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영성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38) 일흔두 제자의 파견과 회개하지 않는 고을(루카 10,1-16)
빈 손으로 하느님 나라 선포하러 떠난 일흔두 제자
2017. 11. 12발행 [1439호]
홈 > 사목영성 >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기사를 카톡으로 보내기 기사를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기사를 twitter로 보내기 기사를 facebook으로 보내기

▲ 벳사이다(왼쪽)와 코라진(위) 유적지. 모두 갈릴래아 호수 북단에 있던 고을들이다. 가톨릭평화신문여행사 제공



예수님께서는 일흔두 제자를 파견하며 파견지에서 해야 할 일을 알려 주십니다.(루카 10,1-12) 이렇게 제자들을 파견한 후에는 회개하지 않는 고을들을 꾸짖으십니다.(10,13-16) 차례로 살펴봅니다.



일흔두 제자의 파견(10,1-12)

루카는 예수님께서 일흔두 제자를 지명해 파견하시는 이야기를 “그 뒤에”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그 뒤에’란 바로 앞에 나오는 내용, 곧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관련해서 말씀하신 뒤에’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지난 호에 살펴본 내용을 간단히 다시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약하면 예수님을 따르려면 “머리 기댈 곳조차 없는” 처지를 감내해야 하고, “나를 따라라”는 부름을 받은 즉시 지체없이 따라야 하며,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결단을 내렸으면 자꾸만 옆길로 새거나 지난 일을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기본자세입니다.

이렇게 제자들이 지녀야 할 기본자세를 먼저 제시한 후에 루카는 파견되는 제자들의 구체적인 처신에 관한 예수님의 당부 말씀을 전합니다. 우선 파견되는 제자는 일흔두 명입니다. ‘일흔둘’이라는 숫자는 전 세계 모든 민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일흔두 제자를 뽑으셨다는 것은 전 세계 곳곳에 복음이 선포 되도록 하는 것의 예형(豫形)이라는 것입니다.(「주석 성경」)

복음 선포의 사명을 받고 파견되는 제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기도하는 것, 곧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수확할 밭의 주인께 추수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는 것’(10,2)입니다. 그다음에는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않은 것입니다.(10,3) 돈주머니와 여행 보따리와 신발은 여행하는 사람의 필수 지참물인데도 지니지 말라고 하시는 까닭은 제자들의 목적이 여행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 선포에 있으며 복음 선포가 그만큼 시급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는 말씀과 맥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길에서 인사하지 말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근동에서는 인사가 대단히 길었기 때문에 시간을 지체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이런 말씀은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10,3)는 말씀과 결부시켜 해석하면 의미가 훨씬 확장됩니다. 제자들이 파견되는 곳은 바로 예수님께서 몸소 가시려는 고장과 마을들입니다.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동안 예수님은 이미 사람들에게 냉대를 받으셨고(9,53), 머리 기댈 곳조차 없는(9,58) 처량한 신세입니다. 주님이요 스승이신 예수님의 사정이 이러할진대 그 제자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니 제자들을 보내는 예수님 마음은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이렇게 파견되는 제자들은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평화를 빌어 주고, 이집 저집으로 옮겨 다니지 말고 한 집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10,6-7) 이집 저집으로 옮겨다는 것은 더 나은 접대를 받으려고 찾아다니지 말고 사명 수행에만 전념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주석 성경」)

제자들은 또 어느 고을에 들어가든지 자신들을 받아들여 주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고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해야 합니다. 그러나 받아들여 주지 않으면 한길에 나가 “여러분의 고을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까지 여러분에게 털어 버리고 갑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10,8-11) 발에 묻은 먼지를 털어 버린다는 것은 절연한다는 표시입니다. 그런 고을은 하느님 나라가 다가오는 그 날이 되면 유황불에 멸망하고만 소돔보다 더 못한 처지가 될 것이라고 예수님은 경고하십니다.(10,12) 그렇다면 하느님 나라는 그 나라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구원의 기쁨이 되겠지만 거부하는 이들에게는 파멸의 근원이 될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고을들(10,13-16)

이렇게 제자들을 파견하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회개하지 않는 고을들을 두고 탄식하십니다.(10,13-15) 그 고을들은 코라진, 벳사이다, 그리고 카파르나움입니다. 세 고을은 모두 갈릴래아 호수 북쪽에 있습니다. 벳사이다는 사도들인 베드로와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필립보의 고향이고 예수님께서 활동하신 곳입니다. 카파르나움은 시몬의 장모 집이 있던 곳이자 후대에 예수님의 도시라고 불릴 정도로 예수님의 활동 중심지였습니다. 하지만 코라진은 신구약 성경 전체를 통틀어 딱 두 군데, 루카복음의 이 대목과 이에 상응하는 마태오복음 11장 21절에만 나옵니다.

그런데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다”(10,13)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보아 예수님께서는 벳사이다에서뿐 아니라 코라진에서도 하느님 나라가 왔음을 보여 주는 여러 기적을 행하셨음이 분명합니다. 티로와 시돈은 갈릴래아의 북서쪽으로 지중해를 끼고 있는 이방인 지역 시리아 페니키아에 있는 해안 도시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코라진과 벳사이다에 대해서는 “불행하여라!” 하고 탄식하시지만(15,13), 카파르나움에 대해서는 탄식을 넘어 저주하는 것처럼 심하게 나무라십니다.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10,15)

세 고을에 대한 탄식 혹은 심한 나무람에 이어 예수님께서는 바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10,16)

이 말씀이 뜻하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에 앞서 파견되는 제자들이 수행하는 사명은 단순히 예수님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시는 사명을 그대로 이행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이 말씀은 예수님 시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말씀이라고 여길 수 있을 것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이들은 바로 예수님의 일을 하는 것이며, 그래서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고 따라서 예수님을 보내신 분 곧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이들은 예수님께서 탄식하시며 몹시 나무라신 세 고을과 같은 운명에 처할 것입니다.




기사를 facebook으로 보내기 기사를 twitter로 보내기 기사를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기사를 카톡으로 보내기
 관련기사보기
첨부파일
이전뉴스 다음뉴스 추천 목록
 
발행일자
지난코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