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추기경 정진석] (46) 주님의 섭리와 지팡이
서울과 평양의 참목자로 행복한 교회 만들 것 다짐
2017. 04. 23발행 [14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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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평양의 참목자로 행복한 교회 만들 것 다짐

▲ 주교좌에 앉아있는 정진석 대주교.

▲ 정진석 대주교가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성당으로 들어가고 있다.

▲ 서울대교구장 착좌를 위해 주교좌로 향하는 정진석 대주교.

▲ 착좌 미사 입당 전 주교들과 함께.





정 대주교, 28년 몸담은 청주교구와 작별

서울대교구장 착좌 미사 하느님 은총 청해

평양교구장 서리로서 특별한 소회 밝혀

서울대교구 지키다 납북된 번 주교 언급

북녘 교회에 대한 애정에 모두 감동



1998년 6월의 끝자락에 정진석 대주교는 정든 청주교구를 떠났다. 아침부터 정 대주교가 떠나는 것을 보려고 신자들이 청주교구청으로 몰려들었다. 정 대주교가 청주교구 사제단, 신자들과 함께한 세월이 28년이었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청주교구에서 보냈으니 서로 정도 많이 쌓여 있었다. 서울로 떠나려고 정 대주교가 모습을 드러내자 모여 있던 신자들은 탄성과 함께 박수로 정 대주교를 배웅했다. 떠나는 뒷모습에 이별을 실감한 신자들은 눈물을 쏟아내며 섭섭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주교님! 청주교구를 잊지 말아 주세요!”

그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를 듣자마자 울컥하는 마음에 정 대주교는 눈을 들어 하늘을 봤다. 할머니들은 정 대주교의 손을 끌어 잡기도 했다.

“주교님! 시골에서 너무 고생 많이 하셨어요. 어디서든 건강하세요. 저는 살 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 다시 볼 수가 없겠지요. 기도할게요, 주교님!”

오히려 정 대주교를 위로하며 눈물을 흘리는 신자들을 보자니 정 대주교 눈에도 이슬이 맺혔다. 노인들은 어쩌면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라며 정 대주교의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청주까지 마중 나온 서울대교구 사무처장 염수정(현 서울대교구장 추기경) 신부와 동승해 명동에 도착했다. 정 대주교가 서울로 다시 돌아온 것은 30년 만이었다. 차창 멀리 명동대성당의 종탑이 보이니 감회가 깊었다. 서울대교구청 마당에는 보좌 주교들, 각 국장 신부들, 교구청 직원들이 일찍부터 나와 정 대주교의 서울대교구장으로서의 입성을 가장 먼저 축하했다. 정 대주교는 곧바로 명동대성당으로 올라가 잠시 기도를 바쳤다. 그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28년 전 떨리는 마음으로 도착한 낯선 청주교구에 두려움을 가지고 도착한 것이 어제같이 느껴집니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어려운 일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모두 주님의 뜻이었고 은총이었습니다.

성당 신축도 선배들부터 솔선수범해서 잘 이뤄졌고, 하느님께 사제 100명을 달라고 떼썼던 떼쟁이 주교의 청도 잘 들어주셔서 바로 며칠 전 있었던 사제서품식으로 청주교구 전체 사제가 100명을 넘어섰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정말 오로지 사제들과 신자들이 한 것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청주교구 신부님들, 수녀님들, 신자분들에게 축복을 가득 내려주세요. 그리고 부족한 저를 생각지도 않은 서울대교구장으로 부르신 것도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뜻을 잘 이룰 수 있게 도와주세요.”

다음 날, 착좌 미사가 시작되기 훨씬 전인 오전 8시쯤부터 명동대성당에는 신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성당에 입장하지 못한 신자들은 명동대성당 옆 문화관에 마련된 대형 멀티비전을 통해 착좌식에 함께 참여했다. 1000여 명에 가까운 규모였다. 500여 명의 신자들은 문화관마저도 서 있을 자리가 없어 성당 마당 곳곳에 모여 기도를 바쳤다.

