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제4회 신앙체험수기] 행복한 사형수
이석수(요아킴, 수원교구 북수동본당)
2017. 03. 19발행 [14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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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수(요아킴, 수원교구 북수동본당)

▲ 그림= 문채현



흐르는 시간이 기적을 일으켜 현실의 반대 방향으로 역류할 수 있다면, 그래서 잃어버린 20년의 세월 앞에 당당해질 수 있다면 “나는 무엇으로 그 소중한 시간을 값진 알맹이로 채워갈 수 있을까?”라는 마음을 사색의 깊은 강물에 던져봅니다. 향긋한 꽃향기처럼 이웃에게 조금이라도 사랑의 향기를 피워올릴 수가 있다면, 저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일 것입니다.  

누구나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한 올의 어긋남과 이탈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마는 저는 아직도 끔찍한 그 큰 실수의 당위성을 말하기엔 너무나 큰 죄악을 저지른 죄인입니다. 그래서 그 누구도 짐작하기 어려운 교도소의 15척 큰 담 안의 세월을 20년 동안 묵묵히 참고 견디며 시간이 주는 잔혹한 부속물과 설움의 눈물을 삼키며 그렇게 삶을 살아왔습니다. 날개가 꺾인 새는 하늘을 날 수가 없듯이 인간에게 있어서 자유를 빼앗긴 삶은 인간의 권리를 박탈당한 짐승의 삶과 별반 다를 게 없었습니다.
 

‘자유를 상실하고 자유를 잃어버린 삶.’ 그것은 단순히 철장 속에 갇힘의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오늘도 내일도 거침없이 과거로 흘러가고 있는데, 그 시간의 잔상이 현실의 벽에 막혀 단절되었을 때의 그 깊은 절망과 고통, 슬픔을 알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갖가지 아픔과 눈물, 절망의 쓴 잔을 무수히 삼키고, 푸른 수의를 입고 작은 골방에서 철창으로 조각난 사각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설움의 뜨거운 눈물을 뿌렸던 나날들이 그 얼마인지 모릅니다. 담 안에서 살아갈 때 사소한 풀 한 포기와 나무 한 그루에도 마음과 손이 가고, 담장 위를 자유롭게 비행하며 삶을 만끽하는 비둘기들의 정겨운 모습이 마냥 부럽기도 했었습니다. 정에 굶주린 사람은 한낱 미물에게도 진솔한 마음을 열어 보인다는 옛말이 헛된 말은 아님을 저는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 모든 죄의 대가를 혹독하게 다 치렀고, 오래전 제가 태어나고 살았던 그리운 고향 산천으로 벅찬 감회의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못난 저를 위해서 똑같이 마음고생을 하며 징역살이를 같이 해야만 했던 사랑하는 저의 처 안나씨와 두 딸 노엘라와 마리아, 그리고 은인 천사분들의 헌신적인 사랑과 기도의 땀방울이 없었다면 아마도 저는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은 죄를 돌이킬 수 있을 때 과감하게 뉘우치고 반성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함을 저는 큰 담 안에서 절실하게 배웠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을 땐 순간적인 잠깐의 실수에도 큰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27년 전에 죽음의 늪지대인 그 두려움으로 떨던 사형수 시절을 잠시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갑을 두 손에 차고 어설픈 기도로 묵주 알을 굴리며 다시 한 번 살려달라고 하느님께 피눈물로 매달리고 몸부림쳤던 아찔한 그 시간들과 밤낮들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다시 한 번 저를 살려주시기만 한다면 생명이 붙어있을 때까지 하느님을 흠숭하고 찬미할 것이며, 하느님의 크신 뜻과 계명대로 살아갈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다가 기꺼이 죽기까지 하겠습니다.”

저는 사형수 시절에 주님께 드린 그 약속을 어떤 일이 있더라도 기필코 지킬 것입니다. 저는 비로소 예전에 몰랐던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숨 쉰다고 다 사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을 참 천주로 받아들이고, 또 그 존엄하신 분의 진리의 깊은 뜻과 사랑의 삶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삶이 진정한 생명의 참 삶임을 알았습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마태오 복음 4장 4절의 말씀처럼 주님께 덤으로 받은 이 재생의 삶을 나는 그렇게 살아갈 것이고, 두 번째 인생을 살아가는 저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최고수라고도 불리는 사형수! 그 이름만으로도 교도소에선 충분히 주위를 춥고 무겁고 두렵게 하는 최악의 절망적인 단어입니다. 우리 주 하느님의 크신 자비와 은총으로 말미암아 사형수에서 무기수로 감형이 되었을 때, 환희의 기쁨으로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그 가슴 벅찬 감동의 은혜로운 시간들….
 

