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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받는 교회를 도웁시다] 파키스탄 (2) 차별과 박해(Ⅱ)

[고통받는 교회를 도웁시다] 파키스탄 (2) 차별과 박해(Ⅱ)

종교적 편견·증오가 야기한 ‘21세기 순교사’가 펼쳐지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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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8 발행 [1419호]


파키스탄 교회에서 7년째 종교 간 대화위원회에 몸담고 있는 리아즈 고살 신부와 차를 타고 가다가 휴게소에 들렀다.

TV에서 영국 맨체스터 공연장 폭탄 테러 뉴스가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극단주의 무장 세력을 추종하는 이슬람 청년들의 눈먼 증오심이 공연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부상자들이 피범벅이 된 채 울부짖는 장면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파키스탄 국민은 저 사건을 어떻게 보느냐”고 고살 신부에게 물었다.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통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대다수 국민이 영국과 미국 등 서구 국가들을 적으로 생각한다.”


글·사진=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 한 신자가 ‘파키스탄의 루르드’라 불리는 마리아마바드(마리아의 도시) 성지에서 촛불을 켜고 있다.

▲ 라호르대교구장 세바스찬 쇼우 대주교가 사무실 캐비넷에 붙여놓은 사바즈 바티 장관의 사진을 가리키고 있다. “우리는 당신의 순교를 통해 용기와 희망을 얻습니다”라는 문구는 파키스탄 교회의 신앙 고백이다.


‘눈먼 증오심’의 뿌리를 봐야


우리는 서구 세계의 눈으로 이슬람을 보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맨체스터 테러도 극단주의자들의 광기라고 맹비난할 뿐 그 원인이나 실체에 대한 고민은 피하려 한다. 그들의 폭력은 용납될 수 없지만, 그 증오심의 뿌리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야 이슬람 세계에서 고통받는 그리스도인을 이해할 수 있다.

십자군 전쟁 이후 크고 작은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슬람과 서구 사회는 적어도 19세기까지는 오늘날과 같은 적대적 관계가 아니었다. 우리가 수니파 시아파 구분하지 않고 이슬람을 중동 종교로 보듯이 무슬림들은 가톨릭 개신교 가리지 않고 그리스도교를 서구 종교로 간주한다. 따라서 무슬림과 그리스도인은 1300년 동안 그런대로 평화롭게 공존했다고 말할 수 있다.

라호르대교구의 한 원로 사목자는 “멀리 갈 것도 없이 내가 사목 현장에 있을 때만 해도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관계가 이 정도는 아니었다”며 “극단주의자는 소수이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항상 크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갈등은 서구 열강, 특히 영국이 제1차 세계대전 후 중동에 친서방 국가들을 인위적으로 세우면서 시작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이 몇몇 이슬람 국가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벌인 테러와의 전쟁은 불더미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됐다. 이슬람 정치 지도자들이 정치적 이익을 위해, 때로는 강력한 신정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종교를 이용한 점도 가볍게 볼 수 없다.

그리스도인을 억누르는 반그리스도교 정서는 반서방 제국주의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테러리즘은 종교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 궁지에 몰린 이들의 정치적 표현 수단일 뿐이다. 폭력을 정당화하고, 지지를 얻기 위해 신의 이름을 외칠 따름이다.

익명을 요구한 A 신부는 전국에 1만 개가 넘는 이슬람 사립학교 마드라사(Madrassa)를 극단주의 온상으로 지목했다. 마드라사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면서 편향된 이슬람 사상을 주입한다. A 신부는 “일부 학교들이 테러범을 영웅으로 칭송하고, 힌두인이나 그리스도인과 대화하는 것은 수치라고 가르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차별과 폭력에 짓눌린 그리스도인들

파키스탄 교회는 가난보다 차별과 폭력으로 인한 고통이 더 크다. 근본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인을 서슴없이 배척하고 모욕한다. 마호메트의 이름을 더럽히는 언행은 죽음으로도 씻을 수 없는 죄악으로 간주하고 반발한다. 타 종교인 암살과 그리스도인 마을 방화가 횡행하는 이유다.

