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아버지의 집, 아름다운 성당을 찾아서] (11) 서울대교구 성북동성당

[아버지의 집, 아름다운 성당을 찾아서] (11) 서울대교구 성북동성당

계단 내려가면 따뜻한 빛으로 감싸인 포근한 기도 공간이!

Home > 기획특집 > 아버지의 집, 아름다운 성당을 찾아서
2017.02.26 발행 [1403호]
계단 내려가면 따뜻한 빛으로 감싸인 포근한 기도 공간이!

카타쿰바(Catacumba).

고대 로마인들의 지하 공동묘지를 일컫는 이 말의 어원은 헬라어 ‘카타쿰벤’(κατα κυμβεν)이다. 우리말로 ‘웅덩이 옆’이라는 뜻이다. 로마인들은 지하 공동묘지가 로마 성문 밖 언덕과 언덕 사이에 조성됐기에 카타쿰바라 불렀다. 로마인들은 카타쿰바를 ‘네크로폴리스’(νεκροs πολιs-죽은 이들의 도시)라 은유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피해 이 죽은 이들의 도시에 숨어들어와 부활 신앙을 고백하고 기도하며 미사를 봉헌했다. 최초의 교회 공동체가 이 카타쿰바에서 형성된 것이다.

교회가 세워지면서 죽은 이들의 도시는 더는 어둠의 공간이 아니었다. 부활을 기다리는 희망의 안식처로 바뀌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더는 네크로폴리스라 하지 않고 ‘치메테리움’(cymeterium-기다리는 곳, 안식처)이라 불렀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치메테리움 곧 카타쿰바 내부를 구원과 부활을 상징하는 그림으로 장식하고 이곳이 단순히 박해의 피난처가 아니라 산 이와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 공간임을 고백했다.



▲ 성북동성당은 기존 성당 건축물의 통념을 깨는 특별한 공간이다. 사진은 성북동성당 전경.




서울 성북동성당은 마치 카타쿰바를 연상시킨다. 북악산 동편 자락에 터 잡은 성북동은 예부터 아름다운 바위 언덕들과 맑은 시내로 산자수명(山紫水明)한 마을이었다. 성북동성당은 이 마을 중턱 움푹 들어간 양지바른 곳에 자리하고 있다. 조선 시대 왕비들이 누에를 길러 명주를 생산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던 선잠단지와 의친왕 이강이 35년간 별궁으로 사용했던 성락원이 인접해 있다. 높은 담장이 쳐진 고급 빌라들 사이로 야트막한 담벼락에 조경수 울타리를 꾸며놓은 성북동성당은 그 자체로 해방감을 준다. 늘 열려 있는 대문과 빛바랜 성당의 적색 고벽돌 역시 방문자에게 휴식 같은 아늑함을 안겨준다.
 

성북동성당은 기존 성당 건축물의 통념을 깨는 특별한 공간이다. 통상 성당 설계자는 성전을 들어가기 전에 속(俗)과 성(聖)을 나누는 특별한 공간을 배치한다. 잠시 그곳에 머물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영과 육의 매무새를 다잡게 하려는 공간이다. 중정(中庭, 건물 안이나 안채와 바깥채 사이의 뜰)이나 성당 입구 회랑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늘을 드리워 약간 어둡게 공간 처리를 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성북동성당은 그 반대다. 중정 역할을 하는 성당 로비를 가장 밝게 해 놓았다. 양 벽면에 큰 창을 내어 마당을 훤히 볼 수 있도록 해 시각적으로 공간을 확장시켜 준다. 이 공간에서 빛을 듬뿍 받고 성전으로 들어가라는 배려로 다가온다.




▲ 성북동성당은 카타쿰바를 연상시킨다. 성체를 중심으로 구원과 부활을 상징하는 색유리화가 장식돼 있다.





지하 성전, 어둡지만 편안
 

성전 역시 역설적이다. 지하에 있다. 어둡지만 편안하다. 제대를 중심으로 양 측면 각 4개의 창에 색유리화가 장식돼 있다. ‘예수 성탄’, ‘성모 승천‘,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 ‘한국 순교자’, ‘부활하신 그리스도’, ‘생명나무인 십자가’, ‘최후의 만찬’, ‘성 김대건 신부’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다. 모두 ‘구원’과 ‘부활’을 이야기한다. 성체를 중심으로 구원과 부활을 상징하는 색유리화가 장식된 지하 공간. 이 공간을 가득 채우는 하느님 찬미의 기도 소리가 더없는 희망과 안식을 준다. 그래서 성북동성당은 카타쿰바, 치메테리움을 참 많이 닮았다.




▲ 성북동성당 색유리화는 우리 나라 전통 문양을 도입, 성미술의 토착화를 시도했다.





안타까운 사연 담긴 색유리화
 

색유리화는 양단철(하상 바오로) 작가의 작품이다. 그는 러시아와 프랑스 사르트르에서 이콘과 색유리화를 전공했다. 그는 우리나라 전통 문양을 도입해 성미술의 토착화를 시도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이 유리화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담겨 있다. 이 유리화는 김창성(스테파노)ㆍ오덕주(데레사) 부부가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의 10주기를 맞아 작가에게 의뢰해 봉헌됐다. 작가는 봉헌자의 아픔을 위로하기 위해 ‘성모 승천’ 유리화 하단에 그들의 아들을 주님의 품에 안긴 모습으로 형상화했다. 그는 생명의 나뭇잎이 우거진 곳에서 손을 들어 마리아를 배웅하고 있다. 성모님께서 하느님의 영광에 싸여 부활 승천하셨듯이 그의 아들도 곧 부활할 것임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구원과 부활을 상징하는 형상들이 유리화 곳곳에 숨어 있다. ‘예수 성탄’ 작품에는 하늘로부터 쏟아지는 은총의 붉은 햇살이 그 표징이다.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 작품에서 두루마리에 적힌 복음 말씀이 색동 색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는 형상과 천국의 정원을 상징하는 우물가 아름다운 꽃 역시 구원을 드러낸다. ‘한국의 순교자들’ 작품 상단의 활짝 핀 매화는 순교자들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했음을 나타낸다. 아울러 ‘부활하신 그리스도’에서 그리스도가 손에 들고 있는 십자가와 두루마리는 구원과 영원한 생명의 상징이다. 또 ‘생명나무인 십자가’에서는 십자가에 푸른 생명의 잎들이 우거져 있고, ‘성 김대건 신부’ 작품 상단의 소나무와 학, 태양 역시 영원한 구원의 삶을 표현한다.
 

작가는 어두운 지하 공간을 따뜻한 빛을 통해 희망을 전달하기 위해 기존 유리창에 그림을 그려넣는 기법으로 색유리화를 만들고 그 뒤에 조명을 달았다. 양단철 작가의 작품은 성북동성당 외에도 배티성지와 수원교구 오산성당에서 만날 수 있다.
 

성당 마당의 성모상은 조각가 강희덕(가롤로, 고려대) 교수의 작품이다. 전통적인 성상의 형태에 한국인의 모습을 조화롭게 표현시킨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카타쿰바를 연상시키는 기도처 서울 성북동성당은 신자들뿐 아니라 성북동 산책길을 즐기는 탐방객들에게도 아낌없는 안식처가 되고 있다.
 

글·사진=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대중교통
: 서울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 마을버스 02번 성북동성당 앞 하차

미사
: 수요일 오전 11시, 주일 교중 오전 11시

ⓒ 가톨릭평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보기
첨부파일
발행일자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