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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받는 교회를 도웁시다] 중동(1) 자흘레 난민 캠프를 가다

[고통받는 교회를 도웁시다] 중동(1) 자흘레 난민 캠프를 가다

가족 8명과 포격 뚫고 국경 넘은 모나 란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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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9 발행 [1437호]

▲ 자흘레 시 외곽 시리아 난민 캠프에서 만난 아일란 쿠르디의 친구들. 전쟁의 고통은 힘없는 여성과 아이들 몫으로 고스란히 남는다. 천막 틈바구니로 고개를 내밀고 바깥 세상을 구경하는 아이의 순수한 눈빛이 그 사실을 웅변한다.

▲ 난민 여성이 곧 다가올 겨울 추위에 대비해 천막을 수선하고 있다.

▲ 자흘레 외곽에는 난민 캠프가 50개 가까이 된다. 난민들은 기약없이 또 한번 눈을 맞으며 겨울을 나야 한다.




“성조들과 예언자들의 고향, 메시아가 강생하신 영광스러운 장소, 구원자의 십자가가 드높여지는 것을 보았고 구세주의 부활과 성령 강림을 목격한 곳, 사도들과 성인들과 수많은 교부가 거쳐 간 땅, 최초의 교리가 정립된 현장….”(베네딕토 16세 교황 권고 「중동 교회」 제8항 참조)

중동은 그리스도교의 뿌리이자 요람이다. 하지만 인간의 눈먼 욕심에 그 뿌리는 뽑히고, 요람은 짓밟혔다. 100년 전만 해도 중동 인구의 14%가 그리스도인이었다. 지금은 4%대로 주저앉았다. 그리스도인들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2003년)과 ‘아랍의 봄’, 그리고 이슬람 극단 무장조직 창궐이라는 일련의 소용돌이 속에서 모진 박해를 받고 쓰러졌다. 특히 극단 무장세력 IS(이슬람 국가)가 활개친 이라크와 시리아의 경우 앞으로 그리스도인의 ‘현존’ 가능성을 의심해야 할 정도다.

교황청 산하 재단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와 가톨릭평화신문은 ‘고통받는 교회를 도웁시다’ 두 번째 순서로 박해받는 중동의 그리스도인들을 찾아간다.

글ㆍ사진=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레바논 국경도시 자흘레에 있는 시리아 난민 캠프에 들어서자 아일란 쿠르디의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아일란은 2년 전 터키 보드룸 해안에서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된 3살짜리 시리아 난민 꼬마다. 모래사장에 잠든 양 엎드려 있는 아일란의 모습은 시리아 난민의 비극을 환기시켰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에 무관심했던 전 세계인의 양심을 아프게 찔렀다.

아일란과 난민 캠프 아이들은 모두 시리아 북부 알레포가 고향이다. 알레포는 칼리프 제국 건설의 망상에 사로잡힌 이슬람국가(IS)가 점령해 초토화시켰다. 천막 골목에서 놀다 낯선 방문객을 보고 몰려든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 이들은 친구 아일란의 죽음과 고향 소식을 모르는 듯하다. 이들에게는 당장 배고프고 추운 게 불만이다. 그래서 아이들이다. 겨울에 대비해 찬바람을 막으려고 천막 귀퉁이에 못질하는 여인의 어설픈 손길에서 난민 생활의 고달픔이 느껴질 뿐이다.

분쟁 지역의 난민촌 풍경이 다 그렇듯, 남자들은 보이지 않는다. 캠프의 대표격인 이브라힘(40)씨는 남자들 행방에 대해 “전쟁 중에 죽었거나, 시리아에서 싸우고 있거나, 아니면 시내로 날품팔이를 나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눈앞에 보이는 황량한 산등성이 너머 시리아 영토를 가리키면서 “기막힌 사실은 저기에 남아 싸우는 남편이나 아들이 지금 누구와 싸우는지 모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니파 극단 무장세력과 시아파 정부군, 미국과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뒤엉켜 패권 다툼을 벌이는 내전의 현실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하지만 다 파괴된 데다 언제 제2, 제3의 IS가 튀어나올지 몰라 망설이고 있다”고 말했다.

자흘레 외곽에 있는 난민 캠프는 50개 가까이 된다. 5, 6년 전 난민들이 물밀듯 쏟아져 나올 때와 비교하면 모든 게 줄어들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유엔을 비롯한 비정부 기구들(NGO)의 지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들 캠프에는 그리스도인이 거의 없다. 그리스도인은 대부분 자흘레 변두리 산동네로 올라가 피란 보따리를 풀었다.

자흘레대교구(멜키트 동방가톨릭교회)의 난민지원사업 담당 사나 사미아씨는 “극단주의자들과 폭도로 돌변한 무슬림 이웃을 피해 도망 나온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무슬림 캠프에 들어갈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무슬림 난민은 시내와 캠프 어디든 들어갈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더욱이 산동네 빈민촌으로 들어온 그리스도인들은 유엔과 NGO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어 고충이 더 크다”고 말했다.

