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한국엔 갑질하는 창업주, 미국엔 가치 사업에 뛰어든 창업주
도미노 피자의 창업주 톰 모나한, 가톨릭 학교 설립·생명운동 등 ‘하느님 사업’에 매진
2017. 07. 16발행 [14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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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우한 어린 시절 자신에게 신앙과 용기를 불어넣어준 베라르다 수녀를 만난 톰 모나한의 모습. 자서전(왼쪽)에 실린 사진.

 


국내 외식 업체 프랜차이즈 창업주들이 성추행과 ‘갑질’ 논란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하지만 피자 사업으로 번 돈을 하느님 사업에 쏟아부은 프랜차이즈 창업주도 있다. 피자 업계 세계 2위인 도미노 피자의 창업주 톰 모나한(80)이다.

미국에서 모나한은 ‘피자’와 ‘가톨릭’ 두 단어로 다 설명이 되는 유명 인사다. 1980년대 ‘아베 마리아 재단’을 설립해 교육과 자선사업을 시작하더니, 지금은 프랜차이즈 지분을 정리해 가톨릭 관련 사업에 ‘올인’하고 있다.

그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여섯 살 때 동생과 함께 가톨릭 교회가 운영하는 성 요셉 어린이집에 맡겨졌다. 그곳에서 수녀들을 통해 가톨릭 신앙을 알았다. 하지만 반항 기질이 다분한 골칫덩어리였다. 사제가 되고 싶은 마음에 신학교에 들어간 적도 있지만 얼마 안 가 쫓겨났다.

그래도 방황하는 그를 잡아 준 것은 신앙밖에 없었다. 특히 자신을 특별히 사랑해 줬던 베라르다 수녀가 “어떤 일이 있어도 하느님은 너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고 해준 격려를 떠올리면서 다시 일어서곤 했다.

도미노 피자 신화는 1960년 미시간 주에서 동생과 함께 창업 자금 500달러를 빌려 인수한 허름한 피자 가게에서 시작됐다. 그 가게 이름이 ‘도미닉스’(DomiNick’s)였다. 도미노 피자가 단박에 세계 2위의 피자 프랜차이즈로 올라선 비결은 30분 배달 서비스였다. 당시로선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그의 사업은 1980년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미국 피자 배달 서비스 시장 점유율이 54%까지 치솟고, 해외 100여 개국에 지사를 세웠다. 프로 야구단 디트로이트 타이거를 인수해 대박이 나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가 탄탄대로만 걸은 ‘바른 생활’ 신앙인은 아니다. 소송에 휘말려 파산 직전까지 간 적도 있고, 재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초호화 요트와 헬리콥터 등을 사들이는 데 몰두하기도 했다.

그는 C.S. 루이스가 쓴 신앙 서적을 읽고 회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 순간 “장난감들을 모두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장난감이란 프로 야구단, 초호화 요트, 고급 맨션 건축 사업 등을 가리켰다. 도미노 지분도 1998년 10억 달러(1조 1500억 원)에 넘겼다. 그는 그 결심을 “억만장자의 청빈 선언”이라고 말했다.

이후 하느님 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그전에도 교회 지원과 자선 사업은 꾸준히 해왔다. 누가 돈에 대한 가치관을 물어오면 “돈은 악마가 아니다. 그걸로 성경을 살 수 있고, 성당을 지을 수 있고, 병원도 세울 수 있다”고 대답하곤 했다.

그는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인근에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농장을 거금을 주고 매입했다. 거기에 아베 마리아 대학을 세웠다. 아베 마리아 방송국과 초등학교, 중학교도 열었다. 복음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마리아의 도시를 건설하는 게 목표다. 하지만 2004년 혼전 섹스ㆍ피임ㆍ낙태ㆍ포르노 없는 도시를 선언해 인권 단체들의 반발을 초래하기도 했다. 지금도 적지 않은 돈을 쏟아부으며 도시를 완성하고 있다.

모나한은 미국의 보수적 백인 가톨릭을 대표한다. 특히 생명운동에 적극적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발표한 새 건강보험 개혁법에 피임이 보험 항목에 포함되자 연방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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