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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사목자를 찾아서] (1) 정진석 추기경

[원로 사목자를 찾아서] (1) 정진석 추기경

어떤 절망 속에서도 하느님 사랑 믿으며 희망 가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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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1 발행 [1418호]
▲ 정진석 추기경



교회와 사회를 위해 평생을 바친 원로 사제들을 만나는 ‘원로 사목자를 찾아서’ 연재를 시작한다. 교회의 큰 어른인 원로 사제들이 주님과 함께, 그리고 신자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지낸 이야기를 들어보고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지혜를 청해본다.




“건강에 큰 문제 없이 살고 있어

기도 아끼지 않은 교우들 덕분”

 

새벽 5시 일어나 기도와 미사

방문 손님 만나고 집필과 산책

 

대통령과 정치인들

모세 닮은 관용의 지도자 되길

 

대화할 때 좋은 점 말하는 것

행복의 첫걸음



2일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 신학대학은 싱그러운 녹음이 짙었다. 미세먼지 없는 하늘은 얼마나 맑고 푸른지,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화창한 날씨 때문이었을까. 2012년 사목 일선에서 물러난 후 신학대학 강성삼관에서 지내는 정진석(전 서울대교구장) 추기경을 만나러 가는 길은 발걸음이 가벼웠다. 정 추기경(86)은 신학대학 교정이 주는 평화로움만큼이나 온화한 미소로 기자를 반겼다.

 

정 추기경은 지난해 12월 자신의 니콜라오 영명 축일 미사 때 성공 확률이 10%도 되지 않는 위험한 수술을 무사히 받고 깨어났다고 밝혀 참석자들을 깜짝 놀라게 한 적이 있다. 먼저 건강을 묻자 정 추기경은 “건강은 내 나이 또래와 비슷한 정도로, 큰 문제 없이 살고 있다”면서 “저를 위해 기도를 아끼지 않는 교우들 덕분”이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정 추기경은 젊은 시절부터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유지해 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새벽 5시쯤 일어나 7시 반에 같이 지내는 신부들과 미사를 드리고 8시에는 아침 식사를 한다. 이후 숙소와 붙어 있는 집무실로 나와 손님을 만나거나 글을 쓴다. 낮 기도와 점심 식사 후 오후 일과도 오전과 비슷하다.

 

▲ 정진석 추기경이 숙소 경당에서 기도하고 있다.

▲ 정 추기경이 집무실에서 어린이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정 추기경이 집필 원고의 교정을 보고 있다.

오후에 빼놓지 않는 일정이 있다면 신학대학 구내를 한 시간가량 걷는 것. 산책은 평소 습관이기도 하지만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이 움직여야 한다는 의사의 강력한 권유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저녁 기도와 식사 후에는 묵주기도 20단을 꼭 바친다. 그리고 아무리 늦어도 9시 반 이전에는 잠자리에 든다. 텔레비전은 필요할 때만 잠시 보는 정도다.

 

정 추기경은 “잠에서 깨어나 미사 드릴 때까지 새벽 시간이 하느님을 가장 온전히 만나는 순간”이라며 “이 시간에 하느님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책도 쓰고 있다”고 일과를 소개했다.

 

정 추기경과 평생을 함께해온 오랜 친구로 집필을 빼놓을 수 없다. 올해 영명 축일에 맞춰 펴낼 책은 「나를 이끄시는 빛」(가제)이다.

 

“교구장으로 일하면서 모든 것이 꽉 막혔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성경에 매달렸고 성경 속 인물들에게서 길을 찾았습니다. 성경에는 내가 따라야 할 훌륭한 인물이 참 많습니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결점을 가진 분들 또한 적지 않죠. 「나를 이끄시는 빛」은 그런 모든 이들에게서 얻은 인생의 교훈을 묵상한 책입니다. 각 장의 말미에는 해당 인물과 연관된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을 한 단락씩 실었습니다. 성경과 공의회 문헌을 연결시켜 함께 묵상하도록 이끄는 시도는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허영엽(서울대교구 홍보국장) 신부가 정 추기경의 구술과 자료를 바탕으로 본지에 연재하고 있는 회고록 ‘추기경 정진석’을 읽는 소회가 궁금했다. 정 추기경은 자신의 일대기를 읽으면서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을 준비한다고 했다.

 

“회고록을 읽다 보면 내 무덤 앞에 모인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다른 사람들 눈에 비친 제 모습이랄까요. 죽은 다음의 나를 미리 보는 것 같습니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차분한 심정으로 일생을 돌아보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이상할 정도로 죽음이 두렵거나 아쉽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감정적 동요도 없습니다. 회고록은 제가 생을 정리하고 죽음을 잘 준비하도록 돕는 좋은 벗입니다. 수고를 아끼지 않는 허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아쉬웠던 순간과 보람 있었던 순간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반복하는 것이 사람의 일생이다. 늘 나쁠 수만도, 늘 좋을 수만도 없다. 정 추기경은 희비가 함께한 대표적인 경험으로 1998년 청주성모병원 건립을 꼽았다.