남편과 함께 사지(死地)에서 탈출한 그리스도인 난민 로나씨는 “그간 알레포에서 무슬림 이웃과 갈등 없이 평화롭게 살았다”며 “하지만 2011년 내전 발발 직후 마을의 모스크(이슬람 사원)에서 확성기로 그리스도인들을 위협하기 시작하면서 이웃 주민들이 폭도로 변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아무도 믿을 수 없다. 그들의 배신과 이유 없는 증오에 몸서리가 쳐진다”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표정은 공포와 배신감, 피란 생활의 막막함으로 뒤범벅됐다.

자흘레대교구는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오는 난민들 때문에 처음에는 어쩔 줄을 몰랐다. 난민들은 시내 빌딩 주차장은 물론 대성당 마당에까지 천막을 쳤다. 긴급 구호 경험이 없는 대교구에 사업 방향을 가르쳐 주고, 지원해 준 곳이 교황청 산하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 재단이다. ACN은 지금도 난민 월세 주거비, 무료 급식소, 난민 학교 등을 지원하고 있다. 사나 사미아씨는 “ACN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 교구는 지금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우리는 무슬림과 그리스도인 가리지 않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인도적 지원을 한다”고 밝혔다.

여러 세력이 뒤엉켜 싸우는 시리아와 이라크 내전은 수니파, 시아파 모두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가장 큰 피해자는 그리스도인들이다. 강대국들은 석유와 지역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두 나라의 독재 정권을 두둔했다. 이에 대한 불만을 먹고 성장한 극단 무장세력은 정치적 야망을 위해 불을 지르고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세를 규합하는 데 쓰인 불쏘시개는 그들의 종교적 ‘신념’이다. 불의한 신념의 희생양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이다. 시리아만 하더라도 내전 발발 직전 국민의 6%를 차지하던 그리스도인은 현재 유서 깊은 ‘성경의 땅’에 얼마나 남아 있는지 모른다. 혹자는 2~3%라고 추정한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짓밟은 그들의 눈먼 증오는 파스칼의 「팡세」 한 구절로 설명이 충분하다. “인간은 종교적 신념을 갖고 행할 때일수록 희열에 넘쳐 철저하게 악을 행한다.”




▲ “전쟁이 모든 것을 앗아갔다.” 란다씨가 인터뷰 중 울음을 터뜨리자 교구 봉사자가 위로하고 있다.



가족 8명과 포격 뚫고 국경 넘은 모나 란다씨 가정


가족 8명과 함께 피란 온 그리스도인 난민 모나 란다(54)씨 손에 약봉지가 들려 있다. 자흘레대교구와 ACN에서 보태 준 돈으로 사온 남편의 심장약이다. 피란길에서부터 심장 이상 증세를 보인 남편은 병원에서 “죽기 일보 직전에 왔다”는 말을 들었다. 지금도 약을 달고 산다.

란다씨는 “IS 대원들은 아들을 구타하면서 IS에 가입하라고 협박하고, 마을 소녀들을 끌고 갔다”며 “우리 가족은 그들 손에 죽고 싶지 않아서 포격을 뚫고 걸어서 국경을 넘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피란길은 이스라엘 백성의 이집트 탈출 여정과 다를 게 없었다”며 5년 전의 피란길 악몽을 떠올렸다.

란다씨 가족의 생활은 ‘버티는 것’이지 사는 게 아니다. 빈민가에 작은 방을 하나 얻었지만, 수입은 아들 혼자 나가 벌어오는 돈이 전부다. 자흘레 시내에서 일하는 시리아 난민 남성의 하루 품삯은 20~30불(약 3만 원)이다. 그나마도 난민들 탓에 일거리가 줄었다고 반발하는 원주민들 때문에 일감도 많지 않다.



ACN의 도움으로 월세 충당

란다씨 가족은 ACN이 교구를 통해 지원해 주는 돈으로 월세를 낸다. 제대로 된 식사는 무료 급식소 ‘자비로운 요한의 집’에 가서 먹는 점심이 유일하다. 그는 “하느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살지 못한다”고 말했다.



전쟁 전에는 가난해도 행복했는데…

그는 시리아 고향 얘기를 하다 “전쟁이 모든 것을 앗아갔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남편 레도씨는 내전 발발 전에 채석장에서 일했다. 가난했지만 아무 문제 없이 행복하게 살았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놔둔 채 도망쳐야 했다.

그리스도인이라서 박해받은 데 대해 그는 “그리스도인이라서 전쟁 중에 우리의 신앙이 더 강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리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며 “한국에서 온 손님과 다시 만날 때는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고통받는 교회 돕기(Aid to the Church in Need)는 차별과 박해, 가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톨릭 교회를 지원하는 교황청 산하 단체로, 한국 교회도 1960, 70년대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2015년 아시아 최초로 한국 지부(이사장 염수정 추기경)가 개설됐다. 문의 : 02-796-6440   


성금 계좌 : 우리은행 1005-303-232450 (예금주 사단법인 에이드투더처치인니드 )




고통받는 교회 돕기(Aid to the Church in Need)는 차별과 박해, 가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톨릭 교회를 지원하는 교황청 산하 단체로, 한국 교회도 1960, 70년대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2015년 아시아 최초로 한국 지부(이사장 염수정 추기경)가 개설됐다.

홈페이지: www.churchinneed.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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