죽지 않고 호흡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산다는 것은 하느님의 무한한 은총입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살아있음”이 얼마나 주님의 큰 축복인가를 절절히 느끼게 됩니다. 지금 저는 이렇게 자유롭게 숨을 쉬고 있습니다. 저의 온몸에 기생하고 있는 작은 세포와 그 세포를 둘러싸고 있는 근육과 그 근육을 가로지르는 섬세한 핏줄과 그 핏줄 속을 힘차게 흐르고 있는 붉은 피와 쿵쿵거리며 뛰고 있는 튼튼한 심장의 박동 소리를 들을 때마다 저는 주님께 향한 감사의 송가가 제 입에서 넘쳐 나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산다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삶의 가치가 있는지 모른답니다. 인생의 제일 밑바닥에서 자유를 잃고, 제한된 공간과 감시 속에서 처절하게 눈물로 겪어보지 않으면 말입니다.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라는 시편 27장 1절의 말씀은 저에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큰 힘과 용기를 주는 위로의 말씀입니다. 저를 위하여 밤낮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했던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 하느님께서 천사로 보내주신 이대길(시메온) 신부님과 강귀연(후꼬) 수녀님, 사형수 때 저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고 무료 변론을 해주신 배기원(알폰소) 양아버님, 그리고 많은 은인 분들의 눈물 어린 기도와 사랑을 하느님께서 들으시고 저에게 또 한 번 재생의 삶으로 응답해 주셨음을 저는 힘차게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울분과 분노를 삭이지 못해 두 분의 고귀한 생명을 앗았습니다. 생명보다 더 고귀한 것이 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겠습니다? 저는 그 고귀한 생명을 잃게 한 큰 죄인입니다. 20년 동안 징역살이한 것으로 저의 모든 죗값을 다 치렀다고 저는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합니다. 두 생명을 잃게 한 큰 죄는 제가 숨 쉬며 살아가는 동안에 좌절하고 절망하는 제 이웃들에게 사랑으로 갚아야 할 저의 의무이자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고인이 되어버리신 두 분과 피해자분들께 진심으로 사죄하고 또 사죄를 드리며 그 어떤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뉘우침과 참회의 기도를 하느님께 수없이 바쳤습니다. 저는 이제 고인이 되신 그 두 분의 몫과 함께 하루 72시간의 삶을 살아가면서 이 세상에 사랑의 흔적을 남겨야 하는 사명감이 저의 두 어깨에 걸려 있습니다. 이 시간을 통하여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고인이 되신 분들과 가슴 아픈 피해자 가족분들에게 깊이 사죄를 드립니다.
 

죄인의 당연한 귀결이지만 이젠 그 혹독한 형기를 모두 마치고 자유의 몸이 되어 또다시 세상에 맞서서 새롭게 출발해야 하는 시점에서 저는 많은 것을 고민했습니다. 27년 전의 세상과 지금의 세상은 실로 엄청난 격세지감이 있습니다. 예전에 비하면 일상생활은 말할 수 없을 만큼 편리해지고 안락해졌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마치 ‘돈과 재물’의 노예가 되어서 더욱더 인심이 강퍅해져 버리고 고약해진 것 같습니다. 인정과 인심이 후했고 예절이 흘러넘치며 사람의 향기가 물씬 풍기던 그 옛날이 무척이나 그립습니다.
 

담 안에서 갇혀 살아갈 때 저는 제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깊은 고민 탓에 불면의 밤을 많이 지새우기도 했었습니다. 저 자신이 저를 위해서가 아니고 이웃을 위해서 그리고 윤리와 도덕이 마치 풍전등화와 같은 위태로운 이 사회와 우리 성교회의 발전을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를 말입니다.
 

