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하느님의 자비 주일] 세상 떠나는 이들 위해 30년 봉사해온 안여일씨
죽음의 절망에 빛을… 하느님 자비의 등대 된 30년
2017. 04. 23발행 [14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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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절망에 빛을… 하느님 자비의 등대 된 30년

▲ 안여일씨는 “절망 속에 병마에 시달리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었다”며 “모든 이들이 자신과 주변 사람과 화해와 용서를 하고 하느님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죽음 앞에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평생 열심히 살았고, 하느님을 굳건히 믿어온 신앙인이라 하더라도 모든 인간에게 죽음은 아프고 두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마지막 순간이 덜 외롭고 더 고귀할 수 있다면 그 이별은 조금이나마 따뜻하고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하느님의 자비 주일’을 맞아 호스피스 봉사, 본당 연령회 회장, 병원 원목 봉사자로 30년 동안 세상과 이별을 앞둔 이들을 위한 ‘자비의 삶’을 살아온 안여일(데레사, 76, 수원교구 별양동본당)씨를 만났다. 최근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첫 책 「내가 먼저 희망이 되어야지」(가톨릭출판사 / 1만 원)를 낸 늦깎이 작가이기도 하다. 200여 쪽에 이르는 책에는 그가 그간 베풀며 살아온 따뜻하면서도 감동이 스민 삶의 순간들이 빼곡히 담겨 있다. 안씨는 시종 미소를 지으며 생의 마지막 순간에 있었던 이들과 만난 이야기를 전했다.

“죽음은 아프지만 깨달음을 주죠. 저를 만난 모든 이가 어떻게든 존귀한 모습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길 바라며 살아왔을 뿐이에요. 제가 좋아서 해온 일인 걸요.”

▲ 젊은 시절 원목 봉사자로 활동할 때 모습. 유방암 진단 후 가지고 있던 사진을 모두 없애 지갑에 있는 이 사진이 당시 활동 모습을 유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안여일씨 제공



그저 좋아서 한 일

안씨는 남을 돕는 일 중에서도 가장 고통 가운데 있는 이를 돌보는 호스피스 봉사를 40대에 시작했다.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의 임종을 지켰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책 제목처럼 ‘내가 먼저 희망’이 된 사연들이 쌓였다.

“당신이 기도한다고 내 목숨 살릴 수 있어? 나를 그냥 내버려둬!”

위암 말기였던 김정해(56, 가명)씨는 문앞에 서서 기도하는 안씨에게 물건을 집어 던졌다. 기도 소리가 듣기 싫다는 그는 입에 담기 어려운 욕도 내뱉었다. 그러기를 며칠이 지났다. “미안했다”며 안씨에게 문을 열어준 정해씨는 깡마른 몸에 수수깡 같은 손을 내밀며 그제야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정해씨는 평생 남편을 뒷바라지하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병을 얻어 분노에 차 있었던 터였다. 안씨는 정해씨가 남편과 화해하고, 미처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지 못했던 친정어머니까지 병원에 오도록 이끌며 정해씨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죽음을 앞둔 이의 첫사랑에게 연락해 마지막 만남을 하도록 소망을 이뤄주기도 하고, 외도한 남편을 용서하는 데 힘들어했던 한 자매의 병원 침상에서 밤새 그의 이야기를 들어줬다. 책에는 죽음을 앞둔 환자와 강원도로 2박 3일 여행을 다녀온 사연, 골수암에 걸린 대녀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고 하느님께 보낸 사연, 근육병 자녀 넷을 둔 할머니를 13년간 딸처럼 방문해 모신 사연 등 ‘가족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지극정성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이야기가 소설처럼 연이어 나온다.

안씨는 “오랫동안 반찬 해드리고, 밥과 청소를 해드린 한 할머니는 제가 당연히 성당에서 돈을 받는 줄 아시더라”며 “누군가는 열심히 봉사한다지만, 저는 그보다 그저 ‘좋아서 한 일’”이라고 했다.



