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신앙의 힘으로 ‘시간의 가치’ 시계에 새겨
[나의 신앙 나의 기업] (29) 옥주석(요한 사도) 로렌스(주) 대표
2017. 03. 19발행 [14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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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신앙 나의 기업] (29) 옥주석(요한 사도) 로렌스(주) 대표

▲ 시계는 사람이 만들지만 시간의 주인은 하느님이시다. 그래서인지 40년 이상 시계 산업에 몸담아온 옥주석 로렌스(주) 대표는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는 말씀을 자주 묵상한다. 로렌스(주) 매장의 옥주석 대표.



인생도, 사업도 늘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는다. 때로는 세월이 흐르고서야 지혜를 얻는다. 선친과 함께 또 선친의 뒤를 이어 40년 넘게 외길로 매진했다. 겪을 때는 잘 몰랐는데, 지나고 나니 모든 것이 은총이었음을 깨닫는다. 시계 전문 로렌스(주) 옥주석(요한 사도, 69) 대표의 삶과 신앙이다.


서울 마포구 독막로(옛 상수동) 지하철 6호선 상수역 1번 출구에서 합정동 방향으로 100m를 채 가지 않은 곳. 오른쪽 골목으로 꺾어지는 모퉁이에 ‘Rolens’란 상호를 단, 세련미가 돋보이는 작은 건물. ‘로렌스’ 상표로 국산 시계의 명성을 살려 가고 있는 로렌스 본사 매장이다.

로렌스의 역사는 옥 대표의 선친 옥치돈(시몬, 1992년 선종) 회장이 부산에서 ‘동일사’라는 시계 도소매상을 연 19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여 년 시계와 인연을 맺어온 옥 회장은 1975년 서울 중구 충무로에 길양실업이라는 시계 전문 회사를 설립한다. 이 회사가 내세운 국산 시계 브랜드가 ‘로렌스’였다. 길양실업은 1979년 ‘로렌스시계공업’으로, 2011년 다시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경영학을 전공한 옥 대표는 은행에 다녔으나 선친이 회사를 설립하면서 합류해 영업직으로 시작했다. 회사는 설립 초기 13년 동안 매년 100% 성장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부천에 공장을 신설했고, 유망중소기업, 우량중소기업으로 잇달아 선정됐다.

“선친은 성실과 신용을 무엇보다 중시하셨습니다. ‘땀 흘려 노력한 것만이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늘 강조하셨지요. 단돈 500원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고 빈틈없이 관리하고자 노력하셨습니다.”

옥주석 대표는 1989년 선친에 이어 회사를 맡아 대표가 됐다. ‘88 서울 올림픽 직후’였던 당시는 민주화 열기에 이어 전국적으로 노동운동의 열기가 거세게 일던 때였다. 회사에도 노조가 생겼고 옥 대표는 노조와 대화를 통해 노사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쉽지 않았습니다. 매일 새벽 미사에 참여하면서 노조를 이해하도록 해달라고, 잘 풀어가도록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상대적 박탈감 속에 지내는 노동자들의 처지와 ‘생존이 아니라 사람다운 삶’을 살고자 하는 그들의 주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갈등을 풀고자 했습니다.”

▲ 로렌스(주)가 생산하는 여성 패션 시계.



계속되는 위기 속에서

산업 구조의 변화는 또 다른 어려움을 가져다주었다. 추가 달린 벽시계, 나무 시계 등은 많은 노동력이 있어야 하는 노동 집약적 산업인데, 사회가 노동집약적 산업사회에서 첨단 정보산업 사회로 바뀌면서 구조 조정 또한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노사 갈등의 고비를 겪고 있을 때에 1997년 IMF의 외환위기라는 파고가 덮쳤다. ‘라파엘로’라는 또 다른 브랜드를 내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정말 정신이 없었습니다. 회사 공장 부지의 부동산을 다 처분해 빚을 갚았습니다. 갈 곳이 없어서 선친의 옛집을 수리해 회사로 삼았습니다. 그게 지금 회사 건물입니다.”