저의 탈렌트는 하느님께서 분명히 넘치도록 주셨음을 굳게 믿었기에 그 믿음의 끈을 희망으로 부여잡고 끊임없이 주님께 매달렸습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라는 마태오 복음 7장 7-8절의 말씀처럼 저도 이른 새벽 미명의 시간에 일어나 제단을 쌓고 하느님께 정성 어린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지혜를 청했습니다. 주경야독의 정신으로 아둔한 머리를 돌려 신ㆍ구약 성경 입문과 중급 과정을 통신으로 6년 동안 공부하고 은혜롭게 수료했습니다. 한자 1급 자격증을 땄고 대입 검정고시에도 합격했습니다. 종교 서적과 시집, 가톨릭 월간지 등을 시간을 쪼개어서라도 닥치는 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탐독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을 배우기 위하여 자동차 정비 1급 산업기사ㆍ이용사 등 많은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큰 담장의 교정시설 안에서 몇 번에 걸쳐서 천주교 회장과 공장 반장과 자치회장(총반장)의 책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였습니다. 또 매주 드리는 미사와 각종 행사, 생일자 모임 때에는 몇 년 동안 입술이 부르트도록 독학으로 익힌 하모니카로 감미롭고도 경쾌하게 아름다운 성가와 생활 성가, 가곡과 동요, 애창곡 등을 연주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도 했었습니다. 정말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저와 그 시간을 같이하셨던 신부님과 수녀님 그리고 많은 형제자매님께서도 크게 기뻐하셨지만, 사랑의 원천이신 우리 하느님께서는 얼마나 더 기뻐하셨을까요? 주님께 영광을 드리고 입증하는 일이라면 새롭게 주신 이 재생의 생명이 무엇이 그렇게 아깝겠습니까!
 

교도소에서 “이석수(요아킴) 총반장”이라고 하면 직원분들과 재소자들 모두가 한목소리로 제일의 모범수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람들보다도 하늘에 계신 우리 하느님께 참으로 인정을 받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은 지금도 죄가 뭔지도 모른 채 죄의 늪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크든 작든 사소하든 아니든 간에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여서, 이제 양심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이 돌 같은 마음으로 굳어버린 것 같습니다. 양극화가 심화하는 지금의 시국에서 더 많은 사람이 인생 한방을 쫓아 헤매는 것처럼 제 눈에는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미약하고 부족한 저의 영혼이지만 제 이웃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 주님을 모르는 이들을 위하여 저를 사랑으로 불사르고 싶습니다. 소박한 삶 속의 감사함과 아름다움의 참 의미를 일깨워 주고 싶습니다. 두 번 다시는 저와 같은 어리석은 큰 죄인이 이 세상에서 암적으로 존재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심정으로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봉사하며 헌신할 것입니다. 저의 이 처절한 삶의 신앙 체험 고백으로 인해서 무서운 죄의 본성을 자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길 잃은 많은 이들이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와 주님을 참 천주로 고백하고 참 자유를 만끽하며 주님 안에서의 행복을 맛볼 수 있도록 저의 뜨거운 열정과 모든 힘을 다 쏟을 것입니다.

제가 교도소 안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바로 바다였습니다. 더 넓은 수평선 위로 붉게 떠오르는 말간 아침 태양을 두 눈이 시리도록 보고 싶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가족과 함께 말입니다. 저 수평선의 끝없는 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유와 생명과 희망’의 의미가 가득 들어 있습니다. 모든 오물을 정화하고 썩지 않도록 모든 생명을 한 아름에 끌어안고 있는 아름다운 바다를 보며 이제는 제 삶도 주님 안에서 완전히 변화해야 함을 깨달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 남은 인생이 푸른 물결 넘실거리는 깨끗한 바다처럼 그렇게 투명해질 수는 없을까요? 수많은 생명이 사는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하는 것이 염분이듯이 저도 짠맛을 내는 세상의 소금이 되어 많은 사람이 세파에 변질되고 오염되어 가는 이들의 마음을 썩지 않게 하는 짠 소금과 밝은 빛이 되어서 거룩한 하느님의 성전으로 그들의 발걸음을 옮기게 하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희망을 잃고 방황하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와 진리의 말씀으로 치유하는 방법이 분명하게 있음을 저는 확신합니다.
 

