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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집, 아름다운 성당을 찾아서] (10) 대구대교구 가실성당

[아버지의 집, 아름다운 성당을 찾아서] (10) 대구대교구 가실성당

낙동강변 야트막한 언덕 위 유서깊은 기도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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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2 발행 [1401호]
낙동강변 야트막한 언덕 위 유서깊은 기도의 집

▲ 1924년에 대구와 부산을 제외한 경상도에서 첫 번째로 봉헌된 가실성당은 신고딕-로마네스크풍의 교회 건축물이다.

▲ 간결한 제대와 깨끗한 외벽으로 꾸며진 가실성당 내부는 어머니 품같이 포근함을 안겨준다.




가톨릭교회가 전통적으로 성당을 동산 위에 짓는 이유가 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낙원’(paradeisos)이라고 표현했던 동산은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약속하신 행복의 상징(창세 2,4─3,24 참조)이다. 또 동산은 예수님께서 수난 전 마지막으로 기도하셨던 곳(마르 14,32-42)이며 부활하신 장소(마르 16,1-8)이다. 그래서 교회는 동산을 회복과 치유의 장소, 구원의 완성으로 이어주는 터임을 상징해 그 위에 거룩한 하느님의 집을 짓는다.

경북 칠곡 가실성당이 낙동강변 옛 나루터 야트막한 동산 위에 지어진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뿌리에서 나무를 키우는 힘이 나오듯 경상도 지역에서 맏배(대구ㆍ부산 제외)로 봉헌된 가실성당은 여린 몸이지만 하느님 정원의 동산지기로 굳세게 서 있다.

1895년 본당이 설립될 당시 이곳은 복음의 씨앗을 싹 틔우지 못한 황무지였다. 신나무골 교우촌이 가까이 있고 창령 성씨 집안이 19세기 초반부터 신앙생활을 했다지만 이 땅은 나루터를 중심으로 인간 욕구를 채우는 혼돈의 땅이었다. 이 사막에 1924년 9월 신고딕-로마네스크풍의 성당이 봉헌되면서 영적 오아시스에서 구원의 샘물이 흘러넘쳐 하느님의 정원 ‘파라데이소스’로 바뀌었다.



왜관 수도원의 모태

사막을 낙원으로 탈바꿈시킨 정화의 도구는 ‘기도’이다. 봉헌식을 주례한 초대 대구대교구장 드망즈 주교는 가실성당을 “피정 성당”이라고 했다. 이 피정 성당이 하느님 기도의 동산으로 뿌리내린 것은 1952년 북한의 덕원수도원과 만주 연길수도원에서 피난 온 성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정착하면서다. 지금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은 옛 왜관성당 터에 자리 잡고 있지만, 수도원 건물을 짓기 전까지 1952년부터 약 6년간 가실성당에서 수도생활을 했다. 가실성당은 왜관수도원의 모태와 같은 곳이다.

가실성당의 또 하나 소중한 영적 보화는 오늘날처럼 사제와 신자 회중이 마주하고 응답하며 미사를 봉헌하는 전례 방식을 남한에서 처음으로 시행한 곳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 이전에는 사제가 신자들을 등지고 제대에서 혼자 라틴말 경문을 읽고 신자들은 그동안 큰 소리로 묵주기도를 바치는 것이 미사의 풍경이었다. 이 관행을 깨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기 10년 전부터 신자 공동체 전체가 능동적으로 전례에 참여하는 장을 펼친 곳이 바로 가실성당이다.

가실성당과 관련해 꼭 기억해야 할 사제 두 명이 있다. 가실성당을 지은 파리외방전교회 빅토르 투르뇌(Victor Tourneux, 한국명 여동선) 신부와 오늘날 아름다운 하느님의 집으로 새로 꾸민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의 바르톨로메오 헨네켄(Henneken, 한국명 현익현) 신부다.

1912년부터 31년간 가실본당 주임으로 사목한 투르뇌 신부는 직접 망치로 벽돌 한 장씩을 두드려 확인할 만큼 성당 건축에 애정을 쏟았다. 그는 빅토르 루이스 프와넬(Victor Louis Poisnel, 한국명 박도행) 신부에게 설계를 맡겼다. 프와넬 신부는 전동ㆍ구포동성당을 설계했고 명동대성당 내부 공사를 마무리한 건축가다. 성당을 지을 벽돌은 직접 구웠고, 시멘트와 홍송(紅松)은 일본에서 들여왔다. 투르뇌 신부는 가실성당을 성모님의 어머니인 성 안나에게 봉헌하고 안나 성상과 종을 프랑스에서, 십자가의 길 14처는 중국에서 가져와 장식했다.

1999년 주임으로 부임한 현 신부는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가실성당을 새롭게 꾸몄다. 그는 먼저 일제 강점기 때 빼앗긴 ‘가실’이라는 이름을 되찾아 바로 잡았다. 일제는 가실성당이 있는 칠곡 노곡면 지역을 낙동강과 금무산의 이름을 따서 ‘낙산’(洛山)으로 바꿔버렸다. 2005년까지 일제의 잔재인 이 이름(낙산성당)으로 불리다가 현 신부가 이를 청산했다.

현 신부는 성당 이름뿐 아니라 100년 된 하느님의 정원을 깔끔하게 손질했다. 간결한 제대와 깨끗한 회벽으로 성당 내부를 어머니 품같이 포근하게 꾸몄다. 하느님의 집은 인간의 내적 공허를 달래주는 공간이기에 거부감이 없어야 한다. 성당 제단에 자리한 안나 성상의 모습처럼 성당 안에 발을 들여놓은 모든 이들에게 어머니의 자애로움을 느끼게 한다. 칠보 감실과 행렬 십자가, 색유리화는 독일 작가 에기노 바이에르트(Egino Weinert)의 작품이다. 칠보 감실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부활하신 예수님(루카 24,13-35)을 형상화했다. 감실은 하느님께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40년간 먹이신 ‘만나’(탈출 16,1-36) 그림을 배경으로 구원의 신비가 성체성사를 통해 정점을 이루고 있음을 고백한다.



색유리화에 예수 일생 표현

10개의 창에 설치된 색유리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표현하고 있다. 창마다 4개의 주제가 있다. 신자석에서 바라봐 제대 왼쪽 창 밑에서부터 올라가면서 그리스도의 생애와 신비를 묵상하면 된다. 단 예수님께서 당신 수난을 예고하시고 십자가의 길을 걷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장면이 묘사된 7번째 창만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주님을 의심해 물에 빠진 베드로의 모습을 제일 먼저 보여주면서 주님을 향한 우리의 시선을 새로 고치라는 작가의 숨은 뜻을 헤아려 본다.

창문 사이사이에 설치된 십자가의 길 14처는 90년이 넘은 옛 액자에 도유화가 손숙희(라우렌시아)씨의 성화를 넣어 이사이의 그루터기에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듯(이사 11,1) 굳세게 이어온 신앙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아름다운 집’이라는 이름만큼 가실(佳室)성당은 눈이 시리다. 하느님의 아름다운 집 가실성당은 주님의 낙원에서 쉬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항상 열려 있다. 글ㆍ사진=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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