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영성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 산책] (12) 3세기 ③-플로티누스의 신비철학
플라톤 사상, 그리스도교 영성 생활에 영향 미쳐
2017. 02. 19발행 [14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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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사상, 그리스도교 영성 생활에 영향 미쳐

▲ 플라톤 아카데미 모자이크화.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은 영성 생활을 거룩해지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노력해야 할지 어려워하면서 일정한 체계나 방향성 없이 무작정 최선을 다하겠다고만 결심합니다. 사실 그리스도교 영성 생활은 배경으로 삼은 사상과 신학에 따라서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했던 철학자들의 사상은 그리스도교 영성 생활에 유독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별히 배경이 됐던 철학은 ‘플라톤 사상’이었습니다. 초세기에 ‘중기 플라톤 사상’에 이어 3세기에 ‘신 플라톤 사상’은 동시대뿐 아니라, 이후 중세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교 영성 생활의 일정 부분을 책임질 정도로 커다란 영향을 주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플라톤 철학 계열의 사상들이 그리스도교 영성 생활에 준 영향력을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플라톤 사상 참된 지식의 회복

플라톤(Plato, B.C. 427~347)은 저서 「파이드로스」(Phaidros)에서 신의 영역인 이데아계에 속한 불멸의 존재인 인간 영혼이 참된 것을 보지 못하는 망각과 미숙함으로 날개를 잃고 아래로 추락해 물질계에 속한 육신이라는 감옥에 갇혔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인간 영혼은 잊어버린 참된 지식을 회복하면 날개가 다시 돋아나와 신의 영역으로 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사심 없이 지혜를 사랑하면 더욱 빨리 날개를 되찾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플라톤 사상에 따르면, 인간 영혼은 신과 본질이 같아서 신과 일치하는 데에 지장 없기 때문에, 오로지 참된 지식을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 영혼이 아무리 신과 본질이 같더라도 참된 지식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자동적으로 신의 영역으로 돌아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므로 신과의 일치는 인간 영혼의 노력에 달렸습니다. 따라서 영혼이 신의 영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서로 본질이 같기 때문이고, 돌아가는 방법은 참된 지식을 회복하는 길이었습니다.





중기 플라톤 사상 하느님 은총으로

초세기 중기 플라톤 사상가들은 실재(reality)를 최상의 초월적 원리인 ‘하나’가 있는 ‘초월적 차원’과 관념의 세계인 ‘로고스 차원’, 그리고 감각의 세계인 ‘물질적 차원’으로 구분했습니다. 대표적인 중기 플라톤 사상가 알렉산드리아의 필론(Philo Alexandrinus, B.C. 20~A.D. 42 이후)에 따르면, 물질적 차원과 초월적 차원은 직접 연결돼 있어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기에, 세상 안에 들어오는 초월적인 신의 작용을 이해시키는 로고스 차원을 통해야만 초월적인 하느님의 존재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필론은 하느님에 대한 인식의 시작이 자기 부정, 즉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난 후에야 가능하다고 언급합니다. 인간 영혼은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하느님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하면서 그분께 다가가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결국 상승의 여정을 통해 도착한 곳은 하느님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며, 그마저도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여정은 인간 영혼에 이익이 되고 인간 영혼을 행복하게 위로해 주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바입니다. 로고스 차원에 속한 로고스를 하느님과 이 세상 사이의 중재자로 파악했던 필론은 하느님의 은총에 기반을 둔 신비신학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따라서 유다인이었던 필론은 인간이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는 가능성과 방법이 하느님 은총 때문이라고 하면서 플라톤 사상의 한계를 뛰어넘었습니다.





신 플라톤 사상 관상적 덕행의 실천

3세기 알렉산드리아 출신 철학자 플로티누스(Plotinus, 204~270)는 신 플라톤 사상을 펼쳤던 첫 번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플라톤 사상과 중기 플라톤 사상을 바탕으로 보다 종합적이고 함축적인 체계를 지닌 새로운 사상을 언급했습니다. 특히 플로티누스는 그리스도인이 영성 생활에 즉시 적용하여 활용할 수 있는 신비철학을 제시했습니다.

먼저 플로티누스는 저서 「엔네아데스」(Enneades)에서 중기 플라톤 사상이 제시한 세 개의 위계질서 구분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그 명칭은 바꾸었습니다. 즉, ‘하나’, ‘지성’(혹은 ‘정신’), 그리고 ‘영혼’입니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하나는 완전한 단일성을 지니는 것으로써 만물의 근원이며 모든 존재를 초월해 있습니다. 하나가 지닌 단일성은 지성으로 흘러나와 이중성과 다양성을 지니게 됩니다. 그리고 지성이 지닌 다양성은 영혼으로 흘러나와 감각과 지각이 있는 생명의 영역을 구성합니다. 마지막으로 영혼이 지닌 다양성도 흘러나와 가장 낮은 단계에 있는 인간 육신을 비롯한 다양한 물질을 형성합니다.

그런데 플로티누스는 최상위에서 최하위로 흘러나오는 유출(流出) 운동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물질에서부터 초월의 과정을 거쳐 최고 높은 곳으로 되돌아가는 귀환(歸還) 운동도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즉, 육신과 함께하는 영혼은 육신을 벗어난 영혼으로, 그 영혼은 지성으로, 그리고 지성은 하나로 향하는 귀환 과정도 있다는 것입니다. 영혼의 본향은 하나가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신적인 것과 동족 관계인 영혼은 귀환하고자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신적 단일성을 지녔던 영혼은 유출 과정을 통해 산만한 다양성을 지니게 됨으로써 신적인 특성과의 유사성도 희박해져 신적 단일성을 거의 잊어버립니다. 결국 타락한 영혼은 다시 단일성을 회복하고 신과의 동질성을 되찾고자 노력합니다. 이 귀환 과정은 정화를 통해 가능합니다. 영혼은 정화를 위하여 덕행을 추구해야 합니다. 다만 현실 세계에서 칭송받는 성인이 되기 위한 실천적 덕행이 아니라, 현실 세계와 떨어져서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관상적 덕행입니다. 이를 통해 의지와 지성을 정화한 영혼은 평정을 유지하며 스스로를 초월하여 상승의 여정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 플라톤 사상에서도 하느님 은총이 개입할 여지는 없고, 다만 신적 본질을 회복하고자 하는 영혼의 귀환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플로티누스의 신비철학은 신의 의향과 관계없고 신의 은총 없이 영혼으로의 유출과 영혼의 귀환을 통해 신적 본질을 회복한다는 한계점을 지니고 있었지만, 관상적인 덕행 실천을 통해 신과 일치한다고 언급함으로써 그리스도교 신비체험을 설명하는 데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3세기 이후 플로티누스의 신비철학 체계를 활용해 신비신학을 확립하려는 신비신학자들이 속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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