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가톨릭평화신문 창간 29주년] 격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 멈추지 않는 신앙의 여정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의 29년 발자취
2017. 05. 14발행 [14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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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11월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 이사장 손희송(오른쪽) 주교가 사장 안병철 신부에게 새 CI를 담은 사기를 전달하고 있다.

▲ 1988년 5월 15일 가톨릭평화신문 (당시 제호 평화신문) 창간호.

▲ 1990년 3월 라디오 개국 40일을 앞두고 김옥균 주교 등이 시험방송 전파 발사 단추를 누르고 있다.

▲ 1995년 3월 1일 당시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과 이사장 김옥균 주교가 가톨릭평화방송TV 개국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지난 한 해는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cpbc)에 ‘새로운 전기’였다.

2016년 설립 28주년을 맞아 가톨릭 언론으로서의 신원, 곧 정체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교회력으로 새해를 맞는 대림 1주일을 앞둔 11월 23일, 새로운 CI를 선포하고 새 복음화의 기수로 거듭났다. 기존 평화방송ㆍ평화신문(pbc)에 가톨릭(catholic)의 첫 글자 c를 보태 가톨릭 매체로서 정체성을 분명히 했고, 가톨릭적 가치로 세상을 따뜻하게 포용하는 하느님의 도구가 되겠다는 다짐을 담았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나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설립 29돌을 맞는다. 민주화의 열기가 뜨거웠던 1988년에 태어나 29년의 세월을 보냈고, 사람으로 치면, 서른 살 이립(而立)의 청년기를 눈앞에 뒀다. 신문과 라디오, TV 등 세 매체를 주축으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까지’ 망라하는 가톨릭 종합매스컴으로서 성장한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의 29년 발자취를 정리한다.


1988년 ‘평화신문’ 창간

사회 비판·증언 교회 안팎에 영향

 

평화방송FM 1990년 첫 전파

한국 교회 사상 첫 라디오 선교방송

선교·인간화 내용 집중해 차별화

 

1995년 TV 개국과 함께

신문·라디오·TV 한번에 아울러

 

2016년 ‘cpbc’로 새 CI 선포하며

종합 가톨릭 미디어 정체성 확고히

 

SNS·모바일 등 뉴미디어 흐름 맞춰

변화 적응한 콘텐츠 제작·보급 온힘

 

‘그리스도의 빛을 비춘’(「교회 헌장」 1항) 29년이었다. 때로는 굴곡도, 아픔도, 눈물도 있었지만, 복음의 기쁨이 빛처럼 퍼져나가 세상의 어둠을 밝히기를 염원하며 걸어온 기쁨의 여정이었다. ‘신앙의 빛을 오롯이 온 세상에 전한’ 스물아홉 해였다.

‘1988년 5월 15일’. 평화신문(현 가톨릭평화신문)이 세상에 선을 보인 그 날부터 기쁨의 여정을 시작했다. 가톨릭평화신문은 1987년 11월 서울대교구 사제총회에서 신문과 방송 운영을 결의한 지 6개월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신문 창간사를 보면, 그 시대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이 땅의 진실을 드러내는 ‘정직한 신문’ △이 세상을 진리와 사랑에 의한 인간다운 사회로 만들어 나가려는 선의에 장애가 되는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독립된 신문’ △‘그리스도의 평화 실현을 지향하는 신문’이 지향이었다.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의 참 평화에 대한 갈망’을 담아내고자 창간된 가톨릭평화신문은 주간 발행 체제로 출발, 국내 언론사 최초로 가로쓰기와 한글전용 편집체제를 도입해 한국 언론사에 한 획을 그었다. 특히 사회 전반에 대한 비판과 증언을 통해 예언자적 목소리로 겨레의 나아갈 길을 제시함으로써 교회 안팎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세상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지만, 창간 1주년을 갓 넘긴 1989년 7월 30일 지령 제62호를 끝으로 휴간하는 시련을 겪는다. 신문의 편집 방향을 놓고 벌어진 논란과 혼선 때문이었다.

