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추기경 정진석] (37) 벤치에서 샌드위치를 먹는 주교
공원 벤치에서 샌드위치로 끼니 때우며 후원 호소
2017. 02. 19발행 [14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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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벤치에서 샌드위치로 끼니 때우며 후원 호소

정진석 주교가 청주교구에서 사목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분야 중 하나는 사회복지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정 주교의 성소 못자리가 바로 보육원이었기 때문이다. 청년 정진석은 선종한 김영식 신부와 보육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사제로서의 삶을 결심했다. 사회복지에 대한 관심은 사제로서의 삶에 밑바탕이 돼 있었다.

▲ 1979년 7월 독일 쾰른교구 방문 중 성체거동 행렬에 참가한 정진석(가운데 점선 안) 주교.

정 주교가 큰 애정을 가진 곳이 바로 한국 가톨릭 특수학교의 효시이자 장애 학생들의 요람인 성심농아학교(현 충주성심학교)와 성심맹인학교(현 충주성모학교)다. 정 주교는 교장을 선임하면서 큰 고민을 하다가 1971년 2월 1일 성심농아학교 교장으로 강성숙 수녀를 임명했다. 특수학교뿐만 아니라 1971년 3월 14일에는 매괴여자중ㆍ상업고등학교 교장으로 정영금 수녀를 임명했다.

이 사건으로 충북 지역이 술렁거렸다. 1970년대 초는 여성이 학교장 같은 기관장에 임명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충청북도 교육감뿐 아니라 사제들, 그리고 도민들도 놀라워했다. 그러나 정 주교는 학교를 가장 잘 알고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이 교장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아이들을 향한 애정이 용기를 줬다.

그러나 용감한 주교도 가난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전쟁의 여파가 여전했던 가난한 교구의 교구장 정진석 주교는 또다시 하느님의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자식을 위해 길에 나와 구걸하는 어미의 심정으로 곳곳에 간절한 편지를 썼다. 특히 장애를 가진 학생들을 위해 설립한 성심농아학교와 성심맹인학교를 도와달라는 편지를 해외로 여러 번 보냈다. 학교 신축이 시급한 상황이었고 이왕이면 좋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교육하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 1979년 독일 쾰른 신학교에서 정진석 주교(가운데) 일행이 장인산(정 주교 오른쪽) 신부의 사제 수품 축하식을 마친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독일 구호기관에 원조 요청

‘야훼 이레’의 심정으로 편지를 보낸 곳 중에는 독일의 미제레오르(Misereor)란 곳이 있다. 미제레오르는 독일에서 인종, 종교, 국적, 또는 성별과 관계없이 인간의 권리를 침해당한 채 고난받는 사람들을 자선의 대상이 아니라 파트너로서 도와주고자 하는 목적으로 1959년에 설립된 구호단체다. 독일 미제레오르의 설립 배경에는 2차 세계대전 중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참회와 전후 원조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다.

미제레오르는 긴급 구호보다는 ‘개발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그들은 특별히 6ㆍ25 전쟁 전후 복구 시기가 아닌 경제개발 시기에 우리를 도와줬다. 미제레오르 회원들은 사순시기 헌금과 후원 기금, 정부 지원금으로 기금을 조성해 제3세계 가난한 이들과 질병에 시달리는 빈곤계층을 위한 개발원조 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한국 교회에서는 1960년대 이후 20여 년간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농어민, 노동자, 도시빈민 단체들이 주로 지원을 받았다. 독일 교회의 미제레오르는 일시적 신앙쇄신이나 참회 운동 단체가 아니라 전 세계를 위한 지속적 개발원조기관으로 발전해 오늘에 이른 모범적 사례로 꼽힌다.

정 주교의 편지는 독일 교회의 또 다른 해외원조기구인 미씨오(MISSIO)에도 보내졌다. 이곳은 주로 사목적 사업을 지원했다. 미씨오는 1990년대까지 한국 사제들과 신학생들이 유럽에 유학할 때 장학금을 제공함으로써 한국 교회가 성장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던 곳이다.

1979년 정진석 주교는 마침 독일을 방문하게 됐다. 10년여간의 공부를 마치고 박사 학위를 받은 청주교구 장인산 신부의 서품식이 독일 쾰른에서 있었기 때문이다. 정 주교는 장인산 신부의 동생인 장인남 신부를 데리고 독일 쾰른에 가서 사제 서품식을 거행했다. 그리고 서품식이 끝나기 무섭게 독일 미제레오르 본부에 방문하겠다고 약속을 잡았다. 더 지체할 시간도, 돈도 없었기 때문이다.

약속 당일 정 주교와 장인산 신부 등 일행은 다 함께 미제레오르 본부로 향했다. 가난한 주교와 신부들은 직접 만들어온 샌드위치로 공원 벤치에 앉아 점심을 해결했다. 그리고 시간에 맞춰 미제레오르 본부로 향했다. 사무실에 도착해 이곳 직원들에게 가볍게 인사하니 직원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벤치에서 샌드위치를 먹던 동양 남자가 주교였다니!”

직원들은 선교지에서 온 정진석 주교를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유럽 교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 주교는 아랑곳하지 않고 충주 성심농아학교 신축 기금 보조를 부탁했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인데 교육 공간이 너무 낡아서 먼 길을 찾아왔습니다. 도와주세요.”

가엾은 주교의 간청에 그 자리에서 “예스(Yes)”라는 답이 나왔다. 정 주교는 무척 기뻤다. 이제 농아학교를 제대로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해외에서 전해진 온정의 손길

한국 교회는 실로 하느님의 사랑이 차고 넘친 교회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많은 단체가 세계 각국 교회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주요 선진국 교회가 한국에 보내준 실제 지원액 1538만 달러(약 175억 9000여만 원) 가운데 3분의 2는 미제레오르가 보내준 것이었다. 미제레오르의 원조는 사라호 태풍 수재민 구호부터 제주도 양모가공공장 건축, 부산 성모의원 건립, 한센병 환자 마을 양계사업, 북한강댐 건설 지원 등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하느님은 다른 이들을 통해 한국 교회에 자비의 은총을 거저 주고 계셨다.

글=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사진=서울대교구 홍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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