큰 담 안에서 참회하고 회개하며 겸손의 삶을 배워갈 때 매주 한 번도 거르지 않으시고 우리 천주교 공동체를 위하여 미사 집전을 오시는 자상하시고 자애로우신 많은 신부님과 수녀님, 그리고 형제자매님들의 따뜻한 사랑과 기도를 통해서 큰 죄인인 제가 하느님의 사람으로 오늘날 변화되었듯이, 저 역시도 지금 이 시각에 죄악에서 허덕이고 절망하며 방황하는 가련한 영혼들을 선교하여 하느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복음 선교를 감당해야 한다는 마음의 큰 울림소리를 결단코 저버릴 수가 없습니다. 신앙의 힘은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을 많은 사람은 잘 알지 못하겠지만,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존재하시고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며 앞날을 심판하신다는 그 사실을 저는 힘차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하느님께서 현존하심을 믿은 것은 1984년 화창한 5월의 봄날이었습니다. 저는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 기념식과 103위 시성식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성하께서 친히 오셔서 거룩하게 집전하고 기도하실 때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에 새하얀 십자가가 약 10초가량 나타나는 기적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저의 큰딸 노엘라도 아기 예수님께서 오신 12월 25일 크리스마스날에 대구 파티마병원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최고수라고도 불리는 사형수 꼬리표를 떼던 날 새벽에 무지개를 만지고 있는 꿈을 꾸었습니다. 저는 그 다음 날 사형수에서 무기수로 감형되어 재생의 삶을 주님께 또 한 번 허락받았습니다. 그리고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큰 담 안에 갇혀서 살아갈 때 주님께서는 언제나 저와 함께 해주시고 보호해주시며 제가 하는 모든 일에 큰 축복을 내려 주셨기에 각종 문예작품 공모전에서 큰 상들과 많은 자격증을 취득할 수가 있었습니다. 온갖 나쁜 일들과 악한 기운을 막아주시어 아무런 작은 사고도 없이 영육간 건강한 몸으로 날마다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는 큰 행복도 주셨습니다. 이 밖에도 우리 하느님의 그 크신 사랑과 자비와 기적의 은총은 말로 다 형용하기가 힘들 정도로 많이 있습니다. 교도소 안에서는 한때 과분하지만 ‘수사’라는 별칭으로 행복하게 불리기도 했었습니다.
 

사형수에서 무기수로, 무기수에서 또다시 20년수라는 유기징역으로 몇 차례 감형의 큰 은혜를 입기까지 하느님의 크나큰 그 모든 은총은 결단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죄인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베풀어주신 아가페적 큰 사랑이었습니다. “어떻게 살다 보니 그렇게 되었겠지?”하는 무책임한 결과일 수는 절대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축복과 은총이 저의 마음에 차고 넘치는 이 큰 죄인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저는 담 안에서 진정으로 우리 하느님을 만났고 죄악의 사슬에서 벗어나기까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사연과 눈물겨운 설움과 아픔이 들어 있습니다. 큰 담 안에서 20년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었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저에게는 헛된 죽음의 시간이 아니라 은혜로운 큰 희망과 생명의 아름다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작은 도구로 쓰시기 위해서 큰 담 안이라는 ‘시련의 용광로’에 집어넣어 단련과 연단을 시키셨습니다. 이제는 저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기를 원하심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굳게 믿습니다.
 

‘금은 불로 단련되고 주님께 맞갖은 이들은 비천의 도가니에서 단련된다. 질병과 가난 속에서도 그분을 신뢰하여라”는 집회서 2장 5절의 거룩한 말씀이 저의 마음과 뇌리에 불같이 타오릅니다. 단지, 저는 그분의 도구입니다. 주님께서 쓰시는 방향대로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면 됩니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 의탁해드렸고 또 그분께서 저의 앞날을 인도해주시는 대로 마음만 열고 따라가기만 하면 세상의 모든 일이 만사형통이 될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 두 번 다시 전능하신 우리 하느님께 죄를 짓고 불충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구세주이시자 사랑의 원천이신 예수님을 또다시 골고타산 십자가 위에 못 박고 진홍빛 같은 고귀한 보혈을 흘리게 해 드릴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저는 앞으로 죄를 지을 땐 차라리 깨끗한 죽음을 택할 것입니다. 우리 하느님께서는 변함없이 그 크신 사랑과 은총으로 저를 인도해 주시고, 저의 앞길을 환하게 밝혀주시며 보호해주실 것을 굳게 믿기에 저의 온 마음과 힘과 목숨을 다 바쳐 우리 하느님을 사랑하고 흠숭할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찬미와 찬양과 감사의 아름다운 노래도 이 생명을 다하는 그 순간까지 끝없이 부르고 증언할 것입니다.
 

