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아버지의 집, 아름다움 성당을 찾아서](14) 의정부교구 파주 갈곡리성당
형식적 아름다움보다 신앙 본연의 아름다움 간직한 성당
2017. 04. 23발행 [14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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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적 아름다움보다 신앙 본연의 아름다움 간직한 성당

▲ 6ㆍ25 전쟁 이후 지어진 갈곡리성당은 전쟁을 겪은 이들에게 든든한 성채처럼 성당에서 하느님의 견고한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정서적 안정감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외벽이 화강암으로 치장돼 있다.

▲ 5각 반원형 앱스로 처리된 갈곡리성당 제단은 정방형 십자가를 중심으로 양측이 성체성사를 상징하는 색유리화로 장식돼 있다.

▲ 6ㆍ25 전쟁 직후 지어진 성당 대부분은 성당 내부 구조를 단순화해 강당 형태의 밋밋한 구조로 변형시킨 것이 특징이다. 갈곡리성당은 그 과도기적 양식으로 단순한 내부를 가는 열주로 분절해 깊이감과 공간감을 준 것이 돋보인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1953년 6ㆍ25 전쟁 휴전 직후부터 구호 활동과 함께 성당 복구와 재건 사업에 힘썼다. 당시 한국 교회는 미국 가톨릭구제회와 주한 미군의 도움으로 이런 활동을 추진할 수 있었다. 특히 성당 복구와 재건 사업은 미군 부대의 자재 지원이 절대적인 도움을 줬다. 이 시기에 지어진 대표적 성당이 의정부주교좌ㆍ춘천 죽림동주교좌ㆍ원주 원동주교좌ㆍ서울 돈암동ㆍ김포성당 등이다.

이 시기에 지어진 성당의 공통점은 단순한 내부 구조다. 성당 내부 공간을 나누는 열주(列柱, 기둥)를 없애 버려 예전과 달리 강당 형태의 밋밋한 구조로 변형됐다. 이러한 유형을 ‘양식변형 양옥성당’이라고 한다. 아마도 짧은 기간에 군대의 지원으로 성당을 짓다 보니 기능을 우선하고 형태미를 생략한 듯하다.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외형을 화강석과 같은 돌로 치장하고 종탑을 정면 중앙에 배치했다는 점이다. 전쟁을 겪은 이들에게 든든한 성채처럼 성당에서 하느님의 견고한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정서적 안정감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화합로 466번길 51에 터한 갈곡리성당은 우리나라 서양식 성당 건축 양식에서 양식변형 양옥성당으로 건너가는 과도기적 건축풍을 보여준다. 1955년에 지어진 이 성당은 양식변형 양옥성당의 특징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지만 그 틀을 깬 특징적인 부분이 있다. 바로 성당 안에 열주를 둬 공간감과 깊이감을 준 것이다. 이 성당의 원형은 1953년 봉헌된 의정부주교좌성당이다. 그대로 본떠 지은 성당이라 쌍둥이라 부를만하지만 갈곡리성당이 보다 직선적인 형태미를 띤다.

갈곡리성당은 미 해병대 군종 에드워드 마티노 신부와 한국 해병대 군종 김창석(타대오) 신부의 도움으로 지어졌다. 물론 갈곡리 신자들의 희생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 신자들은 직접 삽과 곡괭이로 성당터를 일구고,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으로 건축 자재를 매입하는 등 헌신적이었다.

유서 깊은 교우촌이어서 그런지 성당은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제법 너른 자리에 터하고 있어 성당의 모든 외형을 둘러볼 수 있어 좋다. 또 제단의 5각 반원형 앱스(제대 뒷면에 들어가 있는 공간)가 수직선을 이루며 깔끔하게 처리돼 외벽의 화강석과 묘한 공감을 이루고 있다. 아울러 종탑과 양 측면 외벽의 창틀, 정문과 측문 모두를 직선으로 처리해 견고함과 강인함을 드러내 보여준다. 마치 우리의 신앙이 이 성당처럼 흔들림 없이 오직 하느님께로 향해 있을 거라는 걸 고백하는 듯하다.

5각 앱스로 구분된 제단은 돌제대와 감실, 제대 십자가, 성체성사를 상징하는 색유리화로 꾸며져 있다. 특히 가운데 벽면에 가로 세로의 길이가 같은 정방형의 나무 십자가와 이를 중심으로 양측 2개의 색유리화가 대칭을 이루고 있어 안정감을 준다. 양측 벽면의 창은 신ㆍ구약성경의 주요 내용과 교회를 상징하는 색유리화로 장식돼 있다.



화려함보다 단순함이 아름다움에 대한 감수성을 더 자극한다. 비움으로써 투명해지듯 전례에 꼭 필요한 것만 채워져 있는 갈곡리성당은 예수님을 향한 신앙의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겠다는 이곳 신자들의 의지를 보여준다. 특히 여기저기 신자석 방석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묵주들은 믿음을 향한 강한 마음가짐을 일상에서 녹여내는 듯하다.

누구나 와서 기도할 수 있도록 성당 문은 열려 있다. 주변의 레미콘 공장과 군부대에서 간간이 토해내는 소음을 제외하고는 침묵의 땅이다.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고도 남을 키 높은 전나무와 온종일 햇살을 머금고 있는 돌로 지어진 성당, 새 생명의 푸름을 잔뜩 머금고 있는 잔디가 따뜻한 풍광을 연출한다.

갈곡(葛谷)은 말뜻 그대로 ‘칡계곡’을 일컫는다. 칡마을이라 해서 ‘칡울’ ‘칠울’이라 불렀다. 그래서 지금도 칠울공소라고도 한다. 이곳에 신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때는 1898년이다. 바로 주교좌 명동대성당이 봉헌되던 해이다. 오랜 신앙의 보금자리이지만 신선함을 주는 것은 산과 자연과 성당과 그곳에서 기도하며 사는 사람이 늘 새로워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유난히 많은 사제ㆍ수도 성소자들이 나왔다. 한국인 첫 성직수도자인 하느님의 종 김치호(성 베네딕토회) 신부와 최창무(전 광주대교구장) 대주교, 김남수(루카, 부산교구 원로사목자) 신부 등이 이곳 출신이다. 특히 이곳 출신 수녀들의 경우 관상 수도회에 입회한 이들이 많다. 모두 갈곡리성당 모습처럼 참으로 크신 주님만 바라보고 굳건히 살았던 어른들을 모범을 따라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글·사진=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주소 : 경기 파주시 법원읍 갈곡리

미사 : 매월 둘째 주 주일 오전 9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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