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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받는 교회를 도웁시다] 파키스탄 (1) 차별과 박해Ⅰ

[고통받는 교회를 도웁시다] 파키스탄 (1) 차별과 박해Ⅰ

테러 공포가 일상인 신자들… 믿음 있어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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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1 발행 [1418호]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가톨릭평화신문 공동 기획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지금 많이 아프다. 이슬람 영토에서는 차별과 박해에 시달린다. 그리스도인 희생 소식이 들릴 때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로마 박해시대보다 순교자가 더 많다”고 통탄한다. 아프리카와 남미 교회는 찌든 가난 속에서 신앙 형제들의 도움을 호소한다.  교황청 산하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와 함께 차별과 박해, 가난에 신음하는 교회를 찾아간다. 이 기획은 ACN 총재 마우로 피아첸차 추기경의 간절한 호소에서 영감을 얻었다. “교회는 한 몸이기에 지체 한 군데가 아프다는 것은 결국 전체가 아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외국 교회의 많은 도움을 받아 발전한 한국 교회가 어려움을 겪는 다른 나라 교회를 위해 나서주십시오.”(2015년 방한 인터뷰)   첫 순서로 차별과 폭력에 굴하지 않고 신앙을 증언하는 파키스탄 교회를 간다.


글·사진=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 몸을 던져 폭탄 테러를 막은 ‘성 요한 성당의 의인’ 아카시 바시르의 묘. 맨 오른쪽 청년 스칸다르도 테러 당시 한쪽 눈을 잃고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다쳤다.

▲ 아카시 바시르의 부모가 아들의 사진이 실린 잡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 테러 후 폭발로 날아간 성당 대문을 ACN의 지원으로 다시 만들었다.


그들의 얼굴에서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슬픔은 찾아볼 수 없다. 부모는 자식을 잃으면 슬픔의 강을 건너가 화석처럼 굳어버린다는데, 아카시 바시르(Akash Bashir)의 부모는 그렇지 않다. 라호르 변두리에 있는 그리스도인 마을 요한나바드에서 만난 아버지는 “아들이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고 죽었으니까 천국에 갔을 것이다. 슬픔은 신앙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한다.

2015년 3월 15일, 20살 청년 아카시는 평소처럼 성 요한 성당 문을 지키고 있었다. 성당 청년들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에 대비해 주일이면 새벽부터 나와 경비 봉사를 한다. 그날 미사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낯선 사람이 다가오더니 총을 쏘며 성당에 진입하려고 했다. 테러범임을 직감한 아카시는 달려가서 괴한의 허리를 꽉 껴안고 저지했다. 테러범은 이미 문 안으로 한 발을 들여놓은 상황이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두 사람은 씨름하듯 서로 밀면서 소리쳤다.

“놔, 폭탄을 갖고 있어. 너도 죽고 싶어?”
“죽어도 못 놔. 한 발짝도 못 들어가!”

두 사람은 엉켜서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그 순간 테러범이 폭탄 조끼를 터뜨렸다. 성당 안에서는 1500여 명이 미사를 봉헌하고 있었다. 인근 성공회 성당에서도 폭발음이 들렸다. 이날 두 성당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테러로 17명이 사망하고, 7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성 요한 성당은 아카시의 희생 덕에 사망자가 2명에 그칠 수 있었다.

아들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카시의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꿈을 꿨다. 아카시가 무덤가에서 자고 있길래, 일어나라고 했더니 일어나더라. 내가 옷에 묻은 흙을 털어주면서 ‘그동안 어디 있었냐?’고 물으니까 ‘아버지 아브라함의 품에 있었다’고 말했다.”

‘성 요한 성당의 의인’ 무덤은 성당 근처에 있다. 신자들은 최대한 정성 들여 대리석으로 묘를 단장했다. 그리고 아카시가 부활의 영광을 누리길 기원하며 성경 한 구절을 돌판에 새겼다.