2000년대에 들어 시계가 기계식에서 전자식으로 바뀌면서 시계 산업은 계속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옥 대표는 난국을 타개하는 방안으로 ‘명품 시계’를 생각해냈다. 시계 전체를 18K로 만들고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 유리로 장식한 100% 수제품인 명품 시계는 재도약의 발판이 돼주었다. LG홈쇼핑(현 GS홈쇼핑) 시계 부문 최우수 업계로 2년 연속 선정된 것을 비롯해 각종 상을 거의 휩쓸다시피 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재임 시절에는 대통령 시계 공식 납품업체로 지정됐다.

하지만 휴대폰을 비롯해 각종 전자제품에 딸린 전자시계로 시계시장의 수요는 더욱 위축됐고, 수입 자유화, 온라인 쇼핑 활성화로 인한 유통 구조 변화로 어려움은 가중됐다. 옥 대표도 다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한때는 사업을 접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금속공예를 공부하고 돌아온 딸(옥정윤, 아녜스)이 ‘할아버지가 설립한 회사와 장인 정신을 이어야 한다’며 함께하겠다고 나서더군요. 7년쯤 전이었습니다. 그 말에 힘을 얻었습니다. 또 이젠 시계가 패션이 된 시대이기도 했고요.”

딸은 회사 일을 도우며 3년 전에는 본인 이름을 딴 ‘줄리옥(Julie Ok)’이라는 주얼리(Jewelry, 귀금속 장신구) 브랜드를 내놓았다. 2015년에는 마니아 고객을 위해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다. 시계 도소매업으로 시작한 67년 전통의 가업이 3대로 이어지면서 시계를 넘어 귀금속 장신구로 폭을 넓히고 있다.

▲ 옥주석 대표와 시계 기술자가 시계 부품을 살펴보고 있다.



성체 모시며 하루를 열어

“회사를 운영해 오면서 어려운 일을 수없이 겪었습니다. 일을 겪을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나중에 깨닫는 게 있었습니다.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느라고 노력했습니다만, 모든 것은 주님의 은총 덕분이라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하는 말씀을 자주 묵상하게 됩니다.”

옥 대표는 30대에 세례를 받았다. “원래 선친 때부터 개신교에 다녔는데 서울로 올라오신 후 선친이 먼저 가톨릭으로 개종해 세례를 받으셨지요. 고등학교 때부터 개신교회를 열심히 다녔던 저는 집안이 가톨릭으로 개종한 후에도 한참 지나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옥 대표는 개종 후 중요한 체험을 한다. 그 체험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서서히 이루어졌고 옥 대표의 삶도 자연스럽게 거기에 젖어들었다. 영성체의 중요성을 체험한 것이다.

“성체는 주님의 몸입니다. 영성체로 주님의 몸을 내 안에 모셨으면 우리 몸이 주님이 계시는 성전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제대로 살아야겠다고, 신앙과 삶이 일치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다짐하게 되지요. 말도, 행동도 똑바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또한 미사의 은총이지요.”

성실ㆍ정직ㆍ신용 같은 가치들을 소중히 여기고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선친에게서 보고 배운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영성체의 힘, 미사의 은총이라고 고백하는 옥 대표. 그래서인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평일에도 새벽 미사에 참여해 온 지 20년이 넘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미사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성체를 모시면서 주님과 일치하면서 똑바로 사는 힘을 얻고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행복하여라! 악인들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들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옥 대표가 좋아한다는 성경 구절 시편 1편의 첫머리다. 옥 대표는 이 시편을 바치면서 삶의 매무새를 추스르곤 한다.



서울가톨릭경제인회는 ‘나의 신앙, 나의 기업’에 소개할 교우 기업인들을 추천받습니다. 아울러 경제인회 활동에 함께할 교우 기업인들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문의 : 02-755-7060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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