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영성
[예수회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성 이냐시오 로욜라 (5)
성모를 모욕한 무어인 쫓다 갈림길에 서다
2017. 08. 13발행 [14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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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냐시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시각으로 자신과 세상을 보고 세상일의 선과 악을 구분하게 됐지만 아직 그 깨달음을 행동으로 이어가지 못했다. 사진은 성 이냐시오 로욜라 생가에 있는 예수상.



「그리스도의 생애」의 또 다른 단면을 살펴보도록 하자. 열한 개의 요점으로 구성된 이 책 제1장의 제목은 ‘하느님이시며 영원하신 그리스도의 탄생’이다. 이 장은 요한복음의 서문으로 불리기도 하는 요한복음 1장 1-5절의 주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성자는 언제나 성부 안에 계시고, 성부 또한 그러하시다. 성자는 성부와 본질이 같으신 분이며, 성부와 함께 영원으로부터 계신 분으로서 성부와 함께 모든 것을 창조하셨으며, 성령은 이 두 위격과 함께 계셨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업이 나뉠 수 없는 것이라고 진술한다. 루돌프는 이 장을 삼위일체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로 끝맺는다. 이 기도는 앞서 상술한 삼위일체 하느님의 교의에 대한 가르침을 다시 되새김과 동시에 독자들을 매우 정감적으로 이끈다.

“주님이신 하느님이시며 전능하신 성부여, 모든 세대에 앞서 당신께서는 말로써는 표현할 수 없는 방식으로 당신과 함께 영원하시며 동등하시고 본질이 같으신 성자를 낳으셨나이다. 성자와 성령과 함께, 당신은 모든 것, 즉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창조하셨으며, 그들 중에 당신께서는 이 가난한 죄인인 저를 창조하셨나이다. 당신을 경배합니다. 당신을 찬양합니다. 당신께 영광을 드립니다. 저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저를 내치지 마시옵소서. 당신의 거룩한 이름으로 저를 도우소서. 당신의 오른팔을 당신 손이 이루신 일에 뻗치소서. 인간의 약함을 도우러 와 주소서. 저를 만드신 당신, 저의 악덕으로 말미암아 제가 미처 행하지 못한 것들을 다시 행하게 하소서. 저를 지으신 당신, 타락함으로부터 저를 새롭게 하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자비에 따라 저의 영혼을 구하소서. 아멘.”

열한 개의 요점으로 구성된 2장에서, 루돌프는 ‘인간의 구원과 마리아의 탄생’에 대해서 다룬다. 이 장은 루치펠과 아담과 하와의 타락이라는 주제로 시작하고, 종내에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협력을 통하여 강생이 일어났다는 것을 다룬다. 그래서 루돌프는 성자의 강생을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 안에 위치시킨다. 이러한 삼위일체 하느님의 구원 경륜은 이냐시오에게 커다란 영감을 주었다. 「영신수련」이 매우 그리스도 중심적인 관점으로 저술되었지만, 「영신수련」 둘째 주간의 ‘강생 관상’에서 대표적으로 제시된 것처럼, 이 관점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구원 경륜의 전망 안에서 펼쳐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냐시오가 읽은 「금빛 전설」과 「그리스도의 생애」는 이냐시오의 삶에 어떻게 더욱더 구체적으로 영향을 주었을까?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

이 두 권의 책을 읽기 전까지 이냐시오의 삶의 관점은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에게 주어진 여러 뛰어난 재능들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발휘하기보다는 세상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자신의 야심을 충족시키기 위하는 방향으로만 자신의 삶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이냐시오는 자신이 지금까지 추구해 오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의 관점으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기보다는 그리스도의 삶의 관점으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묘사된 그리스도는 성부의 구원 계획을 이행하는 분이었다. 이냐시오는 그리스도의 삶의 모습처럼 자신의 삶을 삼위일체 하느님의 구원 경륜의 지평 안에서 바라보며 그리스도처럼 살아가고자 하였다. 이에 더하여 「금빛 전설」에 등장하는 성인들의 영웅적인 삶의 이야기는 이냐시오로 하여금 실제적인 행동으로 그리스도를 본받고 따르도록 하는 구체적인 모델이 되었다.



영들의 식별(Discernment of Spirits)에 대한 기초 지식 습득

이 책들은 이냐시오로 하여금 영들의 식별에 관하여 눈을 뜨는 데에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이냐시오는 이렇게 회상한다. “자기가 성취하고 싶은 세속적인 업적에 관한 공상과 머리에 떠오르는 하느님을 위한 행업에 대한 생각이 그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하나 다른 점이 있었다. 세상사를 공상할 때에는 당장에는 매우 재미가 있었지만, 얼마 지난 뒤에 곧 싫증을 느껴 생각을 떨치고 나면 무엇인가 만족하지 못하고 황폐해진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가는 일, 맨발로 걷고 초근목피로 연명해 가는 성인전에서 본 고행을 모조리 겪는다고 상상을 해보면 위안을 느낄 뿐만 아니라, 생각을 끝낸 다음에도 흡족하고 행복한 여운을 맛보는 것이었다.”(「자서전」 7~8항)

세속적인 것을 생각할 때에 매우 기쁘기도 하였지만, 그 생각 후에 느낀 ‘뒷맛’은 무엇인가 건조하고 불만족스러웠다. 이와 반대로 성인들의 수덕적인 삶을 생각한 후에 느낀 ‘뒷맛’은 흡족하고 행복한 마음을 자아내는 위로였다.

이냐시오는 이 두 가지 생각의 ‘뒷맛’을 구별하게 된 것이다. 서서히 이냐시오는 자신 안에 있는 두 개의 다른 내적 움직임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 결과로 이냐시오의 내적인 눈이 열리면서 이냐시오는 하나는 ‘악마에게서 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해에 바탕을 두고 이냐시오는 이제 행동을 취한다. 즉.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은 받아들이고, 악마에게서 온 것은 거부하는 것이다. 이냐시오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성인들이 했었던 것을 자신도 행하겠노라고 다짐한다. 이것이 바로 이냐시오의 일생에서 하느님의 사정에 관하여 매우 깊이 있게 생각하고 성찰한 첫 번째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이냐시오가 식별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한 것은 아니었다. 일례로, 이냐시오가 로욜라로 떠나 몬세라트로 나귀를 타고 순례를 떠날 때에 한 무어인이 성모님에 대한 불경스러운 말을 하는 것에 대해 변호하였지만, 무엇인가 미진한 느낌이 들고 심지어는 그 무어인에 대하여 분노의 감정이 치솟아 올라 다시 길을 되돌려 그 무어인을 찾아가 그를 단검으로 찌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고 한다. 이냐시오는 이 욕구에 움직여 그 무어인을 쫓아 다시 길을 되돌아간다. 그러나 갈라진 길을 만나게 되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고 결국 나귀가 가는 대로 맡겨 두었다. 만일 나귀가 무어인이 갔던 길로 인도하면 그를 패줄 작정이었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둘 심산이었다. 다행히도 나귀는 무어인이 갔던 길로 가지 않았다. 즉 이때까지만 해도 이냐시오는 주님을 섬기고자 하는 열망만큼은 대단히 강했지만, 아직은 그 열망이 분별 있는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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