“예수님에 대한 증언과 하느님의 말씀 때문에 목이 잘린 이들의 영혼을 보았습니다. … 그들은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다스렸습니다.”(묵시 20,4)

요한나바드는 가톨릭과 개신교 신자 15만 명이 모여 사는 파키스탄의 최대 그리스도인 밀집 지역이다. 이날 테러 발생 직후 그리스도인들이 거리로 뛰쳐나가 항의 시위를 벌였다. 현장에서 많은 그리스도인이 경찰에 체포됐는데, 2년 넘도록 42명이 풀려나지 못하고 있다. 무슬림 2명에게 폭력을 가한 죄목이다

이들의 석방 운동을 벌이는 라호르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엠마누엘 유사프 신부는 “상대 측 변호사가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람은 풀려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지만, 지금까지 개종자는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파키스탄은 2억 인구의 95%가 이슬람을 믿는다.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이슬람 인구가 많다. 그리스도인은 2%, 가톨릭은 0.65%(130만 명)다. 이 ‘소수의 양 떼’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흔하디흔한 일상이다. 단적인 예로, 그리스도인이 아이스크림을 팔면 “청소나 해서 먹고 사는 인간들이 더럽게 먹을 것을 판다”며 손가락질하는 지경이다.

몇 년 새 발생한 충격적 사건은 다 열거하기가 힘들다. 그리스도인 가운데 정부 내각에 유일하게 등용된 사바즈 바티 장관은 신성모독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가톨릭 여성의 구명 운동을 벌이다 암살당했다. 지난해 예수 부활 대축일에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공원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해 72명이 숨졌다. 이슬람 경전 코란 훼손 혐의를 받은 부부는 폭도로 돌변한 주민들에 의해 벽돌공장 불가마에서 화형당했다. 파키스탄은 코란을 훼손한 자는 종신형, 예언자 마호메트의 이름을 모독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 이 신성모독죄(형법 제295조)는 무슬림까지 옥죈다.

청년사목을 담당하는 자한제브 신부가 벽돌공장 화형 테러 사건(2014년) 직후 다급했던 상황을 회고했다.

“청년들이 울분을 토하며 거리로 몰려나가는 것을 간신히 막았다. 더 큰 피해가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하느님은 자비하신 분이다, 그리스도인은 초대 교회 때부터 많은 피를 흘렸다. 그들이 흘린 피가 우리 신앙의 씨앗이 됐다’며 눈물로 설득했다.”

라호르대교구장 세바스찬 쇼우 대주교는 “우리는 ‘2F 정신’으로 살아간다”고 말했다. 두려워하지(Fear) 않고, 싸우지(Fight) 않는 것이다.



새카맣게 탄 마을, 아이들만이 희망

빈민촌 사목자 조셉 샤자드 신부

 

▲ 파키스탄의 그리스도인 빈민촌 조셉 콜로니의 아이들.

▲ 샤자드 신부.

 

라호르 시내 그리스도인 빈민촌 조셉 콜로니(Joseph Colony)에서 사목하는 조셉 샤자드 신부가 한국 교회에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300가구가 살던 이 마을은 2013년 3월 무슬림들이 불을 질러 새카맣게 타버렸다. 사건은 친구 사이였던 그리스도인과 무슬림 청년이 술자리에서 벌인 사소한 언쟁에서 촉발됐다. 무슬림 청년이 이슬람 지도자에게 달려가 그리스도인 친구를 신성모독죄로 고발하자, 그 일대 성난 주민들이 몰려와 마을을 불태웠다. 주택 180가구와 교회 2개가 전소됐다. 마을이 불타는 광경은 TV에 생중계됐다.  
 

그때 피란 갔던 주민들 가운데 절반 정도가 잿더미로 변한 마을로 돌아왔다. 대부분 날품팔이 노동자다. 그나마 시내에 살아야 일거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셉 신부는 “주민들은 짐꾼과 청소부, 식당 설거지 일을 하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산다”며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미사 집전 외에 아무것도 없다”고 털어놨다.

 그의 소망은 방치된 아이들을 위해 작은 학교를 여는 것이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20%도 안 된다. 공립학교에서는 그리스도인도 이슬람 교리를 외워야 하고, 툭하면 ‘왕따’를 당한다.

그는 주민들과 머리를 맞대고 “아이들 교육이 먼저냐, 입에 풀칠하는 게 먼저냐” 토론하지만 결론은 없다. 그는 “학교를 여는 게 여의치 않으면 우선 똑똑한 아이들을 뽑아 학비라도 대고 싶다”고 말했다.




 



성금 계좌 : 우리은행 1005-303-232450
(예금주 사단법인 에이드투더처치인니드)

고통받는 교회 돕기(Aid to the Church in Need)는 어려움을 겪는 가톨릭교회를 지원하는 교황청 직속 단체로, 한국 교회도 1960, 70년대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2015년 아시아 최초로 한국 지부(이사장 염수정 추기경)를 개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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