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가톨릭, 리더를 만나다] (6) 김선실 아기 예수의 데레사(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장)
역사의 아픈 상처에서 진실과 희망 찾아서
2017. 02. 12발행 [14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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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아픈 상처에서 진실과 희망 찾아서



▲ 2016년 7월 화해와치유재단 설립 강행에 규탄하는 거리 시위 현장에서 김선실(오른쪽 마이크 든 이) 관장이 재단 설립 반대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김선실 관장 제공



전쟁의 포화 소리를 들으며 관람을 시작하는 박물관이 있다. 아리따운 소녀가 전쟁터로 끌려가 45년 넘게 침묵의 고통을 견뎌온 인고의 세월이 생생히 증언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아픔을 기억하며 일본군의 전쟁 범죄를 고스란히 담은 곳.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이다. 이곳에서 역사의 아픔을 전하며 정의를 외치고 새로운 희망을 일구는 이가 있다. 김선실(아기 예수의 데레사) 관장이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아픔과 상처가 있는 곳에서 울고 웃으면서 함께했던 시간이 희망을 나누는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너무도 절실해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한다. 포장도 미화도 인기영합도 없다. 인터뷰 내내 “재미없죠”라며 양해를 구한다. 재미를 넘어선 진실한 메시지가 메아리가 돼 돌아온다.

서종빈 기자 binseo@cpbc.co.kr


▶이곳은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인데요. 어떤 곳인지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고통을 기억하며 일본 군대의 전쟁 범죄를 알리고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지하는 10대의 꽃다운 나이에 전쟁의 포화 속으로 끌려가는 장면부터 재현했고요. 45년 넘게 침묵의 고통 속에 살아오신 할머니들이 1990년대 초반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것을 밝히는 과정 등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호소의 벽이 있습니다. ‘다시는 나와 같은 피해자가 없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미래 세대는 전쟁이 없는 세상에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할머니들의 호소를 들을 수 있고요. 2층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인데 2000년도 1000차 수요시위 때 일본 대사관 앞에 세운 평화비인 소녀상도 있습니다.



▶지금은 몇 분이나 생존해 계십니까.

서른아홉 분이 생존해 계시는데요. 최근 한 분의 할머니가 등록하셨어요. 그래서 생존 할머니가 마흔 분이 됐습니다. 238분의 할머니가 등록하셨는데 차마 이 사실을 알리기 싫어서 등록을 안 하고 있는 할머니들이 더 계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박물관 표를 보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한 분씩 소개돼 있는데요. 어떤 의미인가요

매일 관람 오시는 분들이 한 분의 할머니와 인연을 맺고 그분을 특별히 기억하고 추념하자는 의미에서 이렇게 하고 있는데요. 할머니들의 고통스러운 삶이 생생하게 와 닿을 수 있도록요. 관람 후엔 추모의 마음을 가질 수 있고 또 우리가 이 문제를 꼭 해결해야겠다는 의지도 생기게 하거든요.



▶홍대 근처라 젊은 사람들도 많이 올 것 같은데요.

관람객의 70% 이상이 20대 중반 이하의 청소년들과 대학생일 겁니다. 또 초등학교 5, 6학년들도 단체 관람을 많이 오는데 굉장히 뿌듯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바탕으로 평화와 인권이 보장되는 세상을 꿈꾸게 하는 게 목표였는데 젊은 미래 세대들이 많이 오니까 보람을 많이 느끼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 생활하신 지 26년이 되셨어요.

제가 처음 할머니들을 만났을 때 그분들은 이미 60대 중반이었어요. 그런데 이 소녀상을 딱 보는 순간 ‘어머! 할머니들이 저렇게 소녀 시절에 끌려갔구나!’라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어요.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증언했고 저는 1992년 가을 장위동성당에 신부님을 뵈러 가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알게 됐습니다. 피해자 할머니들이 경제적으로 너무 어렵고 건강도 안 좋으셔서 그분들을 위한 생활기금을 모금해 줬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받았어요. 저도 여성 인권 쪽에 관심이 많았고요. 할머니들의 고통을 알고 나니까 해결이 될 때까지 함께 해야겠다는 소명 의식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이라고 할까요.



