처음으로 서울대교구청을 건설하게 된 역사적인 날입니다. 명동성당 종합계획은 무엇보다 명동성당을 더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한 것이며, 교회가 세상과 더 적극적으로 소통해 복음에 기초한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명동성당 앞을 시민들에게 열린 공간으로 제공해 신자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앞으로도 명동성당이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에 함께하는 길잡이로서 임무를 수행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는 특히 명동성당이 젊은이들과 외국인들에게 인생의 참 의미와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명소가 되기를 기대했다. 이로써 서울대교구는 명동대성당 건축 초기인 1900년대와 같은 자연적 경관을 갖춘 성당의 모습을 되찾고, 교구 설정 이후 처음으로 독립된 통합 교구청사를 갖추게 됐다.

이 사업은 한국의 역사ㆍ문화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명동대성당을 보존하고 명동 일대를 열린 문화공간으로 꾸미는 과정의 하나로 교회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관심을 모았다. 정 추기경은 명동 개발의 내용과 결과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올 것이라 짐작했다. 그러나 이제 그의 손을 떠났으니 하느님께 맡겨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한창 명동 개발 공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2012년을 맞이했다. 새해가 되면서 교회 안팎에서는 81세가 된 정 추기경의 후임자가 나올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일간지에서는 여러 명의 주교를 거명하며 예측 기사를 쏟아냈다. 그러나 정 추기경은 아무런 동요 없이 일상 업무를 계속해나갔다. 후임자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하느님께서 좋은 분을 보내주실 거예요”라면서 말을 잘랐다.

▲ 서울대교구장 이임 미사에서 정진석 추기경이 눈물을 흘리며 신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있다.

▲ 2012년 5월 10일 서울대교구 후임 교구장 발표 기자회견장에서 정진석 추기경이 후임자로 임명된 염수정 주교의 손을 맞잡고 기뻐하고 있다.



2012년의 봄은 아주 빠르게 지나갔다. 여름을 재촉하던 5월 초, 교황청에서는 염수정 주교를 정 추기경의 후임자로 발표했다. 정 추기경은 안도했다. 책상에 앉은 정 추기경은 서울대교구 사제로서 교구를 잘 아는 총대리 주교가 교구장이 됐으니 참 잘된 일이라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정 추기경은 깊은 상념에 빠진 듯 한참이나 눈을 지그시 감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뜬 정 추기경은 일어나 창밖을 보며 혼잣말을 하듯 이야기했다.

“여름이 벌써 다 온 것 같네. 참 시간이 빨라….”

잡아놓은 시간은 빨리 간다더니, 정말 그랬다. 후임 교구장 발표 이후 6월 15일 이임 미사와 20일 숙소인 혜화동으로 이사하는 일정이 확정됐다. 정 추기경은 6ㆍ25 전쟁이 일어난 6월 25일을 새 교구장 착좌식 날로 계획했는데, 이는 서울대교구장이 평양교구장을 겸임하는 의미도 있지만 염 대주교가 6월 말 로마에서 대주교들이 교황에게 받게 되는 팔리움 수여식에 참석하도록 배려한 것이었다.

2012년 6월 15일, 드디어 명동대성당에서 정 추기경 이임 미사가 열렸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고마움과 사랑을 느낍니다. 여러 가지 힘든 상황 속에서도 각기 맡은 소임에 최선을 다해 사목활동을 하는…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정진석 추기경이 2012년 6월 15일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된 이임 미사를 마치고 서울대교구 사제단의 박수를 받으며 성전을 나서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정 추기경의 목소리가 울먹이듯 떨렸다. 정 추기경의 마음이 신자들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신자들도 이내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약한 모습을 전혀 보여 주지 않았던 정 추기경이었기에 많은 사제와 신자들은 마음이 아팠다. 14년간의 서울대교구장직을 내려놓고 사목 일선에서 물러나는 정 추기경을 배웅하기 위해 주교들과 사제단, 신자 등 1200여 명이 성당을 가득 채웠다. 의자에 앉지 못한 사람들은 선 채로 미사를 함께했다.

사제품을 받은 지 벌써 51년, 주교로 추기경으로 수많은 미사에서 강론했던 그였지만, 이날만은 복받치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정 추기경의 목소리가 떨릴 때면 신자들도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닦았다. 추기경은 답사를 하며 두 번 눈물을 떨궜다. 그의 어깨도 조금 떨렸다. “신부님과 교우들의 협조와 기도와 격려 진심으로 감사했다. 모두가 제게는 하느님이 보내주신 천사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너무 과분했다”고 말할 때, 또 “성당 하나를 짓기 위해 신자들이 드리는 희생과 봉사를 생각할 때 너무 감격스럽고 감사하다”고 말할 때였다.

정 추기경은 본당 분할을 중요하게 강조해서 그가 교구장으로 있는 동안 본당 100여 곳이 신설됐다. 정 추기경은 교구장직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며 만감이 교차했다. 그는 무엇보다 모든 것에 감사하고 그리고 또 미안한 마음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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