2010년 3ㆍ1절 특사로 자유의 땅에 첫발을 내딛고 사랑하는 가족과 포옹하며 가슴이 설레었던 그때가 생각납니다. 제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고 6개월쯤에 그토록 많은 고생을 감내하며 못난 남편을 기다리던 저의 반쪽 안나씨가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2년간 병간호를 했지만 안타깝게도 결국 주님의 나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20년 동안 세상의 온갖 모진 풍파를 겪으며 가정을 지키고 옥바라지를 해온 아내의 그 아름다운 사랑에 그저 미안한 마음밖에 없습니다. 하늘나라로 떠난 안나씨에게 미안한 저의 마음은 제가 주님의 뜻에 부합하는 사랑의 삶을 힘차게 펼쳐가는 일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저로 말미암아 유명을 달리하신 피해자 두 분의 영혼이 주님의 나라인 천국에서 영복을 누리시기를 매일 기도드린답니다.
 

이 큰 죄인과 늘 함께 해주시는 하느님께서는 제가 두 딸과 함께 저의 가정을 성가정으로 잘 꾸려갈 수 있도록 좋은 직장과 일을 주시고 쉬는 날에는 우리 성교회와 가톨릭교육관에서 신앙 체험 특강을 하는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리고 법무부 교정기관인 교도소와 청소년수련원에서 교육 및 특강을 할 수 있도록 제 입을 열어주시고 또한 수원시 장안공원 등에서 색소폰과 하모니카 연주로 많은 사람에게 큰 기쁨과 즐거움을 줄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합니다. 더 기쁜 일은 저의 자서전 「행복한 사형수」가 많은 독자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분에 넘치게도 서울대교구 주보와 신문에서 저에 대한 기사가 실리는 영광과 함께 가톨릭평화방송에서 2015년 성탄 특집에 방영되는 큰 기쁨을 우리 주님께서 제게 주셨습니다. 또한,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열린 세상 오늘에 ‘선교’라는 주제로 생방송에 인터뷰할 수 있는 영광도 주셨습니다. 제 삶의 잔에 넘치도록 사랑과 자비를 부어주시는 우리 하느님께 “감사”라는 말밖에 저는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습니다. 저는 참으로 행복한 사형수입니다.
 

“생사 화복을 주관하시고 믿는 이들의 기도를 기꺼이 들어주시는 만민의 주님이신 우리 주 하느님 아버지! 주님께서는 보잘것없는 이 큰 죄인을 사형이라는 죽음의 늪에서 다시 한 번 살려주셨습니다. 15척의 큰 담 안에서 온갖 시련이 도사린 정글의 역경을 극복할 수 있도록 보호해 주셨습니다. 저를 주님의 독특한 법과 방법으로 삶의 깊은 가르침과 깨달음을 얻도록 지혜를 배우게 하셨으니 그 크나큰 탈렌트로 삼위일체이시며 영원히 살아계시는 우리 주 하느님을 힘차게 증거하다가 보람 있고 의미 있게 죽도록 제 삶을 주관해 주시옵소서. 이젠, 이 큰 죄인은 삶에 조금도 후회가 없습니다. 주님만이 오롯이 저의 희망이시고 기쁨이시며 저의 모든 것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우리 주 하느님의 깊으신 뜻대로 이 사형수를 당신의 작은 도구로 사용하소서! 사랑의 원천이신 우리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간절하게 원하는 당신의 보잘것없는 천한 종의 가슴 아픈 고백입니다. 영원토록 이 큰 죄인에게서 찬미와 찬양과 감사와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주님께 큰 영광을 드리고 주님을 증언하는 곳이라면 어떤 곳이라도 마다치 않을 것입니다. 날마다 이 큰 죄인인 요아킴과 항상 같이 하시는 우리 주 하느님을 영원토록 흠숭하고 사랑합니다. 저의 삶에 모든 기쁨과 영광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우리 주 하느님만을 위하여 올립니다. 영원히 아멘.”
 

▲ 이석수 요아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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