▶우리가 흔히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라고 표현하는데 맞는 표현인가요?

일본군 위안부라는 것 자체가 일본 군대에 의한 전쟁 범죄거든요. 그래서 할머니들은 피해자였기 때문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라고 부르면 좋겠습니다. 또 현재 살아계신 할머니들을 만날 때에는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할머니’라고 부르면 좋죠. 생존자라는 의미는 할머니들이 그런 고통을 겪고도 여전히 이 문제를 위해 투쟁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방한하셨을 때 교황님께 나비 배지를 달아 드렸죠.

방한 마지막 날 명동성당에서 봉헌된 평화와 화해의 미사 때 김복동 할머니께서 직접 달아주셨는데요. 나비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상징으로 해방을 의미합니다. 할머니들이 명예와 인권을 회복하고 나비처럼 훨훨 날아 해방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나비 배지는 서울의 한 고등학교 동아리에서 기금 마련을 위해 만들었고 나중에 그 디자인을 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나비 배지를 다는 순간 ‘나는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 회복을 위해 함께 하겠다. 그리고 정말 할머니들 명예와 인권 회복이 이뤄지면 좋겠다’라는 기원이 담겨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미사 내내 나비 배지를 달고 계셨죠.



▶해외에 있는 전쟁 피해 여성에게 연대의 손길을 보내고 계시죠.

2012년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가 ‘나비 기금’을 만들었어요. 일본 정부로부터 법적 배상금을 받게 되면 전액 다른 나라의 전쟁 피해 여성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선언하셨죠. 그런데 법적 배상금을 받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니까 먼저 종잣돈을 내어 놓으셨어요. 가수 이효리씨 등 많은 분이 나비 기금에 동참해 주고 계십니다. 나비 기금으로 아프리카 콩고 내전에서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을 지원하고 있고요. 베트남 전쟁 때 한국군 성폭행으로 고통받는 여성과 그 자녀들을 위해 나비 기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피해자인 할머니들이 평화 활동가로 거듭나신 거예요.



▶한일 양국 정부 간 일본군 위안부 합의가 계속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 합의가 발표되는 순간 굉장히 참담하면서 한편으론 경악을 금치 못했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합의안이었어요. 왜냐하면, 저희가 25년 동안 활동하면서 어떤 것이 정말 진정한 해결인가를 끊임없이 발표해 왔고 그동안 주장해 온 7가지 요구 조건을 문건으로 정리해 우리 정부와 일본 정부에 지속적으로 전달했거든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가장 핵심적인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이 없는 합의입니다. 10억 엔(100억 원)도 일본 정부는 배상금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공식적으로 사죄도 안 하고 전쟁 범죄를 인정하지도 않고 법적 책임을 회피한 것이죠.



▶왜 우리 정부는 그런 합의를 했을까요.

박근혜 정부가 역사적으로 큰 오점을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25년간 고생한 피해자 할머니들과 저희 지원 단체와는 일언반구 이야기도 하지 않고 그야말로 졸속 합의를 해 버린 것입니다. 치유와 화해 재단도 일본정부가 한국정부에 10억 엔을 주면서 재단을 만들라고 책임을 떠넘겨 결국은 한국 정부와 피해자들이 서로 갈등만 일으키는 상황이 된 것이죠.



▶위안부 합의 어떻게 돼야 한다고 보십니까.