때마침 명동대성당 입구에서 집회를 가질 예정이던 한총련 학생들도 ‘13대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정진석 니콜라오 대주교 착좌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라는 내용을 담은 현수막을 들고 축하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발랄한 학생답게 축하연을 마치고 교구청으로 들어가는 정 대주교를 보자 일제히 일어서서 인사를 하기도 했다.

“비록 저흰 이곳에서 농성 중이지만, 대주교님의 착좌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정 대주교는 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축복의 기도를 보냈다.

정진석 대주교의 착좌식에는 21명의 주교를 비롯해 많은 내외 귀빈이 참석했다. 각 종교 지도자들도 오전 11시 미사 시간에 맞춰 속속 명동대성당에 도착했다. 착좌 미사가 시작되고, 정 대주교가 드디어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감사 인사와 함께 엘리야의 제자 엘리사의 이야기를 했다. 민족의 행복을 증진하려는 스승의 유업을 계승하는 막중한 임무를 인식해 자기 스승보다 두 배의 영을 청원했던 엘리사(2열왕 2, 9-15)가 꼭 자신과 같았기 때문이다.

“부족한 저 자신도 하느님의 은총이 있어야 교구장직을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제 여러분과 신자 여러분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착좌 미사에서 여러 축사 후 이어진 답사에서 정 대주교는 강론의 내용과는 다르게 평양교구장 서리로서의 발표문을 준비했다. 정 대주교는 서울대교구장이자 평양교구장 서리로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평양교구장 서리에 임명된 것에 각별함을 느꼈던 정 대주교는 패트릭 번 주교의 이야기를 준비했다. 그가 평양교구장 서리에 임명된 것은 실로 놀라운 하느님의 섭리였다. 정 대주교가 착좌 미사에서 들고 있던 목장이 바로 메리놀외방선교회 초대 한국지부장이자 초대 평양지목구장을 역임했던 패트릭 번 주교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목장(주교 지팡이)은 하느님의 섭리를 따라 위대한 여정을 돌아온 것이었다. 해방 직후 초대 평양(준)교구장을 겸임하고 있던 패트릭 번 주교의 것으로, 그가 이후 첫 번째 주한 교황 사절(오늘날 주한 교황대사)로서 6·25 때 서울대교구를 지키다 납북되면서 남기고 간 것이다. 유럽 방문을 갔던 노기남 대주교를 대신해 서울대교구를 지키고 있던 미국인 패트릭 번 주교는 미군들이 특별기를 제공하며 피신을 권했지만 ‘노 대주교님이 안 계시니 내가 서울대교구를 지키겠다’며 피난을 가지 않고 있다가 결국 북한 군인들에게 피랍됐다.

납북 직후 병사한 번 주교의 목장은 메리놀외방선교회가 보관해오다가 메리놀회원이자 청주교구장인 파디 주교에게 넘겼고, 파디 주교는 청주교구 첫 한국인 주교로 임명된 정 대주교에게 이를 건넸다. 평양교구장의 지팡이가 제자리를 찾은 셈이었다. 청주에서 목장을 받던 정 주교는 자신이 서울대교구장이자 평양교구장 서리로서 이 목장을 들게 될 줄은 당시엔 꿈에도 몰랐다.

“이 지팡이를 들고 평양교구를 돌볼 수 있도록 하느님께 떼를 쓰겠습니다.”

신자들과 사제들은 낯선 인물인 패트릭 번 주교의 이야기와 함께 교구장의 평양교구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자 크게 감동을 받았다. 번 주교의 목장을 든 정 대주교는 주어진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했던 번 주교의 뒤를 이어 이제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그는 서울대교구 사제들과 수도자들을 대상으로 열린 행사장을 찾아가 이들에게 포부를 전했다.

“저는 여러분을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하기 위해 서울에 왔습니다.”

사제들은 큰 박수와 함께 라틴어 성가 ‘에케 쾀 보눔(Ecce Quam Bonum, 얼마나 좋은고)’을 함께 불렀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정 대주교의 착좌를 축하했다.

글=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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