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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31)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마르 13,33)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31)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마르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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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8 발행 [1397호]

▲ 프란치스코 하예즈 작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 1867, 캔버스에 유채, 이탈리아 베네치아, 국립현대 미술관.가톨릭굿뉴스 제공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이전에 공관 복음이 공통으로 전하는 내용 중의 하나는 성전 파괴에 대한 예고와 종말에 관한 말씀입니다. 성전을 방문하고 나오시는 예수님과 제자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전이 파괴될 것임을 예고합니다. “여기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실제로 예루살렘의 성전은 유다인들과 로마와의 긴 전투 끝에 기원후 70년 파괴됩니다.

유다인들과 이방인들의 갈등, 그리고 로마의 억압과 함께 무리하게 세금을 거두는 것에 반발하여 일어난 이 전쟁은 로마 내부의 혼란한 정국의 영향을 받으며 이스라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 됩니다. 4년여에 걸쳐 계속된 이 전쟁 때문에 예루살렘의 성전은 로마에 의해 파괴됩니다. 이것이 유다인들의 마지막 성전입니다. 이 이후로 유다인들은 더는 성전을 갖지 못하고 지금까지도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성전은 두 번 파괴됩니다. 첫 번째는 기원전 587년 바빌론에 의한 것이고 두 번째는 기원후 70년 로마에 의한 것입니다. 이후 성전의 파괴라는 공통점에서 바빌론과 로마는 신약성경에서 동일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이 파괴될 것이라 예고하신 것은 물론 유다 전쟁(66~70) 이전이고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입니다. 하지만 복음서들이 기록될 때에 이미 이 예고는 실현되었습니다. 복음서 중에 가장 빨리 쓰인 복음서는 마르코복음인데 유다 전쟁이 끝난 직후, 70년께 기록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예고는 이미 실현된, 이미 이루어진 예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의 상당히 많은 예언이 이러한 방식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미 이루어진 것이지만 복음서에는 예언의 형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전 파괴에 대한 예고 이후 예수님은 종말에 대한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특별히 마르코복음 13장과 병행이 되는 내용은 복음서의 묵시문학적 본문이라고 불립니다. 복음서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여기에서 소개되는 것은 종말의 때에 앞선 표징들입니다. 그것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전쟁의 소문과 전쟁, 지진, 기근, 박해, 황폐화, 거짓 그리스도와 예언자들의 출현 그리고 하늘의 표징입니다.

복음서의 이런 표현으로 인해 세계대전과 같은 큰 전쟁이 일어나거나 큰 지진이나 기근 등이 생길 때마다 사람들은 종말의 표징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말씀이 종말을 미리 알려주는 예언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하지만 종말 이전에 일어날 이런 표징들 외에 또 한 가지 염두에 둘 것은 종말에 대한 다른 표현입니다. “그러나 그 날과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종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그때가 언제인지 모른다는 것에 있으며 항상 깨어있으라는 당부로 끝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강조되는 것은 종말을 예견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늘 준비하고 있으라는 점입니다. 마태오복음만이 전하는 열 처녀의 비유 역시 이러한 맥락과 함께합니다.(마태 25,1-13) 신랑을 기다리는 처녀들의 비유는 종말의 날과 시간을 아는 것보다 준비하고 있는 자세가 더 중요함을 일깨워줍니다.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종말에 앞서 일어날 재앙들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종말을 예견하는 이들의 말에 관심을 갖고, 심지어 그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따르기도 합니다. 비록 성경에서 종말을 묘사할 때 두려움을 줄 수 있는 표현들을 사용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가르침은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더라도 동요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종말은 올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신앙인들에게 두려운 것만은 분명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이 종말을 통해 새로운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을 기다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종말을 위해 필요한 자세는 깨어있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있어라.”

<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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