소녀상 철거 문제도 이면 합의에 들어가 있지 않나 계속 의구심이 듭니다. 합의 자체를 무효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피해자 의견과 지원 단체들 의견이 배제된 합의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합의안이 발표된 그 날 무효화 성명을 발표했고 그다음 날 380개 이상의 시민사회 단체들도 저희와 똑같은 입장의 공동선언을 했습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하면 수요집회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지난 1월 8일이 만 25주년이었는데 일요일이어서 바로 전 수요일인 1월 4일에 25주년 수요집회를 진행했습니다. 참 긴 세월이었죠. 기네스북에 올라갈 정도로 최장기 집회인데요. 할머니들이 워낙 연로하시고 건강도 좋지 않으셔서 수요집회 다녀오면 4, 5일씩 끙끙 앓으십니다.



▶26년 지났는데 처음에 시작할 때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아셨어요.

몰랐죠.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대만,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필리핀 등 곳곳에서 피해자들의 증언이 이어지고 증거도 많이 나오고 국제사회도 공감하고 해서 저희는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어요. 그런데 해결이 안 되는 것은 일본 정부가 역사 인식도 제대로 하지 않고 다른 나라와의 평화적인 공존과 상생이 어떤 것인가를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성운동가가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1980년대 후반에 전문직 여성들의 결혼 퇴직제 문제가 곳곳에서 제기돼 여성들이 힘을 모아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1987년 여성운동을 시작했고요. 1990년 여성신학을 만나게 되면서 교회 안에서 여성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새 세상을 만드는 천주교 여성공동체’를 열게 됐습니다. 천주교 여성들이 성경 공부나 교육을 통해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고 여성 인권을 위한 활동을 하는 곳인데요.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 문제, 이주여성 문제, 성매매 방지 특별법 제정, 호주제 폐지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했습니다.



▶이런 활동을 하면서 신앙인으로서 어떤 하느님의 섭리를 느끼시나요.

하느님이 항상 제 앞을 다 열어주시지는 않지만, 다음 것을 계속 보여주시면서 저를 지치지 않게 하는 열정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 여성공동체 활동을 10년 정도 한 뒤 신학 공부를 10년 동안 하면서 여성들과 함께 울고 웃고 했는데요. ‘하느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내가 너희와 함께하겠다’는 말씀대로 삼천포로 빠지는 이야기 속에 어려움도 토로하고 하느님을 만난 이야기도 하게 되고요. 결국, 우리가 함께 모여서 나누고 서로 기도해 주는 것이 하느님 체험이라고 생각해요. 이것이 저를 영적으로 성장하게 해줬고 지치지 않게 한 원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



▶어떤 성경구절을 가장 좋아하십니까.

요한 묵시록 21장 5절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라는 구절을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저를 지치지 않게 하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 항상 저에게 새로운 힘과 새로운 희망과 새로운 꿈을 주시기 때문에 늘 저는 새롭게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새로운 변화를 꿈꾸십니까.

제가 하나 꿈꾸고 있는 것은 생태공동체예요. 하느님의 창조질서 안에서 생태적인 삶을 실천하면서 공동체로 살고 싶은 게 제 꿈인데요. 한국에 선교사로 오셨던 분들의 노후를 책임져 주는 선교사의 집을 하나 만들면 어떨까 하는 꿈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 사회의 희망을 어디에서 보시나요.

요즘은 촛불에서 희망을 많이 봤는데요. 촛불이 있게 된 것은 다양한 분야의 NGO 활동 때문이라고 봅니다. 정부나 국회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도록 각 분야에서 소리를 내온 NGO 즉 시민사회 단체들의 역할이 지난 20년 동안 한국 사회가 변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보고요. NGO 활동이 세분화 될수록 대한민국에는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그런 각각의 목소리들을 모아 낼 리더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보고 그 희망을 향해서 나아가도록 사람들을 격려하고 함께하는 것이 저는 리더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일단 문제점이 무엇인지 볼 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 하고요. 그 문제에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마지막으로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희망을 메시지를 나누는 것이라고 봅니다.



방송 시각

TV : 14일 오후 7시, 15일 오후 11시, 16일 오전 8시

라디오 : 11일 오전 7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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