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영성
[예수회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성 이냐시오 로욜라 (13·끝)
언제 어디서든 하느님을 만나다
2017. 10. 15발행 [14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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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냐시오 로욜라는 자신을 남김없이 하느님께 봉헌하다 65세를 일기로 주님 품에 안겼다.



1537년 비첸사에서 시간을 마무리하고 로마로 가는 길목에서 이냐시오는 라 스토르타(La Storta)라는 곳에 있는 작은 성당에서 깊은 영적인 체험을 했다. “로마를 몇 마일 남겨 두고 하루는 어느 성당에서 기도하는데, 그는 자기 영혼에 크나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체험했다. 그리고 성부께서 자기를 당신의 성자 그리스도와 함께 한자리에 있게 해주시는 환시를 선명히 보았으며, 성부께서 자기를 성자와 함께 있게 해주셨음을 추호도 의심할 바 없었다.”(「자서전」 95항)

이냐시오가 카르도넬 강가에서 했던 엄청난 신비체험에 비견되는 라 스토르타에서의 신비체험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 내용을 살펴보자. 이냐시오는 성부 하느님께서 자신을 당신의 아들과 함께 있게 해주셨다는 것을 확신했다. 성부께서 이냐시오에게 하신 “나는 로마에서 너희에게 호의를 베풀겠다(Ego ero vobis propitius Romae)”는 말씀이 그의 가슴에 새겨지게 된 것이다. 또한, 성부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성자에게 “나는 네(성자)가 이 사람(이냐시오)을 너(성자)의 종으로 삼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셨으며, 이냐시오는 이 말을 들었다. 성자 그리스도는 성부의 이 말에 순종하면서 이냐시오에게 “나(성자)는 네(이냐시오)가 우리(성부와 성자)에게 봉사하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냐시오의 이 체험은 매우 삼위일체적이다. 이로부터 7년 후 이냐시오는 자신이 작성한 「영적 일기」에서 이때의 체험을 회고하면서 “라 스토르타 체험은 바로 삼위일체 하느님으로부터 흘러나왔다”고 명시적으로 술회한다. 라 스토르타 체험은 이냐시오가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에서 교황께 봉사하기 위해 로마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을 하느님께서 승인하셨다는 확증이었다.

1537년 11월 중순 이냐시오는 로마에 도착했다. 이냐시오와 그의 동료들은 교황의 처분에 자신들을 맡겼으며, 교황은 예수회가 공식적으로 설립되기도 전에 여러 지방과 나라로 이냐시오의 동료들을 파견했다. 마침내 1540년 바오로 3세 교황은 공식적으로 ‘예수회’라는 수도 단체 설립을 승인했고, 이냐시오는 예수회 초대 총장이 됐다.

이즈음에 이냐시오는 여러 가지 일로 매우 바빴던 것으로 보인다. 총장 직무를 수행하는 데에 따르는 행정 업무를 하면서도 그는 다른 여러 가지 사도적 활동 또한 병행했다. 예를 들면, 초대 총장으로서 이냐시오는 나중에 합류한 초기 동료 중의 한 명인 쟝 코드류(Jean Codure)와 함께 「예수회 회헌」을 작성하도록 요청받았다. 그러나 1541년 쟝 코드류가 선종하고 나자 이냐시오는 온전히 혼자서 「예수회 회헌」 작성 임무를 마쳐야만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이에 더해, 날로 팽창해 가는 예수회에 더 많은 회원이 입회하게 돼 이들에 대한 양성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그리고 유럽이나 인도 등 이미 선교지에 나가 있는 회원들에게 편지를 보내며 그들과 연락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이냐시오는 젊은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쳤으며, 당시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성매매 여성을 위한 집인 ‘마르타의 집’을 열기도 했다. 또 개종한 유다인을 대상으로도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예수회에서 학교를 시작하게 되면서 학교 재정을 위한 후원금 마련에도 매우 커다란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자서전에서 보면 이냐시오는 언제 어디서든 하느님과 만날 수 있었다. “사부(이냐시오)의 신심, 쉽사리 하느님을 만나뵐 수 있는 덕성은 나날이 증대해 최근에는 당신 생애의 그 어느 때보다 절정에 달해 있었다. 어느 때, 어느 시각에라도 마음만 먹으면 사부께서 하느님을 만나뵙는 것이었다.”(「자서전」 99항) 일상의 삶을 살아가면서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기(Finding God in All Things)”가 가능한 상태였다.

순례자로 불린 이냐시오는 하느님을 더욱 섬기기 위한 열망으로 자신의 고향인 로욜라를 떠났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순례의 길에서 이냐시오는 “신뢰와 애정과 희망을 오직 하느님께만 두고”(「자서전」 35항) 자신의 모든 삶과 일 어디에서든 하느님과 함께하면서 하느님을 더욱 잘 섬기기 위해 끊임없이 순례의 길을 걸어 나아갔다. 그리고 1556년 7월 31일 65세를 일기로 병자성사도 받지 못한 채 선종한 이냐시오는 1609년 바오로 5세 교황에 의해 시복됐고, 1622년 3월 12일 그레고리오 15세 교황에 의해 그의 동료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아빌라의 데레사, 필립보 네리, 스페인의 농부 이시도르와 함께 시성됐다.

자신을 남김없이 하느님께 봉헌한 이냐시오 성인의 생애와 영성은 그가 작성한 ‘받으소서’라는 기도문 (「영신수련」 234번)과 더불어 ‘관대함을 구하는 기도’에 매우 잘 드러나 있다.

“사랑하옵는 주여, 제가 너그러워질 수 있도록 가르쳐 주소서. 당신을 섬기되 마땅히 받으실 만큼 섬기도록 가르쳐 주소서. 주되, 그 대가를 셈하지 아니하고, 싸우되, 상처받음을 마음에 두지 않으며, 땀 흘려 일하되, 휴식을 찾지 않게 하소서. 힘써 일하되 당신의 뜻을 행하고 있음을 아는 보수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도록 가르쳐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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