 

“청주교구 한 해 예산의 10배나 되는 100억 원을 빌려 병원을 인수했는데, 덜컥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됐습니다. 다른 곳으로 떠날 줄 알았으면 그런 큰일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당시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님께 대책을 세울 때까지 부임 일정을 늦춰달라고 요청했지만 그건 어렵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결국 6월에는 서울로 올라와야 했습니다. 다들 서울대교구장으로 가니까 좋겠다고만 생각했는데, (청주)교구에 100억 원이라는 큰 빚을 남긴 저 자신은 얼마나 미안하고 착잡했는지 모릅니다. 시험에 든 아브라함의 심정이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떠난 후 모두가 일치단결해서 기한 내에 빌린 돈을 다 갚을 수 있었습니다. 청주교구 신부님과 신자들에게 미안하고 또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합니다.”

 

청주성모병원 건은 당장은 이해가 되지 않는 역경도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것이고, 마침내는 선(善)으로 승화시키신다는 신앙의 신비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아닐까 싶다.

 

정 추기경은 “하느님이 예수라는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의 고통 끝에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킴으로써 사랑의 승리를 보여준 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하느님은 자신의 뜻을 전하고자 인간이 돼 오셨습니다. 나쁜 사람은 잘살고, 착한 사람이 고통을 받는 세상은 인간의 눈으로 볼 때 부조리하고 정의롭지 못합니다. 무고한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과 죽음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킴으로써 인간의 정의를 초월하는 당신의 정의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모든 악을 이긴다는 것을 보여주신 겁니다. 그리스도인은 인간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믿는 이들입니다. 어떤 절망 속에서도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믿음을 잃지 말고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최근 대한민국을 이끌 제19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문재인(티모테오) 대통령에게 당부 말씀을 청했다. 정 추기경은 비단 문 대통령뿐만 아니라 한국의 모든 정치인이 모세 같은 지도자가 되기를 요청했다.

 

“모세는 하느님이 택한 영도자입니다. 물론 결점도 많았지만 성경에서 가장 훌륭한 지도자로 꼽히는 성인 가운데 한 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에게 여러 차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진노하신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다 없애고 모세를 새 민족의 조상으로 만들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살려달라고, 제가 참을 테니 용서해 달라고 하느님께 매달렸습니다. 모세는 그런 지도자였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세의 일생을 꼭 한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모세를 닮는다면 분명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사제와 신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했다. 정 추기경은 가능하면 상대방의 좋은 점을 보고, 일단 일을 맡겼다면 믿고 지원을 아끼지 말라고 조언했다.

 

“하느님은 제게 상대방의 단점이나 못하는 것보다는 장점과 잘하는 것을 크게 보는 은총을 주셨습니다. 저는 누구에게든 일을 맡기면 잔소리를 하거나 간섭하기보다는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했습니다. 지난 40여 년간 교구장직을 큰 무리 없이 수행할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화할 때 가능하면 좋은 점을 이야기하세요. 행복의 첫걸음이라고 믿습니다.”

 

남정률 기자 njyul@cpbc.co.kr

 

▲ 정진석 추기경 문장



정진석 추기경 약력

 ▲ 1931년 12월 7일 서울 출생

▲ 1961년 가톨릭대 신학대 졸업

▲ 1961년 3월 18일 사제 수품

▲ 1961년 서울대교구 중림동본당 보좌

▲ 1961~67년 성신고등학교 교사

▲ 1962~64년 서울대교구 법원 공증관

▲ 1964~65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총무

▲ 1965~67년 서울대교구장 비서ㆍ상서국장

▲ 1967~68년 성신고등학교 부교장

▲ 1968~70년 교황청립 우르바노대 대학원 졸업(교회법 석사)

▲ 1970년 6월 25일 청주교구장 임명

▲ 1970년 10월 3일 주교 수품, 청주교구장 착좌

▲ 1970~99년 재단법인 청주교구 천주교회 유지재단 이사장

▲ 1987~93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총무

▲ 1993~96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부의장

▲ 1996~99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 1998년 5월 30일 서울대교구장 임명

▲ 1998년 6월 29일 서울대교구장 착좌

▲ 2006년 2월 22일 베네딕토 16세 교황으로부터 추기경 임명

▲ 2006년 3월 24일 추기경 서임

▲ 2007년 2월 3일 교황청 성좌조직재무심의 추기경위원회 위원 임명

▲ 2012년 6월 15일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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