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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받는 교회를 도웁시다] 중동(2) 신앙의 요람에서 지난 100년간 무슨 일이 있었나

[고통받는 교회를 도웁시다] 중동(2) 신앙의 요람에서 지난 100년간 무슨 일이 있었나

주인 잃어버린 믿음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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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5 발행 [1438호]

▲ 한 남성이 지난해 11월 이라크 모술에서 IS가 패퇴하자, 시내 근처 알-쿠브라 성당에 들어가 그들이 남긴 상처를 살펴보고 있다. 【CNS 자료사진】

▲ 전쟁은 건물은 물론 인간의 심성까지 모든 것을 파괴한다. 지난해 12월 시리아 내전의 격전지 알레포에서 정부군 병사들이 전복된 탱크에 올라서서 주위를 살피고 있다. 【CNS 자료사진】

▲ 시리아 난민촌 아이가 누나 품에 안겨 울다가 큰 카메라를 들고 나타난 기자를 힐끔 쳐다본다. 난민 캠프 생활 5년째, 이들에 대한 국제 사회의 관심은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김원철 기자



개신교 선교사들이 1860년대 어느 날, 오랜 사막 여행 끝에 이집트 중부 아슈트에 도착했다. 그들은 원대한 선교 열망을 품고 그 지역 지도자라는 사람들을 만났다.

“우리는 콥트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길을 알려 주기 위해 여기까지 찾아왔소.”

지도자들은 어리둥절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는 여기서 1800년째 그분과 살고 있는데…. 그러는 당신네는 언제부터 그분을 알았소?”

콥트인은 이집트 그리스도인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그 지역 지도자들은 콥트 교회 주교들이었다.





성경의 무대, 중동

서구 사회에서 중동 교회의 뿌리를 얘기할 때 자주 인용하는 일화다. 주교들 말대로 그들은 1800년 동안, 즉 그리스도교 태동기부터 사막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리스도교 초세기에 지중해 주변에 이른바 ‘4개 기둥’이 있었다. 알렉산드리아ㆍ안티오키아ㆍ콘스탄티노플ㆍ로마가 당시 그리스도교 세계의 중심이었는데, 로마를 제외한 3개가 중동에 있다. 사실 중동이라는 용어는 유럽인들 관점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은 유럽에서 가까운 동쪽 지역을 근동(近東), 중간 지역을 중동(中東), 한국과 일본처럼 맨 끝에 있는 지역을 극동(極東)이라고 불렀다.

고대 중동은 대하드라마 같은 신구약 성경의 역사가 펼쳐진 무대다. 아브람이 칼데아의 우르를 떠나 하란을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경로는 지금의 이라크, 시리아, 터키, 레바논을 거쳐 이스라엘에 가서 닿는다. 성경에 기록된 많은 도시가 이스라엘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시리아와 레바논, 요르단에 퍼져 있다.

하느님의 외아들이 강생해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도 중동 땅이다. 바오로 사도의 선교 무대도 마찬가지다.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은 중동 교회가 “그리스도 신앙의 여명기부터 줄곧 은혜로운 이 땅의 나그네였다”고 말했다.



전쟁과 학살, 시리아 신자 100만 명 피란

하지만 은혜로운 땅의 나그네들은 지금 고통받고 있다. IS(이슬람국가)를 비롯한 극단주의 무장 세력이 이라크 북서부와 시리아 일부 지역에서 활개치는 동안 그 지역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초토화됐다. 대표적인 곳이 그리스도인들이 밀집해 살던 이라크 북부 니네베 평원과 시리아 중서부 홈스(Homs)다. IS는 2014년 니네베 평원으로 진격한 뒤 그리스도인들을 무참히 살해하고 교회를 불태웠다. 며칠 만에 약 10만 명이 피란 행렬에 올라 뿔뿔이 흩어졌다. 미 국무부까지 나서 그들의 만행을 ‘집단 학살’(genocide)이라고 비난했다.