이후 5개월여 동안 진통을 겪은 가톨릭평화신문은 같은 해 12월 25일 예수 성탄 대축일에 타블로이드판으로 속간됐다. 당시 이사장 김옥균 주교의 속간사는 이후 평화신문의 소명과 지향을 선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모든 이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을 잇는 소통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모시고 이 땅에 사랑, 정의, 평화를 구현하는 데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처럼 거듭난 가톨릭평화신문은 1992년 4월 19일 지령 179호로 판형을 대판으로 다시 바꿨고, 1993년에는 발행 부수를 공개했으며, 2000년에는 전면 화상 편집 체제를 갖췄다. 이후로도 꾸준히 증면해 현재 매주 28면을 발행하면서 ‘복음 선포의 도구’로서 신자 교육과 교회 공동선 실현, 나아가 정의와 연대에 바탕을 둔 인간 공동체 건설과 유지에 이바지하고 있다.

1990년은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가톨릭 종합매스컴’으로 발돋움한 뜻깊은 해였다. 라디오 FM 방송을 인가받아 그해 4월 15일 서울에서 평화방송(현 가톨릭평화방송)이 첫 전파(FM 105.3MHz, 수도권)를 내보냄으로써 한국 교회 사상 첫 라디오 선교 방송에 돌입했다. 이어 1996년 6월과 9월 광주(99.9MHz)와 대구(93.1MHz), 2000년 5월과 12월 부산(101.1MHz)과 대전(106.3MHz)으로 가청권을 넓힘으로써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전국 어디서나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게 됐다. 2000년 2월에는 서울 남산에 있던 송신소를 관악산으로 옮겨 경기도, 멀리는 충청 북부까지 가청권을 확대했고, 광주의 여수 중계소, 대구의 포항ㆍ안동ㆍ김천 중계소, 부산의 울산ㆍ녹산 중계소 등도 차례차례 개설함으로써 난청을 해소해 나갔다. 평화방송 라디오는 특히 일반 상업방송과 달리 선교와 인간화 프로그램을 집중 편성했고, 이를 통해 차별화된 방송 이미지를 정착시켜 왔다.

1995년은 영상매체인 평화방송TV(현 가톨릭평화방송TV)를 개국함으로써 신문과 라디오, TV를 한꺼번에 아우르는 ‘가톨릭 종합 매스컴’으로 자리매김한 뜻깊은 해였다. 1993년 케이블TV 프로그램 공급업 허가를 받아 1년여 준비 끝에 1995년 3월 1일 개국했고, 하루 16시간 방송을 시작으로 지금은 24시간 방송체제를 유지하며 40여 개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다.

케이블 방송에 이어 7년 뒤인 2002년 3월 1일 개국한 디지털 위성방송 ‘SKY-평화’(SKY-가톨릭평화, 채널 184)는 영상을 통한 복음선교의 새 장을 여는 것이었다. 위성TV는 그간 지역적 특성 때문에 보급에 어려움을 겪은 산간 오지와 도서 벽지, 멀리는 북한까지 ‘그리스도의 평화’를 전해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어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라디오와 TV 제작과 송출 장비를 디지털화하는 준비도 꾸준히 이뤄졌다. 라디오는 디지털 오디오 파일 시스템을 도입한 것을 비롯해 스튜디오를 디지털 시스템으로 바꿨다. TV 또한 카메라와 제작, 송출 관련 장비를 모두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마무리하고, 올들어 고화질ㆍ고선명ㆍ고해상도의 방송 규격인 HD 방송을 시작했다.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은 이제 뉴미디어 콘텐츠 제작과 서비스로 시선을 옮기고 있다. 특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같은 모바일(Mobile)로 미디어 환경이 급격히 이동하고 있기에 이에 걸맞은 새로운 가톨릭 콘텐츠를 제작 보급하는 데에도 힘을 쏟고 있다. 더불어 한국 천주교회의 질적 성장 기반을 마련하고자 신자재교육 콘텐츠 제작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된 플랫폼으로의 변신은 이제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피할 수 없는 과제다.

그러나 미디어 환경이 아무리 변하더라도 하느님의 진리를 선포하고 증거하는 복음의 사도로서 부르심은 변함이 없기에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은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대한 ‘적응과 쇄신’을 통해 복음의 빛을 비추는 신앙의 여정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 전경. 이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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