대표적인 희생자가 2009년 동네 아낙네들과 말싸움을 하다 신성 모독죄로 체포돼 사형수가 된 가톨릭 여성 아시아 비비(Asia Bibi)다.

사람들 눈을 피해 그의 남편과 두 딸을 만났다. 하지만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낫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외국 언론과 인권단체들이 이 사건을 집중 조명하면서 석방 압력을 가하는 바람에 형 집행과 석방 어느 쪽도 쉽지 않은 상황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사법부가 석방 결정을 내릴 경우 이슬람주의자들의 반발과 동요는 걷잡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그의 석방을 호소하던 정치인 두 명이 살해됐다. 펀자브 지방의 살만 타시르 주지사와 소수인종(종교)부 사바즈 바티 장관이다.

비비의 둘째 딸이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엄마가 개종을 선언하면 밖에 나가 새살림을 차리게 해주겠다는 제안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신앙을 버리지 않을 분이다. 그런 엄마가 자랑스럽다.”

시내 모처에서 비비 가족을 보호하고 있는 교구 정평위 관계자는 “교도소는 외부 물품 반입 금지이기 때문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2년 전 비비에게 전해 주라고 한 묵주를 여태껏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사바즈 바티 장관도 기억해야 할 인물이다. 인권과 종교 자유 증진을 소명으로 여기고 살아온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자신도 언젠가 광기의 희생자가 될 것을 예견했기에 독신으로 살면서 약자 편을 들었다. 파키스탄 교회는 그를 순교자로 인정하고 시복시성을 추진 중이다.

성당에서 만난 그의 누나는 “동생은 하느님의 일을 하다 쓰러졌다”며 “동생의 안식과 파키스탄 교회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편견과 증오의 희생 제물이 된 동생을 떠올리는 늙은 누나의 얼굴이 무척 슬퍼 보였다.



맨손으로 정의 위해 싸우는 사람들- 라호르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 유사프(오른쪽) 신부가 김수환 추기경 예방 때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고인을 ‘정의로운 목자’라고 소개하고 있다.


라호르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의 하루하루는 ‘악전고투’라는 말이 딱 맞다. 경찰서와 법원으로 뛰어다니며 종교적 편견의 희생자들 변호하랴, 교육자료 만들어 배송하랴 정신이 없다. 몇 안 되는 직원들은 언제 어디서 테러를 당할지 모른다. 목숨 걸고 일한다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그러나 근본주의자들의 위협보다 바닥난 통장 잔액을 더 힘들어한다. 꼭 필요한 사업이지만 여력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다 단념하는 일이 허다하다.

무일푼인 피해자가 나타나면 변호사 비용을 구하러 다닌다. 수감된 그리스도인들의 옥바라지와 재판도 거들어야 한다. 최근 초중고교 교과서에서 종교적 편견을 조장하는 부분을 찾아내 시정을 촉구하는 일을 시작했다. 출판 비용을 마련하면 이를 바로잡아 알리는 책자도 찍어낼 계획이다.

아이들에게 A는 ‘Apple’, B는 ‘Boat’하는 식으로 영어 알파벳을 가르치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J에 ‘Jihad(성전)’라는 단어를 달아놓은 책이 많다. 이슬람 신앙을 수호하기 위해 벌이는 성스러운 전쟁을 뜻하는 단어다. 과학책도 “산소와 수소가 결합하면 알라의 뜻에 따라 물이 된다”는 식으로 서술한다.

1990년대 말 김수환 추기경이 파키스탄 사형수 석방 노력을 기울일 때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 정평위 담당 유사프 신부는 “우리는 맨손으로 정의와 평화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라며 “한국 신자들이 응원해 주면 할 수 있고, 또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너무나 많다”고 말했다.



    성금 계좌 : 우리은행 1005-303-232450 (예금주 사단법인 에이드투더처치인니드)


고통받는 교회 돕기(Aid to the Church in Need)는 어려움을 겪는 가톨릭교회를 지원하는 교황청 직속 단체로, 한국 교회도 1960, 70년대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2015년 아시아 최초로 한국 지부(이사장 염수정 추기경)를 개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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