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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받는 교회를 도웁시다] 중동 (3) 1600년 신앙을 지켰다... 시리아 교회

[고통받는 교회를 도웁시다] 중동 (3) 1600년 신앙을 지켰다... 시리아 교회

차별·박해 딛고 무너진 성당 다시 짓는 그 날까지 ‘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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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2 발행 [1439호]



종교를 넘어 모든 시리아 청년들에게 ‘아버지’처럼

시리아 내전의 아픔을 얘기할 때 독일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프란츠 반들라트 신부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966년 시리아에 도착해 반세기 가까이 그 나라를 사랑했다. 이슬람교도들까지 그의 가난과 겸손, 단순함에 반해 ‘살아 있는 성인’이라고 칭송했다.

젊은이들은 아버지처럼 따랐다. 그는 일 년에 몇 차례 젊은이들을 이끌고 국토 대장정 길에 올랐다. 매번 수백 명이 참가했는데, 거기에는 무슬림 젊은이도 많았다. 프란츠 신부와 길을 걷는 젊은이들에게 종교적 차이는 하등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하느님과 인간, 사랑을 얘기했다. 또 시리아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 줬다. 그리스도교 젊은이들에게는 특히 1600년 신앙 전통의 위대함을 강조했다. 그의 별명은 ‘계속 전진’(keep going). 지쳐서 땅바닥에 주저앉은 젊은이들을 보면 그들 어깨를 툭 치면서 항상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앞장섰다.

그는 극단주의 무장 조직이 홈스(Homs)로 진격했을 때 피란을 가지 않고 홀로 성당을 지켰다. “그리스도인만 도우려고 여기에 있는 게 아니다”며 성당 문을 열어놓고 그리스도인과 무슬림 가리지 않고 먹을 것을 내줬다. 하지만 2014년 4월 7일, 그의 선한 행동을 시샘하던 ‘악마들’이 성당에 난입해 그를 살해했다. 76회 생일을 며칠 앞두고 있을 때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반들라트는 나의 형제”라며 “형제의 죽음에 깊은 고통을 느끼며, 그 고통은 내 형제처럼 고난을 겪으면서 죽어가는 시리아 국민들을 떠올리게 한다”(4월 9일 일반알현 중)고 애도했다.


▲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세력의 포위에서 벗어난 시리아 홈스(Homs) 인근 시가지. 한 소년이 부서진 유모차에 물통을 싣고 동생을 태워 물을 구하러 가고 있다. 【CNS 자료사진】

▲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만난 시리아의 그리스도인 난민들. 여성이 마지드씨이고, 그의 오른쪽에 있는 청년이 건축학도 엘리에씨다. 김원철 기자






아시리아 그리스도인들의 굳건함


프란츠 신부를 아버지처럼 여겼던 여성 마지드 알자 홈(27)씨는 그의 죽음이 이해가 되지 않아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쟁통에 사촌 동생과 많은 친구를 잃었지만, 아버지 신부의 죽음이 가장 큰 슬픔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무장 조직의 포위가 곧 풀릴 것이라는 소문이 돌아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날아온 소식은 사랑하는 사람의 부음이었다. 신부님 가르침대로 참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싶어 홈스의 난민구호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성 바오로 구호센터에서 일한다. 교황청 산하 재단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 지원으로 난민들에게 식량과 의약품을 전달하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인은 총을 들지 않고, 무슬림을 차별하지 않는다”며 “그래서 난민들이 교회가 운영하는 구호센터로 몰려온다”고 말했다. 또 “요즘은 전기가 24시간 들어오니까 천국이 따로 없다”며 내전이 끝나가는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마지드씨와의 만남은 취재진에게 행운이었다. 시리아에 들어가기 힘든 상황이라 막막했는데, 그가 국경을 넘어 레바논 베이루트까지 달려왔다. 3명이 택시를 150달러에 전세 비용을 나눠냈다고 했다. 그가 부담한 50달러(5만 6000원)는 요즘 시리아에서 남성의 한 달 봉급과 맞먹는 액수다.

“홈스 일대에서는 알카에다 분파인 알 누스라(Al Nusra)가 맹위를 떨쳤다. 4개월 전에도 전투가 있었다. 포위와 고립, 사랑하는 이의 죽음과 통곡은 일상이다. 포위된 동안 그리스도인 여성도 히잡(이슬람 여성이 쓰는 헤어 스카프)을 써야 했다.”

시리아는 이슬람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복음의 땅이었다. 4세기 은수자 성 마론(St. Maron)의 영향으로 아시리아 제국의 후손들은 모두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다. 7세기 이후 중동이 서서히 이슬람화하는 중에도 그들은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1600년 동안 이어진 차별과 박해, 심지어 대량학살에도 쓰러지지 않은 이들이 아시리아 그리스도인들이다. 아랍 세계에서 아시리아인은 중동에 남아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통했다. 지금도 그렇게 통한다.

마지드씨 소개로 최대 격전지 알레포에서 온 그리스도인 난민 엘리에(26)씨를 만났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엘리에씨는 “알레포는 집과 건물 80%가 무너졌다”며 “고향에 돌아가서 집과 교회를 다시 짓고 싶다”고 말했다. “우린 그나마 살아 있기에 희망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드씨가 웃으면서 끼어들었다. “맞아. 우린 ‘계속 전진’하는 거야.”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인터터뷰: 안토니에 쉬베르 주교(시리아 라타키아 교구장)





“이 광대한 이슬람 땅에서 누가 복음을 지키고, 전할 수 있겠습니까.”

라타키아교구(마로니트 가톨릭)의 안토니에 쉬베르 주교가 자리에 앉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반문했다. 그러면서 “아랍어를 사용하는 중동의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의 땅에 남아 복음을 증거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기자를 만나기 위해 아침 일찍 차를 몰아 국경을 통과해 베이루트에 막 도착한 참이다. 그는 지난해 5월 교구 내 해안도시 타르투스가 IS 공격을 받은 이튿날 “난민을 돕던 신부와 신자들이 지금은 (사망한) 신부 시신을 묻고 있다”며 참담한 상황을 전해준 바 있다.

그는 시리아 내전은 정치적 이익과 지역 패권을 노린 진흙탕 싸움일 뿐 종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과거 서구 열강이 갈등의 씨앗을 뿌렸고, 무기와 오일을 바꾸고, 여전히 지역 패권을 잃지 않기 위해 각기 다른 셈법으로 발을 걸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전쟁은 수많은 원인의 결과다. 유럽 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국제사회가 마음만 먹으면 당장에라도 시리아 내전을 끝낼 수 있는데, 끝낼 준비가 돼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아직(Not Yet)’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힘없는 이들이 그들 싸움의 고통을 계속 떠안고 산다.”

이어 “병원과 학교가 가장 시급하다”며 “우리 교구는 지난달에도 ACN로부터 5만 달러(5500여만 원)를 받아 100명의 수술비를 지원했다”고 말했다. 또 “교육만이 시리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며 “학교를 지으려는 이유는 무슬림 아이들을 개종시키려는 게 아니라 이슬람 사회에 그리스도교의 가치관을 심어 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령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는 말씀은 복음 이전에 인성교육과 평화의 기초 원리다. 극단주의자들은 그런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종교와 이념이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고 타도 대상으로 본다. 아이들이 복음적 가치를 알아야 시리아의 평화가 가능하다.”

그는 “행동이 말보다 큰 목소리를 낸다는 것을 알기에 난민들을 묵묵히 돕고 있지만 어려움이 많다”며 “한국 교회가 시리아의 미래(교육 사업)를 건설하는 일에 힘을 보태 달라”고 요청했다.

김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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