유방암 수술 이후 얻은 새 삶

“제 나이 마흔일곱에 찾아온 유방암은 삶의 전환점이 됐지요.”

안씨는 당시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봉사자로 활발히 활동 중이었다. 그러다 갑작스레 유방암 진단을 받고 하루아침에 환자가 됐다. 갖고 있던 일기장과 사진을 다 태워버릴 정도로 극한의 고통을 겪은 안씨는 수술대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강으로 끌고 가 머리에 안수해 준 체험을 했다. 이후 그의 삶은 더욱 진솔해졌고, 신앙적으로도 깊어졌다. 덤으로 얻은 생명을 이웃을 위해 쓰겠다고 다짐했다.

안씨의 봉사와 나눔은 어머니 영향이 컸다. 안씨의 모친은 산자락에서 어렵게 사는 화전민들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고, 집에 있던 옷가지까지 보자기에 싸서 챙겨줬다. 명절 때면 떡을 차고 넘치게 만들어 동네 사람들에게 다 퍼줬다. 정작 식구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안씨는 “그땐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 싫었지만, 지금 제가 어머니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며 “돈이 아니라 참되게 살아온 부모의 삶이 자녀에겐 물려 줄 유산이라 여긴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따뜻한 나눔

“사무장님, 떡 사 먹게 2만 원만 주세요.”, “언니, 나 3만 원만 줘봐요.”

안씨는 어느 날 영문을 일러주지 않고 주변 사람에게 무작정 돈을 얻어 150여만 원을 모았다. 평소 선행을 많이 하는 안씨에게 스스럼없이 돈을 건넸던 이들은 나중에 문자 메시지 하나를 받았다. 안씨가 보낸 메시지였다. ‘여러분 도움으로 소록도 한센인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뜻밖의 문자를 받은 이들은 “그런 줄 알았으면 돈을 더 챙겨줄걸” 하고 답했다. 안씨의 ‘깜짝 성금’으로 소록도 한센인 신자들은 오랜만에 잔치를 벌여 몸보신을 했다.

안씨는 “저와 친한 한센인 할아버지는 뭉뚝한 손에 펜을 묶어 매일 성경을 필사해 완필하셨다”며 “나눔을 하다 보면 이처럼 제가 크게 배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안씨는 이후 성경 필사를 시작했다.

그는 지금도 주변에 알리지 않고 이런저런 선행을 이어오고 있다. 휴대전화에 빼곡히 저장된 ‘도와주는 이들’을 지금도 수시로 찾아 딸, 친구, 말벗 역할을 이어오고 있다. 슬하의 아들 셋과 며느리들도 내 일처럼 선행에 동참하고 있다.

“막내아들은 입관 때 관을 들어줄 사람 하나 없는 무연고자를 위해 선뜻 나서 관을 들어주기도 했고, 대녀 입관 때엔 며느리가 예쁜 꽃 화관을 만들어 머리에 씌어줬어요. 돌보는 할머니에게 기저귀가 필요하면 자식들이 말없이 사다 놓기도 합니다. 선행은 절대 혼자 할 수가 없어요.”

안씨는 “절망 속에 하루하루 병마와 싸우며 고통받는 환자들, 가난한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었다”고 선행의 이유를 밝혔다. “주님께 덤으로 얻은 새 생명을 끝까지 남을 위해 베풀고 싶다”며 “책 판매 수익금은 어려운 이들을 위해 쓸 것”이라고 했다.

“죽음을 앞둔 이들은 하나같이 지난날을 후회합니다. 앞만 보고 살아온 것을요. 제가 해온 봉사는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이 화해하고 용서하도록 이끄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갈 수가 없잖아요. 지구에 사는 모든 이들은 하느님 안에 한가족이에요. 저는 지금도 남편과 자식들에게 ‘사랑한다’고 자주 말합니다. 옆 사람, 내 이웃에게 참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겐 그래서 이미 ‘하늘나라 친구들’이 많습니다. 훗날 그곳에서 모두 나와 저를 반겨 주겠죠?(웃음)”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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