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영성
[나의 미사이야기] (23) 사막에서 봉헌한 눈물의 미사
강윤석 스테파노 서울대교구 행당동본당
2017. 11. 12발행 [14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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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니는 행당동성당은 맑은 아침 햇살이 제대 위로 쏟아져 들어올 때면, 스테인드글라스에 투영된 알록달록한 빛깔과 어우러져 성당 안에서 천상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올해 시월에도 화창한 날 아침 미사를 마치고 신자들이 거의 다 빠져나간 성당 안에 머물렀다. 감실의 붉은 불빛은 꾸르실료 교육 중에 성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느꼈던 강렬한 그분의 현존 속으로 나를 끌어들였다. 과거 리비아에서 8개월간의 사막 현장 생활을 마치고 벵가지 성당에 들어서며 마주쳤던 그 감실의 붉은 불빛과 사막 생활 중에 수도 없이 바쳤던 공소예절에서 느꼈던 서러움이 연결돼 깊은 감회 속으로 빠져들었다.

1990년 2월 리비아 사하라사막 한가운데에 위치한 사리르 공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근무를 시작한 지 3주 정도 만에 겨우 천주교 신자들의 공동체를 알아내고 주일에(이곳에서는 금요일이 쉬는 날이라 주일 미사도 금요일에 봉헌한다) 개신교와 같이 쓰고 있는 공소에 모여 공소예절을 드릴 수 있었다.

어느 날, 열두세 명 정도 모여서 주례자의 인도로 공소예절을 시작하는데 입당 성가에서부터 마음이 아주 산란해졌다. 대죄를 짓고 유배된 것 같은 외로움과 하느님으로부터 버려진 자식 같은 슬픔이 밀려들었다. 우리의 이 예절이 전 세계에서 드리는 미사성제와 합하는 순서에서 두 팔을 위로 뻗는 순간 눈물범벅이 됐다. 애써 눈물을 삼키며 겨우 예절을 마친 적이 있었다.

서울에서 생활할 때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미사를 드릴 수 있었고, 성체를 모시는 것도 게으르지만 않으면 매일이라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미사나 성체는 일상적인 것으로 생각했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총이며 선물인지 사막 한가운데 주변에 마을도 없는 그곳에서 살면서 차츰 알아 가게 됐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영성체. 사방이 꽉 막힌 아무도 볼 수 없는 밀실에서 혼자 소리치며 몸부림치는 ‘나’라는 존재가 너무나 허약하고, 아무것도 아닌 나였지만 겨우 자신을 지켜내며, 그래도 밤하늘의 수많은 별을 보면서 스스로 위로를 찾아야 했던 시기였다.

그렇게 8개월을 근무하다가 첫 휴가를 위해 벵가지에 있는 본부로 올라왔다. 주일 미사 참여를 위해 벵가지 시내에 있는 성당을 찾았다. 성당 문을 열고 경내로 들어서는 순간, 정면 십자가상 밑에 있는 감실의 붉은 불빛을 발견하고는 온 다리에 힘이 쭉 빠지면서 그대로 무릎을 꿇고 바닥에 엎드리듯 두 손을 짚을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반가웠고 가슴이 벅찼다. ‘이제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이 물밀 듯이 들어와 내 가슴을 채웠다.

해외 생활을 마치고 귀국 후 또 많은 세월을 살면서도 미사와 성체에 대한 그때의 감회는 좀체 사라지지 않고 내 가슴 깊은 곳에 자리해, 미사 때마다 성체에 대한 지극한 감사의 마음을 간직할 수 있었다.

이제는 은퇴 후 평일 미사에 맛을 들여 부지런히 성당을 찾고 있다. 미사 후 텅 비어 있는 공간에 창을 비집고 들어온 아늑한 햇살을 느끼며 감실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는 맛이 좋아 그렇기도 한 것 같다. 곁에 계신 주님께 내 자신을 몽땅 들어내어 수줍은 안부를 전하기도 하고, 이제 앞으로 전해 주실거라 믿는 더 크고 맛있는 선물들을 기대해 보기도 한다.

참사랑이신 하느님. 그동안 보여 주신 당신의 크신 은총에 감사합니다. 때로는 갈증을 통해 당신의 단맛을 알게 하시고, 폭풍 같은 열정도 고요함 속에 감출 수 있게 하시니 당신의 사랑을 더 깊게 새길 수 있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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