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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IS에 쫓겨 난민된 바스만 카슈아씨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IS에 쫓겨 난민된 바스만 카슈아씨

수많은 친척들과 본당 사제도 피살, 레바논 난민 캠프 힘겹게 피란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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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5 발행 [1438호]
▲ 시리아에서 탈출한 가톨릭 난민 카슈아씨와 가족. 옹색한 월세방 구석에 작은 단을 만들어 십자가와 성모상을 올려놓고 기도한다.



시리아 난민 바스만 카슈아(49)씨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고향에 남으려고 했다.

끊이지 않는 총성과 배고픔, 저격범의 총격은 견딜 수 있었다. 반정부 시위에 참가하지 않으면 집에 불을 지르겠다는 협박에도 꿈적하지 않았다. 하지만 수니파 극단 무장조직 IS(이슬람 국가)가 고향 코사예를 점령한 날, 거리에 20명을 세워 놓고 집단 학살하는 만행을 목격하고 뚝심이 무너졌다. 그날 밤 황급히 보따리를 챙겨 가족을 데리고 피란길에 올랐다.

카슈야씨 가족은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산다는 소문을 듣고 레바논 국경도시 자흘레까지 걸어왔다. 시리아에는 동방 가톨릭 신자가 많지만, 그는 한국 천주교인과 같은 로만 가톨릭이다.

이미 많은 것을 잃은 뒤였다. 정부군 장교였던 부인의 오빠는 적들에게 끔찍하게 살해됐다. 일가친척을 통틀어 내전 중에 죽거나 실종된 이가 40명 가까이 된다. 난민 생활 5년째에 접어들지만 큰아들 파디(12)는 지금도 전쟁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카슈아씨는 “양 갈래 골목길에서 큰아들 손을 잡고 시체를 건너뛰어 오른쪽으로 꺾어 내달리는 순간 왼쪽 골목으로 뛰어든 사람은 총을 맞고 쓰러졌다”며 “우리 본당 신부님도 사망하는 등 너무나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말했다.

카슈아씨 가족은 변두리 산동네 월세방을 구해 피란 보따리를 풀었다. 피란지에서 가장의 어깨는 무겁기만 하다. 자흘레대교구에서 허드렛 일감을 찾아주는 덕에 밥은 굶지 않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궁핍하지 않은 것이 없다. 월세는 교황청 산하 재단 고통받는 교회돕기(ACN)가 대교구를 통해 50%를 지원해 준다. 하지만 난민 가구 수가 많다 보니 석 달에 한 번밖에 순서가 오지 않는다.

카슈아씨는 “IS 점령군은 대통령이 물러날 때까지 교육은 없다면서 모든 학교를 폐쇄했다”며 “아이들이 피란지에서 교회 도움으로 학교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향 코사예는 조상 대대로 살아온 터전이고, 내 모든 추억이 거기에 남아 있다”며 시리아에 평화가 찾아오길 기원했다. 이어 “고향에 있는 성 엘리야 성당은 아름다웠고, 신자의 99%가 주일 미사에 참여했다”며 “하루빨리 돌아가서 파괴된 성당도 다시 지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남자의 자존심인지, 궁핍한 사정을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았다. “피란 생활 5년 동안 티셔츠 한 장 사 입어 본 적 없다”는 말에서 형편을 짐작할 뿐이다. 털이 부슬부슬 난 그의 단단한 팔뚝과 부인의 온화한 미소에 왠지 모를 믿음이 갔다. 고향에 돌아가면 폐허 위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후견인 / 라셸 비아이니

자흘레대교구 난민지원센터 매니저


“카슈아씨는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가장입니다. 교구가 월세를 지원하지 못하는 두 달간은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도 살기가 어렵습니다. 시리아에 돌아가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카슈아씨의 꿈을 한국 신자들이 응원해 주십시오.”

성금계좌(예금주 : 가톨릭평화방송)

국민 004-25-0021-108

농협 001-01-306122

우리 454-000383-13-102


※바스만 카슈아씨 가정에 도움 주실 독자는 5일부터 11일까지 송금해 주셔야 합니다. 이전에 소개된 이웃에게 도움 주실 분은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담당자(02-2270-2415)에게 문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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