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영성
[예수회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성 이냐시오 로욜라 (10)
13개월 걸려 예루살렘에 도착했는데 떠나라니…
2017. 09. 17발행 [14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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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는 “우리 주 그리스도의 진정한 배필”이며 “우리의 거룩한 어머니”라는 성 이냐시오 로욜라의 표현에서 그의 교회관을 엿볼 수 있다. 출처=가톨릭굿뉴스



이냐시오는 만레사에서의 생활을 뒤로하고 본래 계획했던 예루살렘을 향해 순례를 계속했다. 예루살렘 순례가 이냐시오에 어떤 영향을 줬을까? 무엇보다도 이냐시오는 예루살렘 순례길을 통해 실제적 가난의 상태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에서 오는 기쁨을 느꼈다. 두 번째로 이냐시오의 예루살렘 순례는 이냐시오가 「영신수련」을 집필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됐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당신의 생애를 살아오셨던 예루살렘을 직접 본 경험은 이냐시오에게 특히 「영신수련」에 나오는 복음 관상(관조 묵상)에 도움을 줬다. 세 번째로 인간이신 예수님께서 살아오셨던 땅에 직접 가 봄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친밀감을 더욱 깊이 느끼게 됐다. 네 번째로 예루살렘 순례는 이냐시오의 식별 지평이 더욱 확장되는 계기가 됐다. 이는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미처 예기치 못한 사건을 통해서 일어났다. 예루살렘에 살면서 영혼을 돕고자 하는 열망을 지녔던 이냐시오는 결국 로욜라를 떠난 지 약 13개월 만에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 열망은 실현될 수 없었다. 당시 성지를 책임지고 있던 프란치스코회 관구장 신부는 누구든지 성지에 남게 하거나 떠나게 할 수 있는 권한을 교황청으로부터 부여받았다. 그는 이 권한으로 이냐시오가 예루살렘에 머무는 것을 금했다. 이 사건은 교황청의 어떤 결정이나 지침이 이냐시오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첫 번째 사건이었다. 이냐시오는 예루살렘에 머물겠다고 식별했고 이 식별의 결과에 따라 행동했지만, 이 식별이 교회의 권위와 충돌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이냐시오는 이 충돌을 식별하게 됐고, 그 결과 주님의 뜻은 그가 예루살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 그래서 이냐시오는 자신의 식별에 따른 선택을 고집하기보다는 프란치스코회 관구장의 명령에 순명함으로써 이 충돌을 해소했다. 이냐시오는 교회의 권위를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이 자신의 개인적 식별보다 우선순위를 갖는다는 것을 깨닫고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 사건은 이냐시오의 주관적 식별이 그가 처한 객관적 현실과 만나게 된 첫 번째 경우였으며, 이를 통해 이냐시오는 개인의 식별에는 항상 객관적 현실이 포함돼야 한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됐다. 이 체험은 이냐시오적 식별에 한 가지 원리를 제공한다. 즉 개인의 식별은 교회의 합법적 권위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순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체험은 「영신수련」에도 스며들었다. “우리가 선택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은 그 자체로 중립적이거나 선한 것이어야 하며 거룩한 어머니이신 교계 교회 안에서 도움이 되어야지 악한 일이나 교회에 반대되는 일이어서는 안된다.” (「영신수련」 170번)

여기에서 이냐시오의 교회관을 간략히 살펴보자. 이냐시오의 교회관은 특히 「영신수련」에 표현된 두 개의 여성적인 이미지를 통해 엿볼 수 있다. “모든 판단을 버리고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 주 그리스도의 진정한 배필이며 우리의 거룩한 어머니이신 교계 교회에 기꺼이, 즉시 순명할 마음을 지녀야 한다.”(「영신수련」 353번) 교회는, 특히 교계 교회는 “우리 주 그리스도의 진정한 배필”이며, “우리의 거룩한 어머니”이다.

이냐시오의 이 말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먼저 전자를 살펴보자. 이냐시오에게 배필로서의 교회는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일치를 구현한다. 이냐시오는 “같은 영(el mismo espritu,「영신수련」 365번, 성령을 가리킨다)”이 교회와 자신 안에서 일한다고 인식했다. 그러므로 교회를 특히 교계 교회(hierachical church)의 결정을 따른다는 것은 자신을 교회와 일치시킨다는 것을 뜻하며, 교회는 성령으로부터 생명과 인도를 받기 때문에 교회와의 일치를 통해 우리는 성령과 일치하게 된다. 이 교회는 세상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로 이끈다. 이냐시오의 이러한 관점을 휴고 라너는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참된 영은 교계 교회에 순명하도록 재촉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성부와 일치할 수 없으며, 주교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와의 일치는 없기 때문이다.”

이냐시오에게 어머니로서의 교회는 모든 믿는 이들 사이의 일치를 구현한다. 교회는 성령이 체화되는 곳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성령으로부터 어떤 종류의 초자연적 선물을 받건 간에 이 선물들이 믿을만한 것이라고 확증하는 것은 바로 교회다. 이냐시오는 모든 신비주의를 교회에 종속시키며, 영적 경험의 해석을 교계 교회에 위탁한다. 교계 교회와의 이 일치는 ‘하느님 백성’ 사이에서의 일치를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교계 교회와 일치되지 않을 때 결국은 교회가 분열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머니인 교회를 통해 양육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9월 3일 일반 알현 때 한 강론에서 “교회는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나 혼자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 즉 교회의 한가운데에서 신앙 안에서 태어나고 양육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면에서 교회는 참된 어머니이며 우리의 어머니로서 우리를 양육한다.

예루살렘에서 자기 뜻보다는 교계 교회에 순명하기로 한 이냐시오의 선택이 의미하는 바는 성령께서는 이냐시오가 생각하는 지평보다 더 넓은 지평에서 일하고 계시다는 것에 대한 신뢰이며 “같은 영”이 바로 그를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과의 일치로 이끄신다는 믿음에 대한 실제적인 고백이기도 하다.

교계 교회의 결정에 순명한 이냐시오는 순례의 종착지라고 생각했던 예루살렘에 더는 머물 수 없게 됐다. 이냐시오는 자신의 미래에 관해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순례자는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일이 하느님 뜻이 아님을 깨달은 뒤부터 자기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내 영혼들을 도우려면 얼마 동안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돌리고 드디어 바르셀로나에 가기로 작정했다.” (「자서전」 50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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