시리아의 경우 그리스도인 200만 명 가운데 절반가량이 그들의 광란을 피해 피란길에 올랐다. 아시리아 제국의 후손인 그들은 조상 대대로 그 땅에서 6000년, 그리스도인으로 1600년 이상을 살았다. 예수 그리스도 시대의 언어인 아람어 전례를 지금까지 지켜 온 이들이다.

정확한 숫자는 파악할 길이 없다. 이라크 그리스도인은 150만 명에서 30만 명, 시리아는 7%에서 2%로 줄었다는 추산만 있을 뿐이다. 이 정도면 그리스도인 없는 그리스도교 요람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시리아 라타키아 교구(마로니트 가톨릭)의 안토니에 쉬베르 주교가 ‘고통받는 교회를 도웁시다’ 취재진을 만나기 위해 국경을 넘어 레바논으로 건너왔다. 라타키아는 다마스쿠스와 알레포 등 시리아 각지에서 난민들이 모여든 도시다. 이라크는 한국인 여행 금지 국가로 묶여 있어 부득이 쉬베르 주교를 불러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국경 부근에서 검문소를 여러 번 통과한 것 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며 “교구 내 홈스에서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목숨을 잃었는데, 전역에서 난민들이 모여들어 교구 상황이 말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 “전쟁의 고통은 그리스도인과 무슬림 똑같이 겪고 있지만,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고향을 떠났다”고 통탄했다.

그렇다고 중동의 그리스도인 감소를 IS 같은 무장 세력의 박해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IS가 창궐하기 훨씬 이전부터 차별과 박해에 못 이겨 고향을 등지기 시작했다. 중동 교회는 4, 5세기에 분열을 겪었다. 이후 이슬람 장벽에 막혀 사실상 고립된 채 살아왔다. 그리스도인이건 유다인이건 중동에서 소수 종교인은 늘 ‘2등 시민’ 취급을 받았다. 그들은 ‘딤미(Dhimmi)’라고 불렸다. 비무슬림을 가리키는 차별적 용어다.

그래도 보호비 명목의 특별 세금(jizya)을 내면서 ‘보호’받고 살던 때가 나았을지 모른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오스만 제국이 붕괴되고, 이후 유럽 열강의 입맛대로 중동이 개별 국가로 재편되면서 도래한 독재 통치 시기에도 어느 정도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의 이라크 침공(2003년)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되고, 이어 ‘아랍의 봄’이라 불리는 민주주의 열망이 중동을 뒤덮자 중앙 권력에 균열과 공백이 생겼다. 이 틈을 노리고 등장한 집단이 극단주의 무장 조직들이다. 그들의 꿈은 서구 열강이 그어놓은 국경선을 지워버리고, 오스만 제국처럼 거대한 이슬람 제국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꿈은 망상으로 끝나가고 있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제 남은 중요한 문제는 그들의 광기를 피해 신앙의 요람을 떠났던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레바논에서 만난 난민들 의견은 반반으로 갈렸다. “우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고향 땅에서 그리스도교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난민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다 버리고 나와 여기서(피란지) 살려고 5년째 발버둥 치고 있는데, 모든 것이 파괴된 고향에 가서 무엇을 하란 말이냐”며 고개를 저었다.

시리아 홈스에서 난민 구호 활동을 벌이다 잠깐 레바논 베이루트로 나온 마지드 알자 홈(27)씨가 그나마 희망적인 얘기를 들려줬다. “중동의 그리스도인 박해는 일상적인 일입니다. 박해로 인해 우리의 신앙은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목숨을 내놓고 남아서 고향과 교회를 지키는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그들은 집과 교회를 다시 지을 것입니다. 중동의 그리스도인들을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교황청은 이미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 등과 함께 ‘니네베 재건 사업’에 착수했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고통받는 교회 돕기(Aid to the Church in Need)는 차별과 박해, 가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톨릭 교회를 지원하는 교황청 산하 단체로, 한국 교회도 1960, 70년대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2015년 아시아 최초로 한국 지부(이사장 염수정 추기경)가 개설됐다. 문의 : 02-796-6440   

 성금 계좌 : 우리은행 1005-303-232450   (예금주 사단법인 에이드투더처치인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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